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John Lennon)의 '이매진(Imagine)'
최근 휴가를 맞아, <이매진 존레논 展>이 열리는 한가람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작품들에 대해선 레논이 머물던 시대의 향기를 얕게나마 맡을 수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은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 마지막 과제로 존 레논의 '이매진'이라는 곡에 대해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음악 감상 및 비평>이라는 교양 수업이었고, 주제는 '19~20C 음악가 한 명을 선정하고, 그의 음악 중에서 음악적·시대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곡에 대해 서술하라'였습니다.
대부분의 대학 과제가 그러하듯, 이 글 역시 인용과 표절 사이에서 표류합니다.
레포트를 써 내려가는 3시간 동안 '이매진' 한 곡만을 반복해서 들었더라죠.
그렇게 들었거늘, 전시회 입구에서 들려오는 레논의 목소리는 여전히 반가웠습니다.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봐요.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우리 밑에 지옥도 없고, 우리 위에는 하늘만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만을 생각하며 산다고 생각해봐요."
존 레논(John Lennon)의 대표 곡 ‘이매진(Imagine)’의 첫 노랫말이다. 존 레논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 비틀스(Beatles)의 리더이자 핵심 인물이었다. 1960년대를 온전히 그들의 것으로 품고 전 세계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비틀스가 1970년 해산되고, 이후 멤버들은 각자 빛나는 활동을 했다. 존 레논 역시 비틀스 이후 솔로로 다양한 곡들을 발표했다. 여러 명곡들이 있지만, 존 레논의 사상과 감성이 가장 잘 묻어나는 곡은 단언 ‘이매진(Imagine)’이라 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움직임이 포착될 때, 사회 각계에서 여러 운동들이 일어날 때, 전쟁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바랄 때, 진정한 평화가 자리 잡길 기대할 때, 존 레논의 ‘Imagine’은 어김없이 플레이된다. 공산주의의 잔혹함이 깃든 체코 프라하엔 수많은 거리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 만든 ‘레논의 벽’이 있고, 후세의 많은 아티스트들은 레논의 영향을 받았다고 시인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선 아이들의 수화, 그리고 레논의 생전 영상과 함께 ‘Imagine’이 울려 퍼졌다. 올림픽의 정신은 평화와 화합이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평화, 반전(反戰)의 노래로 발표 이래 지금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곡이기에, 이번 레포트 주제로서 존 레논의 ‘Imagine’을 선정했다.
존 레논의 고유한 색깔은 독자적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비틀스 시절 멜로디 위주의 소위 말랑말랑한 음악을 하려는 폴 매카트니와 항상 부딪혔던 레논은 솔로 전향 이후 급진적 세계관이 담긴 노래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레논은 1968년 ‘Revolution’이란 노래를 싱글로 발표하며, 사실주의적, 정치적 요소가 함유된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갔다. 사회 속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자신의 사회적 사상을 노래에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권력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라는 메시지의 ‘Power to the people’, 노동과 노동자 계급에 찬사를 보내는 ‘Working class here’, 당시 여성들이 갖는 숙명적 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등이 그러하다.
레논은 기본적으로 무신론자였고, 아나키스트였으며, 반(反) 자본주의자였다. 종교와 전쟁, 국가를 부정적으로 바라봤고, 자본주의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소유(possession)’에 대해 사회악이라고 여겼다. 욕심이 없고, 배고픔 역시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이러한 레논의 사상이 음악적으로 총망라된 곡이 바로 ‘Imagine(1971)’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에서 레논은 천국과 지옥, 국가와 돈, 욕심과 배고픔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몽상가임을 기꺼이 자처한다. 그리고 그 터무니없는 꿈이 하나 둘 모일 때 비로소 세상은 평화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레논은 이렇듯 음악으로 이른바 좌파사상을 펼치고,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과감히 의견을 표출했다.
존 레논을 설명하는데 빠질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아내 요코 오노다.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로도 활동한 요코 오노는 존 레논에게 아주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일본인 예술가이다. 주로 음악 안에서 멜로디와 가사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레논이 요코 오노를 만나고 나서 음악 바깥의 세상에 귀를 더욱 기울이게 되었다. 세간의 커플 존과 요코 부부의 가장 유명한 사회적 행위로는 1969년 네덜란드에서 벌인 ‘평화를 위한 침대(bed) 시위’를 꼽을 수 있다. 레논의 곡 ‘Imagine’ 역시 요코 오노의 영향을 받았다. 레논은 요코의 책 <Grapefruit>(1964)에 실린 ‘Cloud piece’란 제목의 짧은 시 중 ‘Imagine the clouds dripping. Dig a hole in your garden to put them in.’이라는 문장에서 ‘Imagine’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실 두 결과물 사이에 내용적으로 어떤 커넥션이 있는지는, 레논이 아니고서야 잘은 모르겠다.
‘Imagine’은 얼핏 듣기에, 듣기 쉽게 잘 만들어진 부드러운 팝 같다. 하지만 가사와 메시지를 잘 살펴보면 그것이 세상의 열광을 이끌어낼 만큼의 내용인가 싶기도 하다. 기존 체제를 깡그리 무시하고 완전히 새롭고도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노랫말이 가히 보편적 주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곡이 상업적 대성공을 이룬 까닭은, 진보적 사상의 가사와 달리 잔잔하고 은은하면서 부드러운 질감의 멜로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희망적 분위기가 대중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창작자에게 아쉬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레논은 인터뷰를 통해 “멜로디가 워낙 빼어난 탓에 심혈을 기울인 가사가 묻힌 경향이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가사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에 대비하기 위해 멜로디와 곡 분위기를 부드럽게 진행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메시지를 떠나 곡 자체만 놓고 보면 심플함이 가져다주는 미학으로 점철되어 있다. 트랙이 끝나갈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루핑(looping)되는 피아노 반주는 심플하지만, 곡이 지니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 큰 공을 세운다. 특히, 두 건반 음이 반복해서 연주되다 그 위로 진행되는 3 연음 도입부는 이 곡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다.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자신의 곡 ‘Don’t look back in anger’에 ‘Imagine’의 도입부를 인용, 그들의 명곡 리스트에 해당 곡을 추가했다. 뿐만 아니라 레논은 ‘Imagine’의 후렴구 시작과 끝에 ‘아하!’, ‘유후~’ 등의 추임새를 넣는데, 이 부분이 거센 노랫말이 주는 근엄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듣는 사람이 자신의 곡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확히 계산하고 그 느낌을 음악적 요소로 구현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1971년에 발표되어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존 레논의 곡 ‘Imagine’은 음악을 넘어 레논이라는 사람 자체를 대변한다. 그리고 그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코 오노의 영향력 역시 이곡은 함유한다. 실제로, 이제껏 ‘Imagine’의 작곡가는 존 레논이었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이 곡의 작곡가는 레논 한 명이 아니게 되었다. 아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레논의 말에 따라, 그와 함께 ‘Imagine’의 공동 작곡가로 요코 오노가 지정된 것이다. 또한 이 곡은 캄보디아 공산주의 정권의 양민 대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킬링 필드>(1984)의 엔딩 신(scene)에 삽입되면서 노래가 갖는 반전(反戰)과 평화의 의미가 더욱 커지기도 했다. 이는 좌우 이념 대결과 핵전쟁의 위협으로 지구촌이 떨고 있을 때 이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노래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존 레논이라는 음악가와 ‘Imagine’이라는 곡은 대중음악뿐 아니라 사회적 변화로까지 후세에 미친 영향력이 실로 막대하기에 이외에도 관련 소식과 에피소드들은 끊이지 않는다.
한편으론 이 곡이 시대의 특정 소비 형태에 따라 상징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Imagine’은 레논의 아나키즘 사상을 대변하는 노래다. 물론 곡 자체에 평화와 반전에 대한 메시지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곡의 주된 표면적 메시지는 아나키즘의 주장이다. 곡이 발매된 1970년대 당시의 미국은 히피 문화가 태동하면서 동시에 무정부주의, 다시 말해 아나키즘의 성향 역시 서서히 그 입지가 커지고 있었다. 더불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찬반 대립이 거세게 일었고, 동시에 동서구의 이념 갈등까지 엮여 있었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적 흐름 속에서 무국가 무정부 세상을 꿈꾸는 ‘Imagine’은 자연스레 아나키즘의 성향보단, 평화와 반전의 상징으로서 대중에게 소비되었다. 해석이 왜곡됐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중이 자의적으로 곡의 의미를 해석하고, 특정 상징으로 소비하고 향유한 경향이 실재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존 레논이 세상을 떠난 지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곡은 여전히 빛난다. 단순히 높은 음역을 소화하거나 기교가 뛰어나다고 해서 훌륭한 뮤지션과 명곡이 탄생되는 건 아니다. 레논의 목소리는 명량하지만, 때론 껄렁껄렁 불량스럽게도 들린다. 코드 진행은 단순하고, 가사 역시 어려운 어휘로 쓰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곡들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신념과 사상, 가치관을 진솔한 목소리로 음악에 담았기 때문이다. 꼭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내야만 가치 있는 음악은 아니지만, 어쨌든 레논은 그걸 잘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레논이 47년 전에 ‘Imagine’이라는 곡을 만들며 꿈꾸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신음한다. 배고픔이 없는 세상은 결코 올 수 없는 걸까. 레논이 꿈꿨던 평화로운 세상은 언제쯤 찾아올 것인가. 그리고 언제쯤 우리는 웃으며 ‘유후!’를 외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