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잘 사는 진리 Mar 10. 2024

철없는 동기 오빠들의 의외로 멀쩡한 재테크 관찰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동기가 많다. 그중 같은 영업 마케팅 본부만 5명이다. 나만 여자고 나머지는 다 남자다. 우리는 6년 차인데, 나이도 고만고만한 오빠들은 듬직하진 않고 그냥 웃기다. 제일 형아인데도 제일 철없는 인간, 은은하게 도라이 기질을 갖고 있어 진짜로는 하지도 못할 매운맛 대응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인간, 격한 상남자 스타일인데 회사 동료가 아니었다면 절대 가까이 지내지 않았을 인간, 사상이 독특해서(우리가 맨날 어디 가서 큰일 날 소리니 X랄 말라고 함) 진짜로 절대 가까이 지내지 않았을 인간, 뽀송뽀송한 외모에 나보다 한 살 많을 뿐인데 영혼이 부장님인 인간이 있다.


 요즘은 바빠서 잘 못 모인다지만, 예전에는 점심을 종종 같이 먹곤 했다. 식후 커피를 들고 원형 테이블을 두고 삥 둘러앉아 오빠들의 개드립에 배꼽 붙잡고 웃노라면, '혹시 이 인간들이 내게 주어진 삐뚤어진 복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이야기는 재테크에 관한 것인데, 아무래도 급여 수준이 고만고만해서 맞춤형 얘기들을 나눌 수 있다.



결혼과 재테크


두 명은 결혼을 했고, 두 명은 결혼 예정이고, 제일 나이가 많은 한 명은 어찌 되려나 모르겠지만, 결혼적령기 30대 초반들이 나누는 재테크 이야기에서 결혼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회사 젊은 선임급 남자들은 희한하게 결혼을 빨리 하는 편인데, 29살에 결혼해 아기를 낳은 동기도 있다. 모든 걸 털어놓는 건 아니지만, 얼추 반려자와 어떤 식으로 재테크를 하고 있다, 할 예정이다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둘이 힘을 합치는 것이 시너지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것이긴 하지만, 확실히 급여생활자 둘이 있으면 대출받을 수 있는 규모가 커진다. 직장인은 결국 누가 누가 대출을 잘 받아서 내 집 마련을 빨리 시작하고 잘 굴리느냐의 문제인데, 이게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현실이라고 받아들였을 때, 두 사람 몫의 저축과 대출을 합치면 확실히 금액이 커진다. 체감상 내가 굴리는 돈의 세 배 정도가 되는 듯하다. 물론 결혼 전에 와이프 또는 예비 와이프가 모은 돈이 충분치 않아서 참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도 노동과 대출의 뫼비우스 띠를 타고 자산 불리기로 가지 않으면 답이 없는 직장생활에서 두 사람이 미래를 위해 힘을 합친다는 건 사랑과 생존 사이의 대담한 결정이다.




재테크 방식


우리의 재테크 방식을 둘러보면 도박형은 없다. 한 번씩은 다 소액으로 코인떡락 및 상장폐지의 처참한 맛을 봤기 때문일까. 2024년 상반기 비트코인의 눈부신 약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지 못했다. 우리의 재테크 방식은 철저한 절약형과 부동산형, 부업형으로 나뉜다. 주식 투자는 대부분 병행하고 있다.


1. 절약형

오빠들은 대체로 돈을 잘 쓰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어마어마한 스크루지 영감이 두 명 있다. 그 둘이 얼마를 모았는지를 듣고 심각한 자아 성찰에 빠졌던 적도 있다. 그런데 절약에 대한 감정은 그 둘이 사뭇 다르다.

 M 모씨는 일주일에 티 두 개, 바지 두 개를 돌려 입는다. 심지어 연말정산을 할 때 1년에 천만 원도 안 써서 세금을 도로 토해내는 사람이 이 양반이다. 그러면서도 힘들어하지 않고 되려 다른 사람들이 낭비하는 것에 대해 잔소리를 한다.

"아니, 돈 쓸 일이 뭐가 있어? 난 충분해!"

절약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상태로 충분해하고 만족을 느끼는 그를 보며, 다른 동료들 역시 절약을 다짐하기보다는, 뭔가 비싼 걸 살 때 동기 오빠에게 보여주면 또 얼마나 어이없어할지를 기대하며 낄낄댄달까. 우리는 1년 후배들과 친한데, 한 여자 후배가 사 온 키링이 5만 원이라는 것을 듣고 식겁하는 모습은 아직도 선연하다.

"지출 단속반 출동. 그게 왜 필요해? 너 돈 많아? 나중에 토끼 같은 자식 재롱 볼 때 쓸 돈인데?"


 다른 절약형 인간인 C 모씨는 가끔씩 현타를 호소한다.

"현타 온다. 사고 싶은 거 안 사고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악착같이 아끼면서 살고 있는데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 오빠도 제법 큰돈을 모았다. 확실한 성과가 있으니 현타가 와도 결국엔 ‘오늘도 절약을 해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2. 부동산형

 동기 A 모씨는 일찍이 결혼이 경제생활임을 깨닫고 착실하게 재테크를 하고 있다. 와이프가 예뻐서 좋다는 그는 예쁜 와이프와 경제관념까지 잘 맞아서 즐거운 재테크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A 모씨는 한참 부동산 시장이 뜨거운 때에 결혼을 하면서 서울 내 아파트에 신접을 차렸다. 집값이 제법 올랐을 때 내 집 마련을 하면서 대출 상환 계획을 읊던 모습이 생각난다. 만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아내에게 ’이 사람이다!‘ 하는 감정을 느낀 A 모씨는 재빠르게 본인의 저축 및 자산 현황을 공유하며 와이프와 미래를 그려왔다고 했다. 한쪽 급여는 모두 대출 상환에 밀어놓고, 다른 한쪽의 급여는 생활비에 쓰면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뭔가 뉴스에 나오는 신혼부부의 이야기와 동 떨어져 보였다. 귀여운 딸랑구를 낳아 잘 지내고 있다. 우리 중에 제일 안정되고, 행복해 보인다.


 나도 부동산파이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도 있지만, 사정이 다르다. 우리는 결혼을 한대도 각자 자산을 관리하기로 했다. 혼자 힘으로는 서울 아파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지방을 중심으로 투자가 된 상태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처음이 어렵지 이후에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는 다를 거라는 엄마와 랜선 부동산 선생님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나도 내 나름대로 행복하다.


3. 블로그형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느라 식사 자리에서 고기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Y 모씨도 있다. 회식을 하러 갔는데 폰을 건네며

“사진 좀 찍어줘”

“고기를 좀 가까이서 찍어야지”

하고 고나리를 한다. 선배님들 안 계셨으면 욕을 해줬을 텐데.

 Y 모씨는 블로그 유경험자였던 나에게 블로그로 밥 공짜로 먹는 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봐서 이것저것 내가 아는 선까지는 알려줬다. 근데 정작 나는 블로그를 관뒀고, Y 모씨가 제대로 하고 있다. 제법 열심히 해서 이제는 체험단으로 밥을 공짜로 얻어먹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원래 유수대학 경제학과를 나온 사람인데, 입사 초기에 경제 시황과 주식을 줄줄 읊어대던 때를 생각하면 이질감이 느껴진다. 똑똑하긴 진짜 똑똑하구나 생각했는데. 진짜 똑똑하니까 옳은 길을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소문을 내고 다닌 건지 블로그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주변에 권하고 다닌다는 소문도 있다. 요즘 직장인 부업이야 누가 주변에서 권하지 않아도 온갖 곳에서 이야기가 나오니, 이 오빠가 권해서 한다기보다는 원래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



20년 뒤에

 

 취뽀의 기쁨에 절어 연수 때 내일이 없는 망나니처럼 놀던 우리가 언제 이렇게 현실감각을 갖고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났는지 격세지감을 느낀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위바위보 내기로 누구 한 명의 눈물이 섞인 커피나 한잔씩 들고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깔깔대다가, 일하러 가자고 하는 누군가의 알람에 급격히 사회생활 모드로 돌아선다.

 “20년 뒤에도 우리 이러고 있는 거 아니야?”

 어떤 날은 이대로 가면 손가락 빨고 사는 거 아닌가 싶다가, 또 어떤 날은 이만 하면 괜찮은 것도 같다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불안이 찾아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책상 위에 토끼 같은 자식 사진 올려놓고 회사가 시키는 일 하면서 숨 죽이고 살겠지.“

 어째 프레시한 느낌이 없고 세상 끝날 듯 다 늙어 버린 이 사람들을 어찌할꼬. 우리가 수다 떠는 테이블 옆 원피스 칠무해(*)처럼 둘러앉아 있는 은퇴 앞둔 책임님들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인 걸까.


* 칠무해 :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등장하는 일곱 해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