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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우 Aug 31. 2023

죽음이 두려울 때 기억할 것

우리의 죽음은 단지 전원의 차단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죽음이란 영혼이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릴 때, 교회에서 배운 천국과 지옥의 개념 덕분이다. 불교의 윤회 사상을 알게 된 이후에는 영혼은 다른 몸으로 옮겨간다고 여겼다.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어느 날,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그날따라 날이 좋았다. 크레파스로 박박 문질러 칠한 듯 하늘이 새파랗다. 남편이 뇌경색으로 입원한 지 몇 주가 지났다.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닐 정도로 회복되었다. 답답해하는 남편을 데리고 병동 휴게실로 향했다. 


1인실 앞, 열린 문 사이로 중년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상의 단추를 반쯤 풀고 있어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목살이 눈에 띈다. 보통 1인실에는 상태가 위중하거나 돈 많은 사람이 입원한다. 얼핏 봐선 후자인 것 같다. 

휴게실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고, 남편은 휠체어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병실로 돌아가는데 1인 병실 안이 소란스럽다. 슬쩍 들여다본다. 간호사가 누워있는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 중이다. 환자의 아내가 어깨를 흔들며 말한다. 

"여보, 정신 좀 차려봐요! 이 사람이 잠에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돌아갔다. 환자들은 원래 잠을 많이 잔다. 


몇 시간 뒤, 휴게실에 놓고 온 게 있어 복도로 나왔다. 직원 두 명이 반대쪽 복도에서 침대를 끌고 온다. 하얀 시트에 쌓인 말랑말랑한 물체가 놓여있다. 그 뒤로 간호사와 환자의 아내가 울면서 걸어온다. 아내는 한 손으로 짐을 옮겨 들더니, 남은 손으로 간호사 손을 꼭 잡아준다. 벽처럼 보이던 철문이 열리고, 침대와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간다. 복도에 홀로 남은 간호사는 계속 운다. 1인실 앞, 텅 빈 병실이 깨끗하다. 그가 존재했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사라지겠지?



나의 본질은 영혼이 아닌 전자의 이동일지도 모른다. 

'유일무이한 영혼' 대신 '어디서나 똑같은 전자의 움직임'이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실제로 영혼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없다.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아무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뉴런을 발견했고, 뇌의 작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의식은 뉴런의 연결에 의해 발생한다. 뇌세포가 손상된 뇌졸중 환자들, 그들은 모든 것을 잊는다. 자기 자신조차 잊는다. 


인간은 대체 뭘까? 의식이 전기자극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감정까지 느끼는 진보된 인공지능 로봇과 나의 차이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혈액이 돌고 심장이 뛰는 것? 동물도 가진 그 특성? 



죽음 역시 전원의 차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단순히 전기자극으로 움직이는 시스템 하나에 전원이 공급되지 않는 게 아닐까? 

나의 의식도 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 


죽음은 유일무이한 영혼의 소멸이 아니다. 그저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한다고 생각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단지 죽음 이후의 삶을 모르게 때문에 두려운 거다. 상상력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드니까.


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 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 <작별 인사>, 김영하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한 건 죽음뿐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벌어질 일이다. 그것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에게 공평하다.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특별한 참사가 아니며, 나만의 저주나 형벌도 아니다.*



이 생각은 내가 삶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 인용 출처 : 알랭드 보통은 <영혼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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