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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May 08. 2021

단오날의 꽃바구니

총각 잘 있죠?



비디오 대여점 총각과 영화 <약속> 포스터



20여년 전 이야기

20년여 전이 20대라니,




지금 MZ세대 아가야들은 모르겠지만


조금 먼 옛날 밀레니엄 전후에


전도연, 박신양 주연의 <약속>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여년 전 내가 스무 살 당시에는 주택가에는 비디오 대여점이 많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달 동안 일을 했는데


첫 월급으로 티비와 비디오가 합체된 중고 비디오비젼을 샀다.


집 근처 꽤 큰 비디오 대여점에서 과식하듯 비디오를 빌려 봤다.



내 주민등록상 생일은 5월 5일이다.


어린이날과 겹치는 절묘한 날짜지만


출생신고를 하신 아버지는 날짜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으셨던 거 같다.


실제 생일로 했다면 나는 빠른 79년생이 된다.


하마터면 78년생 언니, 오빠야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닐 뻔 했다.


부모님이 남긴 재산은 하나도 없는데, 이거 하나는 잘 해주고 가셨다.


언니들은 1~3살까지 늦게 출생신고 하는 바람에


나보다 더 큰 혜택을 보고 산다.


어린 시절 어린이날은 한창 바쁜 농번기에 들어앉아서


그날도 우리집 자매들은 농사일에 소환되기 일쑤였다.



매년 5월 5일만 되면 웃음 짓게 되는 추억이 있다.


주민등록상 생일이란 거 외에 세상 의미 없는 날인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해 준 그 총각?은  잘 살고 있겠지.


다리가 불편해 보였던 비디오 가게주인 총각이 오늘 소환할 주인공이다.


스무 살 눈에는 그 총각이 아저씨로 보였지만


겨우 20대 중후반이었을 것이다.


마흔살 눈에는 20대 후반도 아가얀데.


비디오 대여점 총각은 항상 미소 띈 얼굴로


내가 비디오를 연체해도 연체대금을 받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집으로 꽃 배달이 왔다.


나에게 꽃 배달이 올 이유가 전혀 없기에


내 것이 아니라고, 잘못 온 거라고


꽃 배달 하시는 분과 실랑이 끝에 받게 되었다. 


꽃바구니 속에는 영화 '약속' 포스터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니 마음 속에서 나를 지우는 것도 배신이야’


영화 포스터 속 문구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때 연애경험이 전무 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게 겁이 났다.


상대방이 또래도 아니고 20대 후반 아저씨라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7살 많은 친오빠가 있어서


연상 혹은 오빠 또래 남자들은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 꽃바구니를 받은 날은 음력으로 5월 5일 단오였다.


회원정보에 입력된 생년월일이 5월 5일이라서


나름 그 총각이 머리를 써서 날짜를 맞춘 모양이다.


단오날 그 난리 꽃다발을 받은 후


비디오 대여점 아저씨가 부담스러워져서


그 비디오 대여점에는 발길을 끊었다.


어린 마음에 겁이 났었나 부다.


그래도 영화 포스터는 몇 달 동안 내 방 벽에 붙여 놓았다.


지금이라면 고맙다고 한 번 안아주겠구만.


알싸한 추억을 남겨줘서 총각 고맙데이~


20여년 전, 창원 OO동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했던 그 총각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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