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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우 Aug 31. 2023

브로카 실어증 이야기

브로카 실어증의 증상

남편은 

브로카 실어증이다. 


베로니카 실어증과 함께 일반적으로 알려진 실어증 유형이다. 

이들 유형은 뇌의 손상 부위에 따라 구분되며, 전혀 다른 증상을 보인다. 


베로니카 실어증은 (언어의 입력)과 관련있다.

말을 듣고 이해하는 부위인 베로니카 영역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뇌의 측면, 청각신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손상되면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문맥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등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브로카 실어증은 (언어의 출력)에 관여한다. 

입을 움직여 말을 하거나 손을 사용해 글씨를 쓰는 등 언어를 출력하는 활동은 주로 브로카 영역이 담당한다. 전두엽, 뇌의 앞쪽에 운동신경 근처에 위치한다. 


남편은 뇌경색으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되어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일상 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되었지만, 예전 수준까지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다.


발병 직후 2주 간은 거의 아무 말도 못했다. 2주 후부터 이름이나 간단한 단어 정도는 말할 수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남편은 손으로 입 주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끔찍하게 답답했어... 여기가 묶인 것 같았어."




어려운 것


1. 주로 말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거나,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문맥에 맞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도 어려웠다. 


이를테면,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아프다고 한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글이... 잘... 안 지어져.” 

말이 안 나온다는 문장을 도저히 만들어낼 수가 없는거다.


한번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교회에 나가자.”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이 웬일로? 병원 안에 교회에 예배 드리러 가자고 대답하니 고개를 젓는다.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다 결국 답을 찾아냈다.

“아... 교외에 나가자고?” 남편이 끄덕인다. 

몇 주째 병원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답답해서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 말 한마디 하기가 이토록 어려웠다. 


2. 당연히 글을 쓰는 일도 어려웠다. 

처음에는 펜으로 글자를 쓰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카톡에 답장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달 정도 지나자 단어 정도는 쓸 수 있게 되었고, 3개월 정도 지나니 1시간 동안 3문장 정도 쓸 수 있었다. 문법도 맞춤법도 엉망이었지만 어쨌든 글을 쓰는게 가능해졌다. 


브로카 실어증 환자들의 기분을 표현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난 이상한 기분을 느끼는데, 나에게는 무엇인가 꼭 해야 할 중요한 말이 있고 그 말을 할 능력도 지녔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그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 또한 전혀 쓰지 못한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가능한 것.


1. 우선, 그 와중에도 문장을 듣거나 읽는 건 가능했다. 

"여기가 어디야?"라는 질문에는 대답 못하지만, "여기는 병원이야."라고 말하면 "병원이야."라고 따라 말할 수 있었다.  "손 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보여주면, 망설임 없이 자기 손을 내민다. 

 

물건을 식별하거나 간단한 숫자 계산도 가능했다. 

천원을 달라고 하면 천원 짜리 한장을 집어준다. 2천원을 달라고 하면 오백원 짜리 동전 4개를 집어주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할 뿐이다. 


가장 신기했던 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는 거다. 

정확한 발음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심지어 가사를 외운 노래는 완창도 할 수도 있었다. 재활의학과 선생님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물었다. 선생님은 음악은 주로 우뇌가 관여하기 때문에, 왼쪽 뇌가 손상되도 노래 부르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해주셨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신기하다!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기까지 1년 정도 걸렸다. 사람마다 회복 속도나 양상이 천차만별이라 한다. 남편의 경우, 언어 능력을 100점 만점으로 볼때 20~30점 정도 수준에서 재활을 시작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비슷한 상황에 계신 환자 및 보호자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글을 남겨볼 생각이다.

모두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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