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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Jun 24. 2024

제사 - 7

개성음식 - 보쌈김치

겨울 밥상 한가운데는 항상 보쌈김치가 차지한다. 독에서 보쌈김치 한 개를 김치보시기에 담고 조심스럽게 겉껍질을 벗길 때는 약간 긴장감마저 돈다. 가장 먼저 벗긴 배춧잎은 가장 프른색이고 다음 배춧잎은 연두색이고 마지막 배춧잎은 노란색이다. 보통 서너 겹의 배춧잎을 벗기고 나면 한 스푼 정도의 김장양념과 함께 채 썬 밤 실고추 잣 몇 개에 고수까지 살며시 놓여있다. 그리고 그 위에 잘 숙성된 시큼한 국물을 충분히 뿌린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국을 떠서 밥 옆에 놓으면 상차림이 완성된다. 모든 식구들이 밥상 앞에 앉는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가장 안에 있는 잎은 남기기도 한다. 가장 안에 있는 노란 잎을 연장자이신 아버님께서 젓가락으로 벗기시면 그 모습을 보고야 비로소 나머지 사람들이 수저를 들고 밥 먹을 준비를 한다.    


  

붉은색의 양념과 곱게 채를 썬 밤의 흰색, 싱싱한 푸른색의 고수잎에 가늘게 썬 붉은 실고추와 잣을 헤치면 흰 배추 줄기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배추 줄기 사이사이에 나박나박 썬 무가 들어가고 간이 배게 양념을 박아 넣는다. 이 모든 재료를 배춧잎으로 싸는데 가장 안쪽에 노란 고갱이 잎으로 다음은 연두색 잎으로 가장 밖에는 거친 푸른 잎으로 싸여 있다.      



안에 있는 김치는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먹으면 되지만 밖으로 갈수록 넓고 큰 잎은 찢어야 먹을 수 있다. 어느 한 사람이 손으로 죽죽 찢어 보시기 옆에 걸쳐 놓으면 사람들은 하나씩 갖다 먹는다. 보통은 어머님이 배춧잎을 찢지만 내가 눈치 빠르게 찢어놓는다.      




보쌈김치의 맛은 칼칼하고 시원하다. 양념이 강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맛이다. 독에서 바로 꺼낸 김치국물은 마치 사이다같이 쨍하다. 김치냉장고가 없던 시절 김치맛은 시간에 따라 다르다. 약간 덜 익은 상태에서 먹기 시작해서 잘 익어가면 우리는 맛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김치가 푹 익어서 시큼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쌈김치는 김장할 때 만드는 여러 김치 중 한 가지다. 보쌈김치만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지 않는다. 가을이 되면 각종 채소에 맛이 든다. 가을배추와 가을 무는 일 년 중 가장 맛있다. 추석이 지나면서 동치미 무가 나올 때는 동치미를 담고 알타리 무가 나올 때면 총각김치를 담는다. 겨울로 접어들어 가장 하이라이트가 김장이다.      

김장 날이면 보통 포기김치가 중심이고 깍두기 호박김치 파김치 갓김치 등을 담고 무가 많이 남아 무를 절여서 장독에 넣으면 내년 여름에 먹을 수 있는 짠지가 된다. 김장은 김장 날 하루에 할 수 없고 며칠 전부터 준비한다. 김장 날 너무 힘들어 마을에서는 품앗이로 서로 도와 김장을 했다. 김장날 우리 집은 보쌈김치를 만들어서 더욱 일이 많았다.           




보쌈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배추 고르는 것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 어머님은 채가 길어야 한다고 표현하셨는데 배추의 길이가 긴 배추를 말한다. 그래야 줄기 부분과 잎 부분을 분리했을 때 쓰임이 좋다. 보통 100 포기에서 150 포기 밭에서 뽑은 배추를 마당에 쌓아 놓는다. 나는 배추를 절일 수 있도록 배추의 크기에 따라 반이나 사분의 일로 잘라 손질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큰 통에 소금물을 풀어 절인다.      


김치맛의 반은 절임이 좌우한다. 간수 뺀 소금을 사용해야 김치에 쓴맛이 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배추에 숨이 죽으면 손치기라고 해서 배춧잎 하나하나에 소금을 뿌려 넣는다. 배추가 짜지 않게 속까지 잘 절여져야 한다. 이는 보통 밤에 해야 하니 김장 전날 잠자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절이는 일은 힘들어 동서들이 와서 돕기도 한다.      


김장 날에는 새벽부터 분주하다. 우선 절인 배추를 씻고 다른 재료들을 손질하고 각종 그릇들을 준비하고 김장을 해서 담을 그릇을 씻어 준비해 놓는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든다. 형제 가족이나 친척들, 보쌈김치를 오래 만들어 오셨던 어머님 친구분들 혹은 보쌈김치 만드는 것을 직접 보기 위해 음식에 관심이 있는 이웃들도 온다. 어머님 친구분들은 대부분 개성분이시다.    

  

김장 날 하이라이트는 함께 먹는 밥이다. 우선 돼지고기 수육을 삶고 버무린 양념이 준비되면 배추에 싸서 쌈을 먹는다. 국은 된장을 넣은 날배춧국이 맛있다. 함께 먹는 점심은 너무 맛있어 사람들은 올해 김장이 맛있을 거라는 덕담을 한다.      




점심을 먹을 후에는 본격적으로 보쌈김치 만드는 일이 시작된다. 보쌈김치 장인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님 친구 중 한 분이 배추 손질을 하신다. 채가 긴 배추 통째로 약 2~3 센티 길이로 자른다. 너무 큰 줄기는 빼기도 하고 너무 허술하면 다른 쪽의 줄기를 가져오기도 하며 보쌈 하나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대야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올해 보쌈김치를 100개 할 예정이다 하면 준비한 줄기의 숫자가 100개가 되어야 한다. 줄기를 뺀 나머지 배춧잎은 모두 모아 여린 잎 중간잎 큰 잎으로 분류해 놓는다.      


재료가 준비되면 마루에 큰 상을 놓고 모두 둘러앉는다. 상 가운데 무조각, 김장 양념, 채친 밤, 고수잎, 실고추, 잣, 마른오징어 조각, 동태살까지 모든 재료를 올려놓는다. 보쌈을 쌀 사람들은 상에 빙 둘러앉는다. 사람마다 상 앞에 자리를 마련한다. 마련한 앞자리에 우선 푸른 배춧잎을 둥글게 펼친다. 푸른 잎 위에 연두색 배춧잎은 펼친다. 그다음에 노란 배춧잎을 펼치고 배추의 줄기 덩이를 하나씩 받아 그 위에 놓는다. 배추 줄기가 놓으면 그 사이사이 각종 재료를 박는다. 가장 위에 양념과 고수 실고추 잣으로 장식을 한다. 각종 양념을 넣고 위에 장식을 한 배추 줄기 덩이를 노란 잎부터 다음 연두색잎 그리고 푸른 잎으로 마무리해서 싸주면 하나의 보쌈김치가 완성된다. 보쌈을 쌀 때 단단하게 여물게 싸야 풀어지지 않는다.  

    

완성된 보쌈김치를 모두 모아 지하 창고에 놓인 독에 차곡차곡 담는다. 보쌈김치가 뜨지 않게 돌로 눌러 놓는다. 사흘이 지나면 어느 정도 물이 생긴다. 물이 적으면 군덕내가 나기 때문에 사흘 후 젓갈을 끓인 물을 식혀서 부어 물을 보충한다. 일주일 이상 익어야 맛이 난다. 식사 때마다 하나씩 꺼내 상에 놓는다.      


가장 정성껏 담은 김장김치는 설날 차례상에 올린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마치면 모두 모여 떡국을 먹는다. 개성사람들이 먹는 조랭이 떡국과 편수 보쌈김치는 잘 어울린다. 맛이 깨끗하고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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