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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Mar 17. 2024

고래와 고래상어데스까?

2019년 1월 오키나와 투어 ep3.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었다. 바다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고. 풍부한 먹거리와 놀거리, 대륙 간의 이동을 위한 길목 등 바닷가에만 살아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고 매우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산소통에 의지해 ‘바다’라는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순간, 어쩌면 이 지구의 주인은 바닷속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속은 우리가 다가가기 어려운, 타인의 속 마냥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래서 수족관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 미지의 세계를 수조라는 아주 작은 미니어처로 담아내 단돈 몇만원 정도에 아주 편하게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바다’라는 자유를 빼앗고 자연의 법칙을 깨 인간의 욕심을 채운다는 면에서 동물원처럼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바다의 세상을 동경하는 관람객, 생태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공존의 방식이라 정당화하고 싶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지금껏 가본 수족관 중 가장 인상 깊다. 다양한 심해 생물과 이국적인 물고기들 특히, 마스코트인 8.8m의 거대한 고래상어가 주는 임팩트가 강렬했다. 이렇게 큰 생명체가 내 눈앞을 유유히 지나가다니! 오키나와에 단 하루만 머물 수 있다면 난 이곳에서 종일 있겠다고 하겠다.


설렘으로 가득 찬 발걸음을 수족관으로 내딛자마자 돌고래들이 쇼를 하며 반겨주었다. 돌고래쇼는 하루 5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1층으로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방에 여러 수조들만 환히 불을 밝히고 있다. 한편으로는 실험실 같기도 해 음산하기도 하다. 이곳은 오키나와 주변 수심 200~700m 깊이에 사는 심해 생물 약 150종을 모아 놓았다. 심해 생물은 수온과 빛, 수압 등에 매우 민감해 채집과 사육이 워낙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만큼 우리가 만나기 어렵고 희귀하다. 마치 외계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낯선 미지의 생물과 마주하다 보면 조물주의 엔지니어링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2층으로 올라가면 메인 무대인 ‘구로시오의 바다’가 나온다. 그야말로 오키나와 바다 한 귀퉁이를 잘라 왔다. 7,500㎥ 용량의 수조는 꽤 압도적이다. 두께 60㎝의 아크릴이 이 엄청난 무게의 해수를 지탱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봤던 그 ‘구로시오 해류’에 사는 해양 생물 70종이 한꺼번에 노닌다. 이곳 수족관의 주인공인 고래상어도 이곳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추라우미 수족관에 따르면 이 고래상어의 이름은 ‘진타(ジンタ)’라고 한다. 2024년 현재 추라우미 수족관에서 사육한 지 29년째다. 세계 신기록이다. 천장이 아크릴로 투명하게 드러난 ‘아쿠아 룸’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으면, 좀 더 보태서 말해 마치 바닷속에서 숨 쉬는 듯한 착각이 든다. 타이밍이 좋다면 만타가오리의 날갯짓도 밑에서 가까이 보인다. 카페 ‘오션 블루’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음료, 디저트 등을 즐기며 편안히 앉아서 물고기들을 관전할 수 있다. 수조 아크릴과 붙어 있는 9석의 좌석은 시간제 지정석이다. 선착순이며 40분당 500엔의 요금을 내야 한다. 아깝지 않은 가격이다.


추라우미 수족관에는 고래상어만 있는 게 아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오키나와의 ‘해변’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노의 생물들’에서는 오키나와 얕은 바다에 사는 생물 40종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이노’란 오키나와 사투리로 ‘산호초로 둘러싸인 얕은 바다’를 뜻한다. 참고로 이곳 레스토랑 이름 역시 ‘이노’다. 압권은 ‘산호 바다’다. 300㎥ 규모의 수조에서 오키나와 산호가 가득이다. 지붕이 없어 오키나와의 자연 햇살이 그대로 들이치고 오키나와의 해수가 끊임없이 공급된다. 그래서인지 10년 이상 자라고 있는 장수 산호도 많다. 약 80종 440군체의 산호가 이곳에서 숨 쉬고 있다. 사육원이 직접 오키나와 모토부초 바닷속을 보고 참고해 거의 그대로 조성했다. 이 대목에서 조물주의 예술적 감각에 다시 한번 손뼉을 치게 된다. 기념품숍에 딱 이 풍경의 미니어처가 있길 희망했다.


오키나와에 와서 추라우미 수족관에 가는 것을 계획한다면, 그냥 종일 할애하길 권한다. 고래상어 말고도 눈길과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매력적인 생명체들이 가득하다. 마트 수족관에서 스쳐 지나가듯 지나가지 말고 천천히 이름과 설명을 흡식하며 둘러볼 가치가 충분하다. 당일에 한해 재입장도 가능하다. 수족관은 국영 오키나와 해양 박람회 기념 지구에 있어 그 자체로 거대한 공원이다. 그래서 수족관 외부도 산책하기 좋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1975년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의 시설로 시작됐고 2002년 리뉴얼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추라우미’는 오키나와 방언으로 ‘아름다운 바다’라는 뜻이다. 이곳 수족관을 대변하는 말로 이보다 더 적확한 것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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