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입양계약서
나에게 임시 보호를 맡기신 분이 찾아왔다. 이제 드디어 냥이 녀석을 잠시 맡아 돌보는 <임시 보호>라는 비정규 노동조항으로부터 해방돼 입양계획서를 쓰고 정식으로 우리 집의 한 식구로 맞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태어나서 사람 아닌 다른 생명체를 온전히 집안에 들이며 키우는 것은 처음이다.
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로망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꿈꿔왔던 일인데, 나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철없던 어린시절, 동물을 키우고 싶어 입양해 달라고 부모님에게 졸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술김에 하시곤 하셨다. 어머니와 상의 되지 않은 약속을 한 채,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강아지를 데리고 올 거라고 기대했던 나. 어김없이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돌아온 두 분의 손은 텅텅 비어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존재가 보이지 않자 나는 엄청난 소리로 떼를 쓰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대체 강아지 왜 없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옆에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고 너네 키우는 것도 힘들다며 강아지는 무슨 강아지냐고 나무라셨다.
아빠는 멋쩍은 모습으로 너의 엄마가 허락을 안 한다며 엄마를 설득해 보라고 오히려 어린 초등학생에게 책무를 주셨다. 그렇게 어린 시절 동물을 키우는 것에만큼은 아무런 주권이 없었기에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런 내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배고, 한 가정의 엄마가 되자 주도권이 생긴 걸까. 어렸을 적 동물을 키우는 여부만큼은 엄마의 결정권 아래에 있어서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철벽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어 동물을 키우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를 책임질 각오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결단이 아닐까. 이제야 나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나에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혼 후에 딸의 안부가 궁금한지 종종 전화하곤 하시는데, 대화 내용은 대부분 별다른 것이 없다. “임신 중인데 몸은 괜찮은지, 입덧은 끝났는지” 등의 소소한 안부 내용. 그런데 갑자기 “야옹~”하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전화 귓가에 들어갔나 보다. 엄마는 귀신처럼 소리의 정체를 알아듣고 이게 무슨 소리냐며, 고양이 키우냐고 물으신다. 나는 머쓱한 웃음을 내비치면서 “응, 키워.”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무슨 고양이!! 온 사방에 다 휩쓸고 다니고 그 털 어떻게 할 거야.”라며 성화 시다.
아기 낳으면 그것도 어쩌냐고. 그 말에 나는 한마디로 엄마를 제압해 버린다.
“엄마, 이제는 여기 엄마 집도 아닌데 왜그래? 아직도 내가 같이 사는 줄 알아?”
이 한마디에 엄마도 쉬이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나는 너네집 안간다.”라는 말로 당신의 완고함을 드러낼뿐. 유독 털 달린 짐승에게 만큼은 애정을 드러내지 않은 그녀, 철의 여인이시다.
이제는 나의 엄마가 집안의 통치권을 삼았던 곳이 아닌, 나와 남편의 집이란 공간에서 조금 다른 풍경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이다>라는 권위적인 모습보다 그저 털 달린 사랑스런 존재와 함께 살 수 있는 결정권이 있는주인으로서 말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포용하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부모, 그런 유대감 속에 우리가 품고 키워야할 작은 생명체까지. 꿈에 그리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피터지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분명 나의 어린시절과는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