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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Feb 21. 2024

21살 첫사랑에게 연락이 왔다

‘….?!!! ’








"나야, 잘 지냈어?"  

"누구...?"




사실 나는 누군지 단번에 알았다. 그 사람이었다. 잊었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별것 아닌 여섯 글자에 심장이 요동치고 마음이 무너진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사랑이 있다. 너무나 아련하고 애틋해서 차마 잊히지 않는 첫사랑.      





스무 살 무렵 그를 처음 만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때였고 그래서 더욱 빠르게 사랑에 빠졌다. 가족도 찬구도 마음 둘 곳 없던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연애였다. 이렇게 승률 좋고 짜릿한 게임이 어디 있겠는가.      




그 무렵 나는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미성년자인데 주변에서 성인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잔뜩 어깨에 뽕만 들어간 나이. 자의식 과잉이 절정에 달해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지만 자존감은 바닥인 상태.




그래서 누군가 옆에서 텅 빈 나를 채워주었으면 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누구든 내 목덜미를 잡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해주길 기다리며.      



  

그때 그가 옆에 있었다. 학창 시절 선배였던 그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다.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사람. 뒤늦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매일 붙어 다니며 20대를 함께한, 온통 나의 젊음이던 사람      

      




그는 나에게 연인이자 오빠이자 엄마이자 아빠였다. 내가 가족문제로 힘들어할 때, 이유 없는 불안감에 초조해할 때, 취업이 되지 않아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늘 그가 함께 있었으니.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면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던 청춘이었다. 밖에서는 늘 유쾌하고 사람 좋은 척했지만 안에서는 분노와 적개심, 열등감과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이 시기 나는 내 모든 문제를 가정의 불화로 결론지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나는 부족한 자신을 받아들일 그릇이 안 됐고 그저 남 탓하기에만 급급했다. 중요한 시기에 부모님이 나를 돌봐주지 않아서,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비뚤고 불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며 마음속 미움과 원망을 키웠다.      




그도 아버지의 부도로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고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결핍과 결핍은 찰싹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는 어린 나이에도 남자답고 책임감이 강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밥벌이부터 시작했고 가족의 생계도 책임졌다. 당시엔 그런 그가 무척이나 어른 같았다.




그는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여동생처럼. 배고프면 밥 사주고, 외로우면 곁에 있어주고. 이토록 좋은 사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한 번은 부모님과 싸우다 집을 뛰쳐나왔다. 20살 초겨울 밤이었다. 잠옷 바람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와 추위에 떨고 있는데 생각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오빠.. 자?”

“아니 아직. 안 자?”

“응... ”

“... 설마 밖이야?”

“...”

“어디야? 지금 갈게”    




조금 뒤 그가 왔다. 급하게 나온 차림이었다. 잠옷 바람에 운동화를 구겨 신고. 뛰어왔는지 몸이 뜨거웠다.




"왜 이러고 있어?"

"... "

"... 우선 어디 들어가자"




그는 항상 그랬다. 곤란한 건 묻지 않았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혹은 알아도 별 상관없다는 태도로.




함께 있으며 늘 따뜻했다.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복잡한 내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이 됐다. 굳이 눈물을 보일 필요도 힘들다도 징징댈 필요도 없으니. 구차하고 찐득한 속내를 보이지 않아도 되었으니.




'일찌감치 시집이나 가버릴까?' 힘들 때마다 구원인 듯 도망치고 싶게 만들던 사람.




그런 사람에게, 20대의 또 나른 나였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한다. 가끔 악몽까지 꾸는, 진짜인가 땀 흘리며 까무룩 깨게 만드는 그 남자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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