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잘 있죠?
비디오 대여점 총각과 영화 <약속> 포스터
20여년 전 이야기
20년여 전이 20대라니,
지금 MZ세대 아가야들은 모르겠지만
조금 먼 옛날 밀레니엄 전후에
전도연, 박신양 주연의 <약속>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여년 전 내가 스무 살 당시에는 주택가에는 비디오 대여점이 많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달 동안 일을 했는데
첫 월급으로 티비와 비디오가 합체된 중고 비디오비젼을 샀다.
집 근처 꽤 큰 비디오 대여점에서 과식하듯 비디오를 빌려 봤다.
내 주민등록상 생일은 5월 5일이다.
어린이날과 겹치는 절묘한 날짜지만
출생신고를 하신 아버지는 날짜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으셨던 거 같다.
실제 생일로 했다면 나는 빠른 79년생이 된다.
하마터면 78년생 언니, 오빠야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닐 뻔 했다.
부모님이 남긴 재산은 하나도 없는데, 이거 하나는 잘 해주고 가셨다.
언니들은 1~3살까지 늦게 출생신고 하는 바람에
나보다 더 큰 혜택을 보고 산다.
어린 시절 어린이날은 한창 바쁜 농번기에 들어앉아서
그날도 우리집 자매들은 농사일에 소환되기 일쑤였다.
매년 5월 5일만 되면 웃음 짓게 되는 추억이 있다.
주민등록상 생일이란 거 외에 세상 의미 없는 날인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해 준 그 총각?은 잘 살고 있겠지.
다리가 불편해 보였던 비디오 가게주인 총각이 오늘 소환할 주인공이다.
스무 살 눈에는 그 총각이 아저씨로 보였지만
겨우 20대 중후반이었을 것이다.
마흔살 눈에는 20대 후반도 아가얀데.
비디오 대여점 총각은 항상 미소 띈 얼굴로
내가 비디오를 연체해도 연체대금을 받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집으로 꽃 배달이 왔다.
나에게 꽃 배달이 올 이유가 전혀 없기에
내 것이 아니라고, 잘못 온 거라고
꽃 배달 하시는 분과 실랑이 끝에 받게 되었다.
꽃바구니 속에는 영화 '약속' 포스터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니 마음 속에서 나를 지우는 것도 배신이야’
영화 포스터 속 문구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때 연애경험이 전무 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게 겁이 났다.
상대방이 또래도 아니고 20대 후반 아저씨라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7살 많은 친오빠가 있어서
연상 혹은 오빠 또래 남자들은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 꽃바구니를 받은 날은 음력으로 5월 5일 단오였다.
회원정보에 입력된 생년월일이 5월 5일이라서
나름 그 총각이 머리를 써서 날짜를 맞춘 모양이다.
단오날 그 난리 꽃다발을 받은 후
비디오 대여점 아저씨가 부담스러워져서
그 비디오 대여점에는 발길을 끊었다.
어린 마음에 겁이 났었나 부다.
그래도 영화 포스터는 몇 달 동안 내 방 벽에 붙여 놓았다.
지금이라면 고맙다고 한 번 안아주겠구만.
알싸한 추억을 남겨줘서 총각 고맙데이~
20여년 전, 창원 OO동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했던 그 총각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