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donnay)
샤르도네(Chardonnay)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이트 와인 품종이다. 레드 와인에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 있다면 화이트 와인에는 샤르도네가 있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재배면적이 아이렌(Airen, 21.8만 ha)에 이어 화이트 품종 중 2위(21.1만 ha)다. 하지만 상당 부분 브랜디 증류에 쓰이는 아이렌은 재배 국가가 스페인 등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면적 또한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샤르도네는 40개국 이상의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하며 면적 또한 증가하고 있다. 재배 지역의 다양성만 보면 레드, 화이트 품종을 불문하고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품종이다. 이렇듯 와인계의 월드 스타인 샤르도네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UC Davis)의 DNA 연구로 밝혀진 구애 블랑(Gouais Blanc)과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의 교배종이라는 설이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애 블랑은 현재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프랑스로 유입된 품종으로, 샤르도네 외에도 수많은 자손(?!)들을 남겼다. (관련 기사 ☞ 전설의 바람둥이 포도, 구애 블랑)
생존력 짱, 적응력 갑, 친화력 최고! 성격 좋은 친구 같은 품종
샤르도네가 전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뛰어난 생존력과 적응력에 있다. 샤르도네는 조생종이며 생육이 왕성하기 때문에 비교적 재배가 쉬운 편이다. 오히려 생산량이 과도해지면 와인의 풍미가 떨어지므로 생산량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을 정도다. 포도가 생장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토양이나 기후에도 무난하게 적응한다. 자란 환경에 따라 스타일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샤블리나 칠레의 카사블랑카,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등 서늘한 지역에서 자란 샤르도네는 생생한 신맛과 풍성한 미네랄이 특징이다. 이런 지역의 샤르도네는 흰 꽃향기와 부싯돌 같은 뉘앙스, 레몬, 라임, 자몽 같은 시트러스와 아삭한 청사과, 백도, 배 풍미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미국 캘리포니아, 프랑스 랑그독 루시옹 같이 따뜻한 지역의 샤르도네는 신맛이 적고 익은 과일 맛이 드러나며 묵직한 바디를 지닌 와인으로 태어난다. 크리미 한 질감에 멜론, 파인애플, 망고 등 열대과일 맛과 꿀 뉘앙스를 풍긴다. 이런 스타일은 보통 오크 숙성을 통해 바닐라와 버터 같은 풍미를 더하고 바디감이 좋은 와인으로 완성된다. 이외에 샤르도네는 다양한 와인의 블렌딩 파트너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스파클링 와인이다. 피노 누아(Pinot Noir),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와 함께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인 샴페인에 쓰이는 세 가지 대표 품종 중 하나다. 샤르도네만으로 우아한 스타일의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샴페인을 빚기도 한다. 샴페인 외에도 프랑스의 다양한 크레망과 이탈리아의 프란치아코르타(Franciacorta), 트렌토 DOC 스푸만테, 스페인의 카바(Cava), 남아공의 캡 클라시크(Cap Classique) 등 다양한 전통 방식 스파클링 와인과 미국, 호주, 남미 등에서 만드는 다양한 스파클링 와인에도 샤르도네가 사용된다. 음으로 양으로 열일하는 샤르도네다.
위대한 화가를 위해 준비된 빈 캔버스
샤르도네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나 리슬링(Riesling) 같은 품종과는 달리 크게 도드라지는 풍미 특성이 별로 없다. 한 마디로 텅 빈 캔버스 같은 품종이다. 그래서 대충 생산량을 늘려 적당히 오크 풍미만 더해도 비교적 마실 만한 와인이 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와인들 때문에 지루하고 매력 없는 품종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한때 미국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행한 'ABC'라는 말, 즉 '샤르도네만 빼고 다 좋다(Anything But Chardonnay)'는 얘기는 바로 이런 획일적이고 품질이 낮은 샤르도네에 대한 반발이었다. 하지만 빈 캔버스가 피카소나 마티스 같은 위대한 화가를 만나 위대한 명작이 탄생하듯, 샤르도네도 좋은 환경과 훌륭한 와인메이커를 만나면 세계 최고의 와인이 된다.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가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마셔야 한다'라고 표현한 몽라셰(Montrachet) 같은 와인 말이다. 샤르도네는 다양한 토양에 쉽게 적응하는 품종이지만, 특히 잘 맞는 토양이 있다. 바로 샤르도네의 고향인 부르고뉴에서 많이 발견되는 석회질(limestone)과 백악질(chalk) 토양이다. 이런 토양에서 르플레브(Leflaive), 코쉬 뒤리(Coche-Dury), 르루아(Leroy) 같은 대가를 만나 세계적 명성의 와인들이 탄생했다. 토양뿐만 아니라 양조 방식과 기술에도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최고의 와인을 만들려는 세계 각지의 와인메이커들에게 도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샤르도네라는 이름이 가진 대중성과 최고급 품질과 명성을 지닌 와인의 존재, 그리고 노력과 기술에 의한 성공 가능성이 만나 다양한 스타일의 샤르도네들이 태어나고 있다. 아래 소개할 프랑스, 미국, 호주, 뉴질랜드, 칠레,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남아공,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페인 등지에서도 샤르도네를 활발히 재배하고 있다. 커다란 영토를 기반으로 새로운 와인 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영국에서도 샤르도네는 주요 품종이다. 샤르도네가 심심하거나 오크 풍미가 부담스러운 와인이라는 편견은 냉큼 던져버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가격대의 샤르도네 중 옥석을 골라내는 재미를 느껴 보자.
음식과의 조화
샤르도네 와인은 스타일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음식과 함께 즐기기도 알맞다. 샤블리와 굴, 오크 숙성 샤르도네와 게 요리 같은 클래식한 페어링도 많다. 기본적으로 오크 뉘앙스가 적은 샤르도네는 익히지 않거나 살짝 데친 싱싱한 해산물, 초밥, 기름지지 않은 생선 요리와 잘 어울린다. 시원하게 조리한 숏 파스타나 가벼운 샐러드, 피자와도 무난하다. 오크 뉘앙스가 명확한 샤르도네의 경우 크리미 한 소스를 쓴 생선 요리나 적절히 양념된 닭고기, 돼지고기와 좋다. 훈제한 생선이나 스파이시한 동남아 요리, 아보카도 등을 사용한 무거운 샐러드와도 괜찮다. 다양한 치즈와 함께 즐길 수도 있다. 보통 가볍고 어린 샤르도네에는 시중에서 흔히 파는 신선한 브리 치즈나 염소 치즈를, 오크 뉘앙스가 있는 샤르도네에는 숙성된 체다나 브리야 사바랭 같은 트리플 크림치즈를 추천한다. 숙성된 샤르도네라면 블루치즈와의 페어링도 시도해 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샤르도네는 한국에서 통용되는 표기와 발음이 두 가지다. 누구는 '샤르도네'라고 하고 다른 이는 '샤도네이'라고 한다. 뭐가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샤르도네는 고향인 프랑스 발음에 가깝다. 샤도네이는 영미권 발음이다. 참고로 국립국어원 기준으로는 샤르도네다.
프랑스
샤르도네 원조집 프랑스. 그 품질은 물론 생산량에서도 넘버 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명실공히 전 세계 샤르도네의 벤치마크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부르고뉴 북쪽의 샤블리 지역은 서늘한 샤르도네의 전형이다. 키메리지안 토양(Kimmeridgian soil)으로 대표되는 7개의 그랑 크뤼와 다양한 프르미에 크뤼를 중심으로 생기 넘치는 신맛과 영롱한 미네랄을 드러내는 와인을 생산한다. 부르고뉴의 황금 언덕(Cote d'Or), 그중에서도 남쪽인 코트 드 본(Cotes de Beaune) 지역은 빼어난 샤르도네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몽라셰 그랑 크뤼가 있는 샤샤뉴(Chassagne-Montrachet)와 퓔리니(Puligny-Montrachet) 마을을 비롯해 코르통 샤를마뉴(Corton-Charlemagne) 그랑 크뤼가 있는 알록스 코르통(Aloxe-Corton) 마을, 그랑 크뤼는 없지만 고소하고 버터리한 풍미로 많은 사랑을 받는 뫼르소(Meursault) 마을 등 빼어난 샤르도네를 생산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좀 더 과일 풍미가 드러나고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 나오는 코트 샬로네즈(Cote Chalonnaise)와 마코네(Maconnais)가 있다. 부르고뉴의 마을 단위 이상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샤르도네라는 품종명 대신에 포도밭 이름이나 마을 이름이 붙는다. 밭과 마을 이름이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빼어난 와인임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외에 부르고뉴에서 생산된 샤르도네는 보통 부르고뉴 샤르도네라는 레이블을 달고 시장에 나온다. 이런 와인들 또한 전반적으로 품질이 높다. 수준급 생산자의 부르고뉴 샤르도네는 마을이나 포도밭 이름이 붙은 것 이상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외에도 남부의 랑그독 루시옹(Languedoc-Roussillon)과 동쪽의 쥐라(Jura), 사부아(Savoie), 알자스(Alsace), 북부의 루아르(Loire) 등지에서 폭넓게 재배하고 있다. 특히 쥐라 지역의 샤르도네는 최근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는 핫 아이템이다.
이탈리아
놀랍게도 이탈리아는 프랑스, 미국, 호주에 이어 세계 4위 규모의 샤르도네 재배 국가다. 하지만 바롤로나 브루넬로 같은 다른 유명 와인, 특히 레드 와인에 치여서인지 그렇게 부각되는 품종은 아니다. 샤르도네가 이탈리아에 도입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초기에는 피노 블랑 품종과 혼동되기도 했고, 주로 블렌딩이나 스파클링 와인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84년 알토 아디제(Alto-Adige)에서 처음으로 DOC 승인을 받았고, 이외에도 롬바르디아, 피에몬테, 베네토,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토스카나, 풀리아,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전역에서 재배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와인 명가에서 양조한 샤르도네를 찾아 맛보는 것도 와인을 즐기는 새로운 재미가 될 것이다.
미국
프랑스를 바짝 추격하는 샤르도네 맛집, 미국이다. 미국 샤르도네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부르고뉴의 위대한 샤르도네 스타일을 지향하며 성장했다. 와인 애호가라면 들어보았을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샤토 몬텔레나 샤르도네(Chateau Montelena Chardonnay)가 부르고뉴의 특급 와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 샤르도네는 세계적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현재는 알렉산더 밸리(Alexander Valley), 러시안 리버 밸리(Russian River Valley) 등 소노마(Sonoma) 지역은 물론 나파(Napa)와 몬터레이(Monterey), 샌타바버라(Santa Barbara) 등 캘리포니아 각지에 세계적으로 최상급 평가를 받는 생산자와 프리미엄 와인들이 즐비하다. 1970년대 이후에는 풍부한 일조량과 따뜻한 기후를 기반으로 더욱 완숙한 과일 풍미와 버터리한 오크 뉘앙스가 도드라지는 스타일이 등장했다. 과도한 풍미로 음식과의 친화력이 떨어지고 마실수록 질리는 경우가 많았던 이런 스타일은 앞서 언급한 'ABC'와 같은 애호가의 반발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다. 최근에는 과일의 신선함과 생생한 신맛은 살리고, 과일 맛과 오크 풍미는 적절히 제어해 균형이 좋은 스타일로 진화했다. 이외에 워싱턴주와 오리건, 뉴욕 등지에서도 주목할 만한 샤르도네를 생산한다.
호주, 뉴질랜드
호주는 1970년대 상업적인 샤르도네 와인이 처음 출시된 이후 1980년대 샤르도네 붐이 일었다. 초기 호주 샤르도네는 따뜻한 기후의 영향으로 신맛은 적고 푹 익은 과일 맛 중심의 포도가 생산되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산을 첨가하고 오크 칩을 사용하는 등 오크 풍미를 지나치게 부각해 무겁고 부담스러운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호주의 애들레이드 힐스(Adelaide Hills), 빅토리아의 야라 밸리(Yarra Valley) 등을 중심으로 좀 더 부르고뉴에 가까운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 르윈 에스테이트 아트 시리즈 샤르도네(Leeuwin Estate Art Series Chardonnay)로 대표되는 서호주 또한 프리미엄 샤르도네 생산지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지역이다.
뉴질랜드는 최근 소비뇽 블랑으로 유명하지만 2002년까지 가장 널리 재배한 품종은 샤르도네였다.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Auckland)와 기스본(Gisborne), 호크스 베이(Hawke's Bay), 와이라라파(Wairarapa) 등에서는 여전히 신선하고 유연하며 견고한 품질의 샤르도네가 생산된다. 남섬의 말보로(Marlborough) 지역에서는 소비뇽 블랑만 나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명성 높은 와이너리를 중심으로 우수한 샤르도네가 생산되는데, 바로 아래 소개할 도그 포인트가 그 대표적인 예다.
칠레
칠레 샤르도네는 카사블랑카 밸리(Casablanca Valley)를 중심으로 산 안토니오 밸리(San Antonio Valley), 리마리 밸리(Limari Valley) 등 서늘한 지역에서 활발하게 재배하고 있다. 때문에 칠레의 샤르도네는 적절한 신맛을 기본으로 시트러스와 사과, 배, 열대과일 등 다양한 과일 풍미가 적절하게 드러나며 상쾌한 미네랄리티 또한 겸비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와인샵뿐 아니라 마트, 백화점 등에서 다양한 칠레 샤르도네를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에 만날 수 있으니 쇼핑하러 간 김에 가볍게 한 병 집어 오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