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다양한 단어를 구사하면 대화에서 한 끗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대화하는 상대방에게 늘 듣던 뻔한 단어가 아니라 조금 다른 단어를 쓰면 분명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표현이 단순화되고 직관적이어서, 조금만 신경 쓰면 한 번 더 내 말을 곱씹게 할 수 있다. 어려운 단어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쉬운 단어라도 입에 붙여서 쓰면 감상을 표현할 때에도, 누군가를 칭찬할 때에도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오히려 쉬운 단어인데 낯설어서 더 좋을지도?!
좋다
모든 좋은 감정을 '좋다'는 단어로 퉁치기엔 아쉽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같은 '좋음'도 조금씩 다른 면이 있지 않은가 싶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왔던 김대명 배우가 나영석 PD와 함께 하는 '맛따라 멋따라 대명이따라'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김대명 배우가 말했다.
"이게 또... 반찬에 한 잔 마시면, 기쁘거든요"
순간 단어를 곱씹게 됐다. 기쁘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반찬들과 한 잔 들이켜는 막걸리가 환희를 불러오기라도 하는 느낌?
'뭔가 진짜 좋은가 보네?'
기쁘다, 즐겁다는 표현을 최근에는 많이 못 들어봐서 그런지 괜히 조금 더 좋게 느껴진다.
예쁘다/잘생겼다
예쁘다/잘생겼다 하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다고는 하지만, 자칫하다간 구태의연하게 보일 수가 있다. 보통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매력적이다', '귀엽다', '청순하다', '훈훈하다', '비율이 좋다'는 말을 많이들 쓰는데, 우아하다, 세련됐다, 아름답다, 무게감이 있다는 표현들도 반응이 좋다. 특히 30대 이상이신 분들께는 더 잘 먹히는 것 같다. 언젠가 회식 자리에 하여튼 까마득한(아마도 나보다 20년은 더 다니신 듯?) 선배이신 여자 책임님이 계셨는데, 다른 책임님들이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 한때 회사의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한 분이신 것 같다. 정말 말씀도 곱게 하시고, 기품이 느껴진달까? 그런 분이셔서 술을 잔뜩 마신 채로 책임님과 두 손을 붙잡고 대화를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눈썹을 시옷자로 만들며) 책임님은 그냥 예쁘신 게 아니에요.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세요!"
책임님이 아주 좋아하셨다.
"어머, 정말? 아름답다? 호호호"
활짝 웃으시며 나에게 어쩐지 느낌이 좋은 후배였다며, 회사를 꼭 오래오래 다니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물론 '웃음이 예쁘다'처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도, '얼굴 천재'처럼 재미난 수식어를 쓰는 것도 좋다. 꼭 하나의 압축된 단어가 아니더라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니, 나만의 드립을 개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똑똑하다
센스 있다, 지혜롭다, 비상하다 등으로 써볼 수 있다. 사실 엇비슷해 보여도 표현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건 사뭇 다른 느낌이라, 적절하게 써주면 그야말로 센스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적재적소에 잘 맞는, 상대가 좋아할 만한 대응을 하는 사람은 센스가 있고, 큰 그림에서 볼 줄 알고 무던한 태도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두뇌 회전이 빨라 다른 이들은 생각지 못한 대안을 내놓는 사람은 비상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주관적인 느낌은 그렇다. 아무튼 여러 후보 단어들을 갖고 있다가 상대에게 맞게 잘 써주면 그 단어는 상대방을 높이면서 나까지도 높이게 된다.
꼭 단어의 수준이 올라가지 않아도 다양한 표현과 조합을 쓰면 대화가 맛깔나고 재밌어진다. 별 거 아니지만 조금만 다른 단어나 표현을 쓰면 '나는 이 상황에서, 당신에게서 이러이러한 것을 조금 더 느꼈다'는 것을 티 낼 수 있고, 여상하게 흘러가던 수많은 이들의 단어와 문장 속에서 약간의 특별함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좋다' 말고 나의 좋음을 표현하는 괜찮은 단어를 찾아두면 꽤 쓸모가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