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초 Joe Cho Feb 24. 2024

하얀 나라를 보았니

2018년 1월 홋카이도 로드트립 ep.6

하룻밤 사이에 비에이(美瑛, Biei)의 하늘은 기분을 풀었다. 창밖으로 유쾌한 하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걸 증명하듯 선명한 햇살이 차가운 공기를 사정없이 푹푹 찔러댔다. 숙소에 비치된 유카타를 입고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 식사를 즐겼다. 특별한 것 없는 일본식 아침 뷔페가 그날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남녀노소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다 같이 수련회에 온 듯 정겨웠다. 숙소 근처엔 시로가네 온천이 있어 유독 어르신 투숙객이 많았다.


렌터카는 눈으로 완전히 덮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차 트렁크에 빗자루가 들어있었는데 이걸 왜 넣어 놨는지 그때야 이해가 됐다. 족히 10㎝ 높이는 넘어 보였다. 적설량의 스케일이 넘사벽이다. 이날은 홋카이도의 동쪽 끝에 있는 시레토코로 가는 날이었다. 다음날 유빙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시레토코까지 거리는 약 300㎞지만 고속도로가 없어서 가는 데만 약 5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가려 했다. 숙소 근처에 유명한 폭포가 있다고 해서 그것만 보고 가려 했다.


흰수염폭포는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흰 수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 폭이 약 40m로 가늘고 길게 떨어진다. 얼핏 보면 거인의 턱수염 같기도. 별도로 전망대가 마련돼 있는데 발을 내딛기 망설이게 하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 끝에 걸려 있는 ‘0.7㎞’라는 팻말이 해발고도를 짐작게 한다.


바위에서 솟아난 지하수는 30m 아래 비에이강으로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온통 백색 배경에 바위의 거친 피부가 유독 도드라졌다. 아래 비에이강은 코발트블루 색을 띠었다. 아마도 강바닥으로 흘러든 광물의 영향 때문이다. 폭포수에서 떨어져 나온 물기와 소소히 내리는 눈이 뒤섞인 천연 미스트가 얼굴을 촉촉이 적셨다. 폭포 너머의 풍경이 궁금해 드론을 띄웠다. 침엽수가 빼곡히 만들어낸 겨울 숲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순간 어제 눈보라로 보다 만 패치워크 로드가 뇌리를 스쳤다. 서둘러 드론을 불러들이고 어제 아쉬움을 두고 왔던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지금 여기가 이 풍경이면 그곳은 더할 거야.’


예상은 적중했다. 눈 폭풍이 이곳에 남기고 간 흔적은 장엄했다. 지구복사 에너지와 빛이 난반사돼 눈이 시렸다. 끝없이 펼쳐진 겨울왕국을 보러 온 이들로 명소들은 북적였다. 눈이 잠식해 버린 지표와 이제 갓 수증기가 응결된 새하얀 구름의 경계는 모호했다. 이름 모를 작은 짐승의 고독한 발자국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 동화책 속에 있고, 텔레비전에 있고,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그런 하얀 나라를 보았다. 동화 속 세상에 홀린 나는 어느새 시레토코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흐린 기억 속의 비에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