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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무사 Feb 13. 2023

연봉협상에 대한 기대와 오해

근로기준법 제4조(근로조건의 결정)

연봉제는 쉽게 말해 1년마다 연봉이 결정되는 임금지급방식이나, 일반적으로 임금이 연공서열이 아닌 실제 개인의 업적, 능력, 직무 등에 의해 결정되는 임금 결정 구조를 의미합니다. 저는 호봉제(정해진 호봉표에 따라 기본급이 결정되는 임금체계) 기업에서 오래 근무하였기 때문에 연봉협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개인의 업적, 능력, 직무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다니! 이렇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결정이 어디 있을까! 호봉제만 아니라면 직무급이든 역할급이든 무엇이든 좋을 것만 같았죠.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4조      


근로기준법에서도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임은 부인할 수 없을 텐데요. 근로자와 사용자가 정말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임금을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실제 연봉협상에서 저는 협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연봉협상에 대한 기대


저도 사람인지라 매 년 1월이면 기대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 일을 많이 했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했으며 결과적으로 회사에 큰 기여를 했으니, 그 기여분이 연봉으로 책정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김칫국을 마시며 포털에 연봉협상에 대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취업포털, 브런치, 퍼블리 등 많은 곳에서 연봉협상 노하우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이 핵심이었죠.  

   

구체적인 성과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것

감정적 대응보다는 진중한 자세로 임할 것

앞으로의 목표와 대안을 제시할 것     


작년 제가 회사에 기여한 부분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범위가 큰 프로젝트부터 범위는 작지만 제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과업들까지 정말 많은 일을 해낸 것 같았죠. 성과가 분명했으니, 대출이자가 올랐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생활이 어렵다는 내용의 감정적인 대응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히 대표님들께서 아실 거라고 생각했죠. 연봉이 중요한 이유는 생활보장적 측면도 있겠지만 그동안 나의 기여에 대한 인정과 보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늘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겠죠.



연봉협상에 대한 오해

      

“올해부터 인센티브는 00%로 하자.”

“올해 연봉은 000으로 하겠습니다.” 

    

매 번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한 연봉통보를 받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표님들께서 저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셨는지는 모르겠네요. 앞으로의 목표와 대안을 제시하며 협상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연봉 결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대표님과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근로조건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법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인데도요. 구체적인 성과를 객관화하여 제시하는 것부터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한 틈은 없었고, 의견을 제시할수록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나 회사의 결정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되어갈 뿐이니까요. 이런 시선은 사회적인 편견일 뿐이며 근로자는 좀 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협상의 고수도 있으실 텐데요. 그냥 저는 연봉협상 기대에 대해 체념하고 다른 길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봉통보를 받아들이곤 합니다.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봅니다.      


연봉협상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나의 성과와 기여에 따른 보상이 연봉에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협상에서 근로자는 어떤 카드를 제시할 수 있을까요? 대체가능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씁쓸함은 전문직도 다르지 않습니다.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은 대개 사용자의 제시, 근로자의 동의로 마무리됩니다. 이때 동의가 자유의사로 표현됩니다. 연봉통보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근로자들의 자유의사는 능동적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용자는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7조

근로기준법에 자유의사라는 용어는 두 번 사용됩니다. 구체적으로 근로조건의 결정과 강제근로의 금지 조항인데요. 강제근로가 금지되며 근로자는 퇴직의 자유가 있으므로 근로계약서에 30일 전 퇴직 통보 기준이 있더라도 퇴사할 수 있습니다. 재직 중에 근로조건은 자유의사로 결정할 수 없지만 퇴사는 자유의사로 할 수 있으니 다행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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