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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치찌개 Apr 18. 2019

누구나 처음인 시절이 있다.

[내가 운전요정이다.]


그 생각만 하면 어깨가 무거워지고 팔이 저려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초연하고 대범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5년 동안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면허증을 처음 꺼냈다. 새 차가 우리집 주차장에 모셔져 있었으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면허 시험 볼 때 뭘 배웠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엑셀이 어느 쪽이었는지, 시동은 어떻게 키는 거였는지, 기어는 어떻게 움직이는 거였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뭐든 학원에 가서 정식으로 배우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이번에도 학원부터 가자고 마음먹었다. 시내연수를 등록하면서 처음으로 면허증을 썼다.


연수 첫날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땀만 뻘뻘 흘리다 지나갔다. 강사님은 면허 시험 볼 때처럼 차근차근 설명 해주지 않았고, 일단 해보라고만 했다.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내가 사고를 낼까봐 너무 무서웠다. 몇 일간의 연수를 끝내고 나니 일단 내가 차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주말동안 남편과 함께 연습을 나갔다. 큰 싸움을 할 뻔 했지만, 지혜롭게 대처했다.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몇 번 냈고, 나는 친절하게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입장에서 무엇이 신경쓰이는지, 무엇이 잘 안되는지 설명했다. 가르쳐주는 입장이긴 했지만 왕초보가 운전하는 차를 함께 타야하는 남편도 똑같이 무서워했다. 몇 일간의 연습을 하는 동안 나는 점차 도로상황에 익숙해졌고, 내가 안정되는 만큼 남편의 목소리도 부드러워졌다.


너무 신기했던 건 운전할 생각만 하면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거였다. 운전하는 내내 손발에서 땀이 났다. 한동안 어깨와 팔이 계속 아팠다. 내 몸이 이상해지는 만큼 마음도 요동을 치고 있었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나는 위축되어 있었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렵고 불안하면서도 미치도록 잘하고 싶었다. 처음 면허 시험을 볼 때도 그랬다. 너무나도 두렵고 피하고 싶었다. 사실 이런 마음은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아무것도 아닌 부족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날 까봐 두려운 마음은 당장 그만두라고 속삭였다. 묘한 경쟁 속에서 뒤쳐질까봐 두렵기도 하지만 앞서가고 싶은 욕심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실수를 해서 비난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은 몸을 긴장시켰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의 이런 마음은 사람을 참 못나게 만들었다.


“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요정이다”는 초보운전자를 위한, 한때 초보였던 운전자를 위한 만화이다. 스노우캣이 왕초보에서 운전요정이 되기까지 겪은 이야기들은 왕초보인 나에게 공감과 웃음을 주었다.

그가 말하는 ‘부당한 빵’과 ‘마땅한 빵’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 용기가 되었다. 초보자를 한순간에 혼란과 공포에 빠뜨리는 것이 빵빵 클락션 소리다. 그 ‘빵’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고, 심지어 ‘부당한 빵’일 경우도 꽤 많다. 그럴 때 위축되지 말 것. 그리고 필요한 경우 ‘마땅한 빵’을 울릴 용기도 낼 것!


부당한 빵에 위축되지 말 것!


누구나 처음인 시절이 있다. 처음의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하고 나면, 그게 부끄럽지 않아진다.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이제는 자책하면서 눈물로 참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아직도 초보운전 스티커를 떼지 못했다. 운전에 관하여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주변의 배려가 더 필요하다. ‘운전요정’이 되기는 멀었지만, ‘운전꿈나무’ 임은 분명하다. 나는 정말정말 잘하고 싶다. 운전요정을 꿈꾸는 꿈나무는 오늘도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운전대를 잡는다.





“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요정이다”, 스노우캣,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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