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추는 춤]
내게는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처럼 풀지 못한 말이 있다.
"개는 개답게 살아야지. 사람하고 동물은 다르지. 원래 그런 거야."
모이기만 하면 수다가 끊이지 않던 사람들과 그날도 여지없이 여러 가지 주제를 돌아가며 이야기하다가, 개를 집안에서 키우는 것과 집밖에서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하나 둘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목에 가시가 걸리듯 마음에 걸리는 말이었다.
"개는 개답게 살아야지. 사람하고 동물은 다르지. 원래 그런 거야."
그 말이 나오자, 모두 더 이상의 반론은 없다는 듯, 원래 그런 거라는 듯, 그렇게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 말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개답다는 건 뭐지?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은 뭐지?
익숙한 건 다 좋은 건가?
차이와 차별은 어떻게 다르지?
자유와 방치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얼굴이 빨개진 채로 감정적인 단어만 맴돌았기에 결국 입을 다물었고, 나는 ‘프로불편러’인가보다 하는 결론만이 남았다.
추스르지 못한 나의 불편한 감정과 생각들은 그대로 내 안에 남아있었는데,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웹툰을 보면서 치유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건 냇길이라는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사람의 생활 웹툰이었는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꼈을 법한 에피소드들을 대충 슥슥 그린 듯하지만 너무나도 귀여운 그림에 담아내었다. 작은 핸드폰 속의 그림들에 웃다가 울다가 감동하는 동안에 내안의 응어리들은 토닥토닥 위로를 받았다.
그런 냇길이 이야기가 책 "너와 추는 춤"으로 나왔다. 이미 다 봤던 걸테니 큰 감동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건 나의 자만이었다. 나는 "너와 추는 춤"을 보면서 여전히 깔깔대다가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보니 웃음이 나는 포인트와 눈물이 나는 포인트가 좀 더 명확해졌다.
내가 가장 깔깔대며 좋아한 에피소드는 ‘똑땅한 냇길’이다. 그야말로 냇길이의 똑땅한 하루를 똑땅한 냇길이가 직접 일기를 쓰면서 이야기해준다. 개를 사유재산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 훈련으로 순화시켜야하는 짐승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있다면 이거 한 번 보라고 하고 그 표정을 지켜보고 싶다. 나는 우리집 여름이(반려묘, 10살)와 깜디(반려묘, 7살)가 일기를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혼자 실실 웃었다.
내가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에피소드는 ‘문득, 기적’이다. 멀리 점으로 보이는 그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드는 냇길이,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순간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서로에게 전해지는 촉감과 온도,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면서 그 의미를 용기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 같다.
나는 한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대인관계에서의 결핍을 동물로 달래려고 하는 미성숙한 사람들이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었다. 그리고 내가 결혼 후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과 반려묘와 함께 사는 것은 많은 연관이 있다는 편견을 여전히 마주하고있다. 나는 아마도 나와 여름이의 만남, 나와 깜디의 만남이 그것 자체로 소중한 사랑이고, 우리의 사랑은 기적과 같다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문득, 기적’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걸 생각하는 지금도 눈물이 찔끔 나는가보다.
그런 기적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쓸쓸하고 초라할지 상상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를 진짜 사람답게,
진짜 개답게 살게 해 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너와 추는 춤”, 이연수, 2018.
지은이 인스타그램 @natgh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