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배가 되려고 노력할 자신이 있어!
회사가 좋은 나, 비정상인가요?
나는 회사가 좋다. 변태는 아니다. 지금 회사 만한 곳이 딱히 없을 것 같다는 정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사람들이 좋기 때문이다. 일이야 어딜 가나 비슷할 거라는 생각도 있고, 복지는 떠돌아다니는 정보가 있으니 비교가 가능하지만,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좋은지는 다녀보지 않으면 모른다. 다녀보니 좋다. 회사 선배나 동료를 주말에 만나는 일은 없지만, 만나자고 제안이 들어온다면 남자친구에게 투덜대지는 않을 사람들이 몇 있다.
내가 첫 후배였던 책임님과의 티키타카
그중 한 분은 민X책임님인데, 내가 인턴 후 정식 입사한 첫 팀에서 사수였다. 언니들이 밍블리라는 별명을 붙여서 당황스러웠던, 지금은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체격이 큰 남자분이다. 책임님에게도 나는 팀의 첫 후배였다.
책임님과는 수상하리만치 대화가 잘 통한다. 티키타카가 된달까? 책임님과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재밌는 소재는 단연 쇼핑이다. 나한테 200만 원짜리 원피스도 사 입어 보라 했던 책임님은 구두에만 수백만 원을 써봤다 하셨다. 이번에도 가죽 재킷을 하나 마련할지, 워크 재킷을 하나 마련할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책임님과의 대화 안건 중 하나로 상정하게 됐다.
“책임님, 저 가죽 재킷이랑 워크 재킷 중에 하나 하려고 고민 중이에요. 뭐가 어울릴까요?"
"가죽재킷? 근데 너는 세련된 느낌은 아니잖아요."
"...(빠직) ...안 그래도 세련된 느낌 아니고 좀 캐주얼한 느낌으로 골랐거든요?"
"아, 요런 느낌? 요건 어울리겠네. 워크 재킷은 뭐예요"
"워크 재킷은 요건데, 귀엽죠? 근데 제가 옷을 추레한 걸 입으면 애도 추레해져서..."
"아까 가죽 재킷 사요. 지금 결제해"
그 자리에서 결제를 해버렸다. 며칠 뒤에 카드값을 보고 배송 전이길래 취소를 하긴 했지만, 아무튼 책임님이랑 쇼핑 이야기를 하면 재밌다.
책임님이랑 대화하면 의외로 교훈이 있네요?
그런 책임님이랑 하는 이야기가 영양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영양가가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냥 웃기고 재밌어서 ‘영양가’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달까? 그런데 최근에 두 번 식사를 하면서 책임님이 회사 생활에 지쳐 흑화 된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더랬다.
"그래도,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너는 아직 선임이지만, 나는 책임이잖아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더라고.“
“음, 그래요?”
“응. 너도 책임 되면 느낌이 다를 거야.”
책임님의 이야기를 곱씹다가 생각이 제멋대로 툭 튀어나왔다.
“근데 책임님이랑 대화하면 의외로 교훈이 있네요?”
내 말에 책임님은 웃지도 않고 짜증 내지도 않고 말씀하셨다.
“너도 선배 되어보면 힘들어하는 후배한테 같이 회사 욕만 해줄 수는 없을 거야. 얘가 나랑 시간을 들여서 대화를 했는데, 남은 감정이 좋아야 할 거 아냐. 그래도 힘내자고 해야지.”
생각해 보면 그렇긴 하다. 나도 후배와 일이 쉽지 않다고 투덜대다가 결국에는 나라도 제정신을 붙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잘해봐야지 어떡하겠니’하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팀장님이 나중에 후배를 잘 다독여서 일을 해낼 수 있는 팀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시기도 했다.
좋은 선배가 되려고 노력할 자신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부정적인 말만 하는 선배보다는 그래도 힘내자고 해주고, 정답은 아니어도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긍정적인 말 한마디 남겨주는 선배가 내게도 좋은 선배님으로 남은 듯하다.
그나저나, 책임님은 매번 밥을 사주신다.
“책임님, 뭐 먹을까요?“
“먹고 싶은 거 골라요. 사줄게.”
“오늘은 제가 살게요!!”
“됐어. 너 후배 사줘요“
“후배가 안 들어오는데 어떻게 사줘요...“
“하긴... 그럼 커피 사요.“
책임님처럼 나도 긍정적인 말 잘해줄 수 있는데, 아니, F식 공감, T식 조언 등 그냥 온갖 말을 원하는 대로 맞춤으로 해줄 수 있는데, 후배는 언제 들어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