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 의미 퇴색되고, 권위 상실하고... 넘쳐나는 국내 시상식의 문제점
지난 14일 'Mnet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가 최종 마무리 되었다. 한국, 일본, 홍콩에서 총 3일에 걸쳐 펼쳐진 이 호화스러운 시상식을 끝으로 지상파 3사의 연례축제를 제외하면 모든 행사가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걸. 20일 열린 '대한민국대중음악시상식(KPMA, 한국대중음악상과 다르다)'에 이어 내년까지 이어지는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가온차트 뮤직 어워즈' 등이 남아있었다.
올해만 해도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AAA)', '멜론 뮤직 어워드(MMA)', '지니뮤직 어워드(MGA)', 이름도 긴 '소리바다 베스트 케이뮤직 어워즈'까지 시상을 마쳤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가요 시상식은 과포화로 보이는 상황에서 내년까지 이어지는 '어워드' 행렬은 팬들도, 관객도 모두 지치게 한다.
약 반년에 걸친 투표 시스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당최 알 수도 없다. 싸이 이후 방탄소년단(BTS)이 불러온 제2의 K팝 물결에 너도나도 숟가락 좀 얹어보자는 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상파에서 매년 연말 방영되는 축제 형식의 가요 프로그램도 과거에는 시상을 했으나 현재는 모두 폐지된 상태다. MBC <가요대제전>은 2006년 시상식 자체를 없앴다. 이듬해부터 SBS <가요대전>도 시상하지 않다가 2014년 앨범상과 음원상 부문을 잠시 도입했다.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는 행보다. KBS <가요대축제>는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다 지난 2013년 엑소(EXO)의 '으르렁'을 끝으로 인기상 및 노래상 제도를 폐지했다.
폐지의 이유는 공정성 논란과 과열된 경쟁 및 투표 시스템이었다. 올해의 가수 혹은 노래를 시상하는데, 방송횟수와 문자 투표가 수상자 선정에 반영되었다. 방송횟수는 말하자면 가수의 해당 방송 기여도를 수상의 근거로 삼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매년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고 일부 가수들은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결국 지상파 3사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축제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시상식을 대신하게 됐다.
하지만 여러 방송사 및 음원 사이트 시상식의 공정성 문제는 여전하다. 곧 28회를 맞는 '서울가요대상'의 본상과 신인상에는 모바일 인기투표가 30% 반영되고, 'Mnet 아시안 뮤직 어워즈'와 '멜론 뮤직 어워드' 역시 주요 수상 부문에 투표를 반영한다. 올해로 1회를 맞는 '대한민국대중음악시상식'을 비롯해 MBC와 손을 잡은 '지니 뮤직 어워드'는 모든 부문에 팬 투표가 반영됐다(주요부문 각각 20%, 20~30%). 개선의 여지없이 온갖 시상식만 늘어가는 실정이다.
이러한 투표 시스템은 팬들의 경쟁을 유도해 시상식 주최 측이 이윤을 취하는 구조다. 투표 시스템은 모바일 앱을 다운받아 가입한 후 포인트를 적립해 투표권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팬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 잡다한 광고에 여러 번 노출되어야 하거나 유료로 투표권을 사야 한다. 결국 좋아하는 아이돌에 헌신하는 이들의 열정을 이용해 주최 측의 배만 불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는 유료 투표권을 판매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AAA' 측은 스타플이라는 앱을 통해 무료 투표권을 지급했는데, 특정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설문 조사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진행된 '대한민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수여한 인기상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기상은 100% 유료 투표로 수여했는데 1위를 차지한 워너원과 2위를 차지한 엑소가 인기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팬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투표의 의미가 사라진 셈이다.
국내 시상식의 공정성 의혹은 투표 시스템뿐만 아니라 각 시상 부문에서도 드러난다. 여전히 3개국 개최의 당위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MAMA'는 주요 부문 외에도 '베스트 유닛', '월드와이드 탑텐', '아시안 스타일', '베스트 트렌드' 등 비슷한 속성의 상을 여러 개 개설해 자기 식구 챙기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소리바다 어워즈'는 '본상'에 11팀을, '특별상'에는 무려 총 31팀을 선정했다. 한 부문에 서너 그룹을 수상자로 올리는 'AAA'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러한 악습을 타파하려는 노력도 있다. '한국대중음악시상식(KMA)'은 지난 2017년 투표로 선정되는 '네티즌' 상을 없앴으며 '가온차트 뮤직 어워즈'는 올해 팬 투표로 진행되는 인기상을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시상식은 수상 남발로 권위를 떨어트리고 과도하게 수익 창출만 노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내에서 열리는 시상식들은 대부분 '한국의 그래미'를 꿈꾼다. 그러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미국 그래미 어워즈 역시 장르 편파주의, 상 몰아주기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는 하지만 최소한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아티스트를 주요 부문에 후보로 올린다. 2016년에는 정규앨범도 아닌 믹스 테이프를 발매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 챈스더래퍼(Chance the Rapper)에게 신인상을 안겨주는 도전 정신도 발휘했다. 보수적인 그래미조차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비주류 음악은커녕 아이돌 노래 외의 대중음악조차 소외시키기 일쑤다. '골든디스크'와 '서울가요대상', 'MAMA', 'MMA'처럼 오래된 시상식부터 'KPMA', 'AAA' 등 신설된 시상식들은 아이돌에 유독 친화적이다. 대상은 물론 주요 부문 수상 및 인기상까지 모두 아이돌 그룹들이 휩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해야 티켓 판매와 유료 투표로부터 얻는 수익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래미 어워즈는 노미네이트 자체만으로도 영예다. 오죽하면 제61회 그래미 어워즈 신인상 부문 후보에 오른 팝 스타 비비 렉사(Bebe Rexha)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겠는가. 반면 한국에는 아티스트들이 진정 수상의 영광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시상식이 단 한 개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K팝을 알리기 위해 아이돌을 포함한 모든 아티스트가 열심히 발로 뛰는 동안 시상식을 개최하는 이들은 '한탕주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권위와 당위는 찾아보기 어려운 2018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