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CS 상담사, 고객님
마케팅팀에 오고 나서는 회사 다니면서 이렇게 정신없이 일한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바쁘다. 퇴근하면 진이 빠진다. 마케팅 활동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 여러 가지를 대부분 맡고 있다. 프로모션 기획, 캠페인 설계, 검색광고, 디스플레이 광고, SNS 운영, 데이터 추출과 분석 등등 이게 맞나 싶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일의 퀄리티를 따지기가 뭣하지만,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직장인의 비애이자 좋은 핑계 아닐까 싶다.
지금은 앱에 회원가입자 수를 늘리는 게 가장 주요한 일이다. 회원가입을 유도하기 위해서 이벤트를 기획하고, 쿠폰 지급 스킴을 정하고, 페이지 작업과 퍼블리싱을 요청하는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한테 죄송해진다. 일을 하기 위한 거라 어쩔 수 없는 거라지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누군가가 같은 직장인끼리 거 빡빡하게 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은 느낌?
to. 개발자
일단 개발자분들. 순도 100% 문과로서 어떤 일을 거쳐 화면을 개발하는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서 경험해 본 멋들어진 것을 적용해야겠다 싶기도 하고 콘셉트 정도만 떠오르더라도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알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철 덜 든 애가 떼쓰는 것 마냥,
"매니저님, 이거 아시죠? 느낌 아시죠? 그 왜 있잖아요, 쿠폰팩~ 이거 하고 싶어요!"
하는 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는데, 이때 적잖은 현타가 온다.
'내가 이렇게 무식하고 무대뽀였나...?'
다행히 나와 일하는 개발자느님들은 상당히 친절하신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어려움이 있다. 근데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지식을 보완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문제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다. 내가 회사의 데이터 및 시스템에 대한 구조나 개발 과정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냐고! 그분들의 입장에서 상식 이하의 것들에 대한 질문과 N개월 째 멈추지 않는 폭룡적인 질의응답을 하는 것은 물론, 회사에서 진행해 주는 여러 교육, 스파르타 코딩클럽이나 패스트캠퍼스, 유튜브를 통한 개발 강의 등을 찍먹 해보긴 했는데, 그 세계는 참으로 복잡하다. 그러니 요청하기가 더 어렵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떼쓰는 게 더 마음 편했을지도!?
다른 팀에 있으면서 '내가 나중에 마케팅팀 가면 꼭 해봐야지!' 했던 이벤트가 있는데, 전에 해본 적 없는 이벤트여서 어지간히도 신경 쓸 일이 많이 생겼다. 4개월 간 준비했는데 생각지 못한 시나리오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니. 매니저님들의 확인 전화와 메신저가 수 차례 이어졌다.
"매니저님... 제가 괜히 이거 하자고 그랬나 봐요. 고생시켜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ㅠㅠ"
하고 메신저를 보내면, 다행이고 감사하게도
"아닙니다. 선임님 마음껏 하고 싶은 거 하시라고 저희들이 있는 건데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답이 돌아온다. 뭐야 뭐야? 누가 내 마음속에 붕어빵을 가져다 둔 거야?
to. CS센터 상담사
CS센터의 상담사분들께도 참 죄송하다.
'이번에 이런 프로모션을 하는데, 이런 이런 과정으로 진행되는 거고, 50만 명한테 문자 보낼 거니까 CS 들어오면 대응 좀 해주세요! 데헷!'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메일을 써재끼는 게 쉽지가 않다. CS센터에 메일을 쓸 때는 속으로 준비운동을 깨나하고 보낸다. 대고객 활동이니 미룰 수도 없고, 참.
가끔은 강도 높은 CS에,
'와... 이렇게 생각하는 고객님도 있구나...'
'아쒸.. 다음부터 새로운 프로모션은 하지 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불찰이 있으면 후다닥 보상안을 마련해서 전달한다. 그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과밖에 없어서 또 한 번 머리를 조아린다. 어떤 날은 앱 이벤트 서버가 터지는 바람에 CS센터가 마비되었다. 밥맛이 똑 떨어져서 회사 다니는 가장 큰 재미인 점심식사를 거르고 사과 공지를 띄우고 사과 문자를 보내고 일단락된 뒤, CS센터 상담사님께 죄송하다고 최소 10번 정도 말씀 드렸다. 그런데 또 상담사님이,
"괜찮아요, 선임님. 그래도 그리 늘 미안하다 고맙다 해주시니 저도 감사합니다"
하신다. 뭐지? 붕어빵이 팥맛도 있고 슈크림맛도 있었구나?
to. 고객님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제가 생기면 결국 죄송해야 할 대상은 고객님들이다. 프로모션 이벤트는 고객님들께 혜택을 드리면서 우리 앱 좀 써달라고 읍소하는 셈이니,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고, 보고 드리고 승인받은 범위 내라면 기왕 하는 이벤트 짜게 굴 것도 없다. 그런데 가능한 시나리오를 전부 생각하지는 못해서 생기는 일이라든가,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생기는 문제 등으로 사과문을 띄우는 경우도 가끔 생긴다. MBTI N으로서,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한다. 앱 메인 화면 팝업에 진짜로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기분 상하지는 마시라고 하소연하는 멘트를 적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다. 결국 언젠가 분명히 쓴 적 있는 문장으로 건조하게 사과 공지를 띄운다.
'고객님, 앱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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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녀 보니 신세를 지는 것도 능력이다. 어차피 일은 생길 수밖에 없고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 일을 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잘 대화해서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가가 핵심인 듯하다. 기왕 다니는 회사,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좋은 이야기도 들으면 좋으니까.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내일도 신세 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