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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탤미 Sep 22. 2020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유진우를 아시나요?

한동안 빠져있던 드라마가 있었다. 2018년 겨울에 방영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것이다. 사실 나는 방영 당시에는 보지 않았고, 추후에 넷플릭스를 통해 봤다. 한번 보고 생각보다 재밌어서 정주행하고 나중에는 보고 싶은 회차나 장면만 연달아 다시 보고 그렇게 3~4번은 본 것 같다.  

내가 그 드라마에 깊이 빠져들었던 이유는 현빈의 변함없는 외모와 박신혜의 닭똥집 같은 눈물연기도 한 몫했지만, 현빈이 연기했던 유진우라는 캐릭터에 깊은 연민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극 중 유진우는 성공한 투자회사의 대표인데, 친한 친구가 자기를 배신하고 전 부인과 바람피워 재혼을 하게 된 후 그를 이기는 것만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인물이다.

어느 날 저녁 그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게임 개발자로 '라이벌 친구 차형석이란 사람에게 게임을 팔려고 했는데 나쁜 사람 같아서 당신에게 팔고 싶다는 것'. 게임 개발자는 무슨 연유인지 다급히 전화를 끊으며 스페인으로 오라고 한다. 그가 만든 게임은 가상 증진 VR로 실사처럼 칼싸움을 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 탑재된 혁명적인 오락이다. 그 게임의 판권을 사러 스페인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원수 같은 친구를 만난다. 그들은 평소에 말로만 싸우다가 제대로 한판 붙고자 한다. 게임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유진우가 차형석을 발라버린다. 그런데 다음 날, 비서로부터 연락이 온다. 어제 게임 속에서 칼로 끝장냈던 차형석이 실제로 죽었다는 것. 게임의 대결이 가상으로 끝난 것이 아닌 한 인간을 진짜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유진우는 친구의 죽음 이후 더 큰 시련을 겪게 되는데, 저절로 게임이 강제 접속되어 죽은 차형석이 나타나 계속 자기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게임 도구인 칼로 그를 베면 죽지만 또 어느샌가 게임 배경음악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치면 어김없이 죽은 친구 차형석이 나타나 다시 유진우를 죽이려고 덤빈다.


게임에서의 죽음이 곧 현실 세계에서도 유효하니 유진우는 노래만 나오면 동공이 떨리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내용으로 보면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게임 판타지 드라마이지만, 드라마 초반에 반복해서 죽은 친구가 나타나 그를 죽이려 하는 모습을 보면 피가 다 말린다.

그는 이 게임의 강제 접속을 피하기 위해 수면제를 계속 먹는다.(잠을 자면 게임이 실행되지 않는다) 그만큼 현실과 가상의 혼동,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 유진우는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겨워진다.

/

자, 줄거리만 말하다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시 본론이다. 내가 유진우라는 인물을 보며 짠하다고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는 대사 한 줄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1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장면이었다.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인 유진우는 회사의 고문으로 있던 교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가 유진우에게 물어본다.



- 너 요즘도 환각을 보냐?


유진우는 대답한다.

- 아니요.


-괜찮냐?


- 괜찮아야죠. 계속 보이면 사람이 살 수가 없죠.



몸은 삐쩍 말라서, 얼굴은 핼쑥해서 '(차형석이) 보이면 사람이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안 보인다고. 괜찮은 것도 아니고 '괜찮아야지' 라며 자기 암시를 거는 듯 대답하는 주인공. 그 대사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짠하게 만드는지. 나는 드라마 속 판타지 같은 저주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시시각각 원치도 않은 게임 배경음악이 흘러나와 적이 나타날까 봐 긴장감속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저 기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에게는 내 건강의 오류가 '살아내기에' 너무 힘들었기에 별것 아닌 대사 한 줄에 유진우라는 인물에게 알게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사람처럼, 혹은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사람답게 밥 먹고, 사람답고 일하고, 사람답게 자는 것이 힘들었기에. 차라리 내 내장을 칼로 찢어 피가 철철 흐르면 과다 출혈로 죽어 이 생을 마감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대체 왜? 그 정도라고? 죽을병 걸렸어?라고 물을 테지만, 위 하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생기는 결과는 개인의 일상 대부분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밤에도 속이 답답해 새벽 2시에 일어나 거리를 배회하고,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이러면 왜 사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또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묻곤 했다. 그 대답은 언제나 소리 없는 절규였지만.


하지만 그 지옥 같은 나날도, 또 드라마 속 유진우의 길고 긴 싸움과 추격도 엔딩과 함께 종결을 내렸고,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위장장애도 '사람답게'살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생각할 때면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리하여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그와 내가 생각난다.


참 수고했다. 끈질기게 살아내기 위해 노력해 주어서. 끝까지 게임 속 적과 싸우고, 무너진 건강 앞에 무릎 꿇지 않아 주어서 참 고맙다. 나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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