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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흰고래 Apr 12. 2021

Medical Information,
의료 정보의 역습

의료 정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사용해야할까?

 인생에서 처음으로 ‘의료정보’ 에 대해 접해본 것은 바야흐로 새천년이 시작하는 2000년, 전세계를 떠들썩 하게 했던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HGP)’ 초안의 완성 소식이었던 것 같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 또래들 사이에서는 ‘게놈’의 발음 때문에 이 사건이 더욱 널리 알려진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전 세계사람들에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냉전시대의 꽃이던 우주 정복과 물리 과학이 저물었음을 보여 준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21세기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학문은 생명과학이고 ‘의료 정보’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천명한 사건이기도 했다. [i]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도 한 서울대학교 교수가 사람의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고 전국이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사건이 있을 때 쯤 나는 한창 고등학교 수험생활 중 이었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이과 학생들이 세계적인 생명공학자가 되는 꿈에 부풀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기억하다시피 예상치못하게도 연구진의 결과 조작 논란 및 시험 절차상의 윤리성 문제로 흘러갔다. 축제를 벌이던 온 나라는 혼란 속에 빠졌고 두파로 갈라져 열심히 싸웠다.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새로운 분야라고 생각했던 ‘의료정보’의 역습이었다. 정보의 조작 가능성도 경계해야했고 정보를 만드는 과정의 절차에도 문제는 없는지 감시해야 했다. 당시 쓰여진 한 신문 사설처럼 연구자들 뿐만아니라 전 국민이 한동안 ‘이 사건이 남긴 깊은 상처를 치료해야’ 했다. [ii]


 내가 세계적인 생명공학자의 꿈을 접게 된 것은 꼭 이 ‘깊은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게놈 프로젝트’와 ‘배아줄기세포’ 뉴스와 함께 자란 영향 덕분이었을까? ‘생명과학’과 ‘의료정보’를 밀접하게 다루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약국에서 약사로 일하면서 보고 느낀 ‘의료정보’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보던 것보다는 훨씬 생활 밀접한 것들이었다. 우습게는 처방전에 적힌 연예인 이름을 두고 ‘실제 연예인이 맞다, 아니다 동명이인이다.’를 두고 벌이는 무의미하고 윤리적이지 못한 설전이라거나, 약국에 자주 오시는 분들의 지난 병력을 기억해 ‘감기가 오래 가시네요~’ 등의 코멘트를 해드리면 감동 받아 하시는 점 이라던가.


 제약회사를 다니면서는 약이 효과가 있는지 환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시험해보는 임상시험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임상시험 만큼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약이 시판 된 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없는지 확인하는 시판 후 조사(Post Marketing Surveillance, PMS)나 임상시험처럼 통제된 환경이 아닌 실제 환자들의 데이터를 모은 실사용 데이터(Real World Data, RWD) 등 대단위 규모의 환자의 ‘의료정보’를 취급하게 되었다. 이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의료 정보들과의 만남이었다. 소소하게 다가오던 ‘의료정보’들은 이제 매우 본격적이고 진지해졌다. 이제는 의료계에서는 개인 맞춤 치료(Personalized Healthcare, PHC)라던가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을 빼놓고서는 전략과 미래를 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디지털 헬스를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처음으로 <‘의료정보학’이란?> 수업을 들으면서 그간 내가 생각해왔던 ‘의료정보’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음을 배울 수 있었다. ‘의료정보’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정보가 주체가 되어 치료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주요한 결정들을 내리도록 영향을 주고 있었다.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잔치에 손님으로 참석하는 것과 주인이 되어 잔치를 여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결정의 주체가 되는 순간 책임이 따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영화 '매드 맥스'처럼 비관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문학에 빠져드는 편이다. 끔찍하게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들을 통해 비극은 ‘의료정보의 역습’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는 피주머니들의 혈액형을 문신으로 새기고 워보이들이 필요할 때마다 수혈관을 꽂아 피를 수혈한다. O형인 피주머니는 혈액형이 달라도 수혈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재미로 혈액형 심리테스트를 하다가 O형임이 밝혀지면 당장 끌려갈 판이다. 한 사회에서는 공공연하게 공유하는 어떤 의료정보는 환경에 따라 중요한 기밀이 되어야 할 수도 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초로 꼽히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흔히 아는 조지 오웰의 '1984' 보다 더욱 현실성 있게 미래를 예측 했다고 평가받는다. 이 소설에서는 하층 계급을 담당할 유전자를 가진 배아의 분열과정 시 고의로 산소를 적게 주입하여 신경계 손상을 유도한다. 신경계 중추인 두뇌가 발달하면 하층민들이 반란의 여지를 갖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이리라. 전 세계를 반전의 충격에 몰아넣었던 ‘트루먼 쇼’의 각본을 썼던 앤드류 니콜 감독은 에단 호크, 우마 서먼를 주연으로 ‘가타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유전자를 평가해 점수를 낼 수 있고 유전 공학을 통해 우성유전자만 가지도록 조작한 아이를 출산하도록 하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2020년을 사는 우리들과 같이 자연임신으로 어쩔수 없이 몇몇 열성우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은 세상 다시 없게 서러운 차별을 받고 살아간다.


 1900년대에 상상으로 그려진 이런 작품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2000년대에는 이런 현실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유전자 정보 차별 금지법(Genetic Information Non- discrimination Act, GINA)을 제정하여 본인이 동의한 자발적인 유전자 정보 공유만 허용하였다. 하지만 10년도 되지 않아 2017년에는 한 의원에 의해 근로자 복지 프로그램 보호법 (Preserving Employee Wellness Programs Act, PEWPA) 이 발의되어 고용자가 근로자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근로자가 정보 공유에 불응할 시 회사가 부담하는 건강보험료의 50%까지 근로자에게 부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iii]


해당 법안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끝내 발효되지는 못했지만 [iv] 끊임없이 경계하고 살피지 않으면 ‘의료정보’의 역습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2018년 말 중국에서는 배아 상태에서 유전자를 교정하여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발표했다.[v]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미국과 같은 유전자 정보 차별 금지법은 없지만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서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 및 검사 결과 제출 강요를 금지하고 있다. [vi] 하지만 보험회사들은 유전자 분석 결과를 활용한 맞춤형 보험상품을 내놓고 있고 보건당국은 이러한 영업이 불법행위로 볼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아 혼선이 있다. [vii] 이는 앞서 언급한 법률 상에서 ‘유전정보’란 무엇인지, ‘차별’이란 어떤 경우인지, 검사 결과를 ‘강요’가 아니라 ‘자발’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괜찮은지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보험회사들의 달콤한 제안에 자발적으로 내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혹시 나중에 불리하게 사용되진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의료정보’를 건전한 쪽으로만 사용하고 부당한 고용 차별이나 보험 가입 거부, 더 나아가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쪽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더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하지 않는다면 앞서 사용했던 ‘의료정보의 역습’ 이나 ‘깊은 상처’를 다시금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90년대 작가들이 예언한 것들이 현실화가 되어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공부하면서 하게되는 다양한 고민들을 브런치를 통해 남기고 소통하며 더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__________


함께 하면 좋을 책과 영화


책|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영화| 조지 밀러,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영화| 앤드류 니콜 '가타카'

 

참고자료


[i] [시론] 21세기 과학의 갈림길,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 한국경제신문 1999년 11월 24일자 – available at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1999112302531

[ii] 국민일보 사설 2009년 10월 26일자 – available at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1163571

[iii] 미국 의회 법률정보 사이트 Congress.gov available at https://www.congress.gov/bill/115th-congress/house-bill/1313/text

[iv] 미국 입법정보 공유사이트 Govtrack.us available at https://www.govtrack.us/congress/bills/115/hr1313

[v] BBC 기사 2018년 11월 28일자 – available at https://www.bbc.com/news/world-asia-china-46368731

[vi] 보험연구원 리포트 2018년 6월 4일자 – available at http://www.kiri.or.kr/report/downloadFile.do?docId=945

[vii] 한국 보험신문 2020년 2월 9일자 – available at http://insnews.co.kr/m/news_view.php?firstsec=1&secondsec=11&num=6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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