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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Mar 18. 2024

일본의 고래 이야기

2019년 1월 오키나와 투어 ep4.

추라우미 수족관에서 고래상어를 실컷 보고, 진짜 고래를 보기 위해 배에 올랐다. 오키나와 연안에서는 1월부터 4월 초까지 혹등고래를 볼 수 있다. 이 기간이면 수많은 보트가 관광객을 태우고 혹등고래를 찾아 나선다. 운이 좋으면 고래가 힘껏 점프하며 광활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광경도 볼 수 있다. 더 운이 좋으면 갓 태어난 새끼 고래도 볼 수 있다. 투어 업체는 혹등고래를 볼 확률은 99%라고 장담한다. 초음파 수중 센서와 지역 어부들의 도움으로 고래를 찾고 나면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시간이 좀 걸려도 분기공으로 “퓨휴” 하고 숨을 내뿜는 고래를 볼 수 있다. 포유류인 고래는 아가미가 아닌 폐로 호흡한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아주 멀리서 온 혹등고래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온 관광객을 태운 보트가 한참을 달렸다. 파도가 심해 뱃멀미가 심한 이들은 꼭 멀미약을 먹어야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지?’라는 의구심이 들 때쯤 어디선가 호들갑스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누군가 혹등고래를 본 것이다. 고래가 나타난 쪽으로 삽시간에 시선이 몰렸다. 불과 20~30m 거리에서 커다랗고 까만 무언가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가 곡선을 그리며 사라지길 반복했다. 혹등고래였다.


야생의 혹등고래는 수족관의 고래상어보다 더 컸다. 대왕고래가 혹등고래보다 2배는 크다는데 그 크기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눈앞에 나타난 혹등고래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환호성이 나올 만한 점프도, 갓 태어난 새끼 고래도 없었지만, 자연의 바다 수면에서 존재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관찰이었다. 고래를 직접 보다니!


고래의 주된 먹이는 플랑크톤이다. 이 플랑크톤은 추운 바다에 많다. 대체로 적도로 내려올수록 바다가 깨끗한 이유는 플랑크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를 찾는 혹등고래도 주로 알래스카 바다에서 머물다 겨울에는 따뜻한 오키나와로 온다. 새끼를 낳고 몸을 추스르기 위해서다. 혹등고래에게 오키나와는 산후조리원 같은 존재다. 다 자란 고래는 피하지방이 두꺼워 추위에 강하고 지느러미의 혈액량을 조절해 체온을 컨트롤할 수 있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는 그렇지 못해 오키나와처럼 따뜻한 곳에서 태어나야 한다. 먹이도 어차피 모유라 걱정 없다. 다만, 어미 고래가 먹을 게 없다. 그래서 어미 혹등고래는 오키나와로 오기 전에 엄청 살을 찌워서 온다. 성체 고래 입장에서 오키나와 바다에는 먹이가 부족해 거의 유일한 천적인 범고래와 마주칠 일이 없어 당장의 신생 고래 육아에도 유리하다.


그런데 범고래보다 더 오랜 천적이 있으니 인간이다. 오키나와에서만 고래가 목격되는 것은 아니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바다가 고래의 회유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은 예로부터 고래를 중요한 생활 자원으로 여겼고, 고유의 포경 문화가 형성됐다. 일본의 신석기 시대 일부인 조몬 시대에는 해안으로 흘러 들어온 고래를 바다가 주는 은총이라고 여겼다. 포획한 고래는 식용 이외에도 기름과 뼈 등을 모두 활용했다. 에도 시대에 이르러서는 조직적인 포경 산업이 시작되면서 일본 전국에 고래고기가 활발하게 보급됐다. 고기와 피는 염장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내장 등은 현지에서 소비했다. 고래 고기는 차츰 일본의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아 갔다. 패전 후의 식량난 또한, 고래가 구원하면서 일본 국민의 건강까지 책임졌다. 1962년까지 일본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을 보면 고래가 소와 돼지, 닭을 현저히 웃돌았다. 


그러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 회원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상업 포경이 금지됐다. 하지만 일본은 연구 목적을 명분으로 해마다 최대 1,000마리 넘는 고래를 잡았다. 일본 수산청은 고래 고기는 고단백, 저지방이고 오메가3와 불포화지방산 등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며 섭취를 적극 권장 중이다. 오키나와에서 혹등고래를 보러 가기 전, 일본이 IWC를 탈퇴할 거라는 뉴스가 들려왔다. 결국 일본은 그해 7월 IWC를 떠나며 수산청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래류 자원은 중요한 식량 자원이며, 다른 생물 자원과 마찬가지로 최상의 과학 사실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식습관·식문화는 각각의 지역에 놓인 환경에 의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으로, 상호 이해의 정신이 필요하다."


저 때 이후로 일본 근해에서 얼마나 많은 고래가 잡혀 식탁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꼭 잡지 않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어다 주는 고래는 확실히 '바다가 주는 은총'이 맞다. Sea bless you.



오키나와 연안에 나타난 혹등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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