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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Jan 28. 2024

코리아 세렝게티에서의 하룻밤

2023년 4월 무의도 호룡곡산 백패킹

네이버에 인천 무의도 ‘호룡곡산’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호룡곡산 귀신’이 나올 정도로 이 산에는 귀신이 많이 목격된다. <심야괴담회>에도 소개됐고, 지금도 꾸준히 수많은 목격담이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도 전국에서 수많은 백패커들이 이곳을 찾아 하룻밤을 청한다. 하나개해수욕장 쪽 기암괴석 해변은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데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을 연상케 하는 풍경으로 국내 백패킹 성지 중 하나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박지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몇 곳의 해변을 오르락내리락해야 그예 이른다. 즉, 복귀할 때도 오르락내리락이라 예전처럼 하산의 가뿐함은 없었다. 배낭의 중량에 나의 계절은 봄에서 대번에 한여름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하루를 버티기 위해 필요한 무게가 이리도 묵직했던가. 그래도 나무와 야생화가 주는 에너지에 기운이 났다. 바닥엔 낙엽이 가득 깔려 있었고, 나무엔 이제 갓 태어난 어린잎들이 달려 있었다. 고개를 잠시 돌리면 바다였다. 그것도 좋았다. 섬 트래킹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드디어 무의도 세렝게티가 웅장하게 나타났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을 가본 이라면 ‘이게 뭐야’라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아무도 안 가봤기에 일단 외마디 감탄사부터 지르고 시작했다. 그래도 두 번 해봤다고 다들 수월하게 텐트를 피칭하고 새로 추가한 헬리녹스 아이들을 꺼내 본격적으로 휴식. 그 짧은 심호흡을 위해 우리는 전날 밤새워 촬영했고, 제안서를 고쳤고, 도시에서 치열했다.


경량화가 생명인 백패킹에 통 크게 판티니 에디찌오네 와인을 가져온 C 형님은 와인 오프너를 안 가져왔다. 그 망연자실에 한참 웃고 나의 멀티 툴을 드렸을 때, 얼굴에 터졌던 그 섬광을 잊을 수 없다. 진짜 우당탕탕 백패킹. 낙조 명당에 자리를 잡았건만 갑자기 몰려든 구름 떼가 양아치 같았다. 순식간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려졌다. 찰랑이며 술맛을 돋우던 파도 소리도 저 멀리 아득해졌다. 마치 이 섬에 우리만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절벽 위로 맹수 한 마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엔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래서 귀신도 못 왔나 보다. 풍속의 소음은 마치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연 것과 비슷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땅이 물러지고 바람에 못이 빠질 수 있다. 못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 두는 것이 좋다. 문제는 추위였다. 4월 중순인데도 급격히 떨어진 기온과 비 탓에 꼼짝없이 텐트에 몇 시간 동안 갇히고야 말았다. 그 핑계로 우리는 아침에 가장 큰 텐트에 옹기종기 모여 커피콩을 갈고, 발열팩으로 끓인 물로 커피를 내리며, 전투식량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해가 중천에 뜨자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여전했다. 살면서 바람과 이리 거칠게 싸워본 적이 있을까? 우리는 으리으리한 자연의 심통 앞에 허리를 숙이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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