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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Jun 24. 2024

제사 - 6

개성음식

신에게 음식을 바치는 제사라는 의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 고대부터 인류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신에게 의지했다. 고등종교 출현 이후에도 종교에 따라 형식이 달라졌을 뿐이지 신을 의지하는 행위는 같다. 유교가 기본적 국가 이념으로 세워진 조선시대는 조상을 모시는 제사의식이 엄격했다. 근현대를 지나면서 부모에 대한 효사상을 포함한 제사라는 의식은 우리 민족이 오랜 시간 몸에 밴 문화다.  따라서 형식은 달라져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제사의식에는 음식을 동반한다. 제사음식은 시대에 따라, 지방마다, 집안마다 다르다. 제사음식 차리는 것이 너무 과도한 허례허식으로 준비하는데 힘이 들어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일단 사람이 모이면 먹을 것이 있어야 하기에 꼭 필요하다.


나는 유교집안에서 자랐지만 그리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라 의식을 꼭 지켜야한다는 생각은 없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의 재료를 살 때는 제일 좋은 것을 깎지 말고 사라' '음식을 담다 떨어뜨리면 다른 새것으로 올린다' '복숭아는 제상에 올리지 않는다' 등등 터부시 하는 많은 사항은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거나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몽매한 보통 사람들을 교육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속에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나는 제사음식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제사음식은 지방마다 다르다. 바닷가 지역에는 해산물이 많고 기호지방에 부잣집 제사상은 육고기가 많다. 불천위 제사까지 지내며 유교문화가 남아있는 안동지방의 제사상은 오히려 간소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오가는 종가에서는 음식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종가음식이 따로 발전하기도 한다.





우리 시댁의 고향은 개성이다. 시아버님께서는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시는 만큼 개성음식을 좋아하셨다. 어머니께서 설날이면 기본적으로 보쌈김치, 조랭이떡국, 개성편수를 준비하셨다. 같은 음식이라도 개성음식은 화려하고 손이 많이 간다. 충청도 산골 양반 출신의 집안에서 자란 나는 음식을 저렇게까지 힘들게 만들어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개성은 송도 혹은 송악으로 불렸으며 고려의 수도였고 항구가 가까이 있어 삼국시대부터 중국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까지 무역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어디나 그렇듯 상업이 성한 고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물자가 풍부하다. 사람들이 많고 물자가 풍부하면 의식주를 기본으로 문화가 발전한다. 송상이라 하여 개성의 상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개성음식은 맛깔스럽다. 음식솜씨가 좋은 집안은 맛도 맛이려니와 깔끔한 모양과 정결하고 아름다운 기물이 잘 어울려 혀뿐 아니라 눈을 즐겁게 했다. 개성의 내노라는 부유한 상인의 집안 명절은 세배 오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독상을 차려내기로도 유명하였다. 독상이라도 차린 음식의 가지수가 고루 갖추었을 뿐아니라 담음새가 보기 좋을 만큼 소담했다. 아무리 양이 커도 한 상을 다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눈요기만 시키고 김서방이 먹다 남은 걸 이서방 상에 다시 놓을 수는 없었다.독상에 의례 정결한 백지가 온장으로 딸려 나왔고 차인들은 먹다 남은 걸 거기다 싸가지고 가 처자식한테 눈요기 겸 맛을 보였다. 어른을 모시고 있는 차인들은 먼저 싸 놓고 나서 쌀 수 없는 떡국과 나박지 등으로 요기를 했다.     



소설가 박완서가 쓴  ‘미망’에서 개성음식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송도의 거상 전처만의 집 동해랑에서 전처만의 부인 홍 씨가 준비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홍 씨는 설날이면 전처만이 거느리는 보부상과 소작농과 같은 거상의 집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음식을 장만했다. 그 음식 대접을 받은 사람들은 지체 높은 사람들이 아니다. 오랫동안 전국을 떠돌다 설을 쇠기 위해 고향에 온 보부상이나 동해랑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다. 평소 먹기 힘들었던 음식을 대한 손님들은 상을 받으면 국과 같이 국물이 있어 싸 갈 수 없는 것을 먼저 먹고 전과 같은 것은 식구들을 위해 위해 일부러 남겼다고 하니 얼마나 가슴 찡한 장면인가?   


 작가는 개성음식의 종류와 만드는 법,  음식으로 사람을 대접하는 문화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나는 30년 넘게 명절 차례상을 준비했다. 개성에서 시아버님과 동생 두 분만이 피난 오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개성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셨다. 개성음식은 큰 위안이 되셨다. 설날이면 피난 온 일가친척이 모였다. 명절의 차례상은 곧 고향이었다. 음식은 대부분 개성식이었다.


그동안 내가 만들었던 음식이 개성음식이라고는 하지만 분단 60년이 넘고 나는 물론 시어머니조차 개성에 가보신 적도 없다. 30년 전 시어머니께서 큰집 큰할머니께 배워 오신 것을 솜씨 좋은 어머니에 의해 각색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매우 까다롭게 가르쳐 주셨다. 평소 음식에 대해 정리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번 제사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음식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중 설날이면 먹었던 보쌈김치와 조랭이떡국, 차례상에 놓았던 홍해삼 채나물, 적과 전, 탕과 5색 나물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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