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컴플레인'이 너무 어렵다
언제쯤 화를 '잘' 낼 수 있을까?
며칠 전, 대형 쇼핑몰에서 산 식품에 문제가 있어 환불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사소한 다툼으로 감정 소비를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버리고 말았겠지만, 이번에는 괜히 부아가 났다. 해외에서 유통해 온 수입 제품이었던 터라 맛의 변형이 있을 수야 있겠지만, 대형 쇼핑몰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젓이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건 분명 잘못된 처사였다. 마치 복불복을 기대한 것처럼 누군가 집어가면 그만인 안일함에 분노가 고조됐다. 물론 매장에서 유통기한을 살피지 않고 그냥 집어온 내 탓도 있었겠다 싶다가도, 불현듯 이런 상황에서조차 자책하고 있는 스스로가 그날따라 더 부아가 났던 것 같다. 고객센터에 불편 사항을 접수하고, 형식적인 사과를 받았지만 차오른 부아가 가라앉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결국 새 제품을 보내주는 걸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문제는 다시 배송해 준 제품에서도 그전과 동일하게 불쾌한 냄새가 난 것이다. 게다가 마치 나의 컴플레인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듯한 마구잡이식의 포장에 나는 다시 한번 화가 치밀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조금 더 강력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컴플레인을 했고, 점점 목소리가 떨려왔다. 결국 여러 번의 담당자가 돌아가며 거듭 사과를 전해왔고 전수 검사를 해서라도 제대로 된 물건을 다시 보내주겠는 약속을 받고 나는 감정을 추슬렀다. 사실 그 상황에서 나아갈 길은 내 쪽에선 끊임없이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고, 상대는 사과를 하는 것 밖에는 없던 것이다. 활활 타올랐던 감정이 허무하게 꺼져 버리자 마음속에선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적당히 할 걸 그랬나. 괜히 나 때문에 누군가(혹시 응대자가 말단 직원이었거나)는 회사에서 고초를 겪지는 않았을까.' 나는 언제쯤 화를 '잘' 내는 어른이 될까? 결국 내 화는 또다시 자책을 부르고 말았다.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닌 해프닝일 수 있지만, 평소 컴플레인 상황 자체가 익숙지 않은 나에게(저는 웬만해서는 교환/환불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이번 일은 이래저래 스트레스였다. 그 일이 한동안 마음속에 짐처럼 남아 있던 차, 오랜만에 런던에서 한국에 잠시 들어온 지인을 만나 조금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영국 사람들은 그렇게 컴플레인하는 것이 자신을 더 낮추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관공서에서 1시간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내일 오라면 군소리 없이 내일 또 간다. 한국 같으면 난리 났지."
런던에 사는 동안 나 또한 한없이 느린 영국 사람들의 일처리에 대해는 몸소 겪은 바가 많다.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 거의 한 달을 기다려야 했던 것, 맥북을 고치기 위해 한 달 반을 기다려 겨우겨우 예약을 했는데 약속 시간에 1분이 늦었다고 나를 되돌려 보내려던 일화 등. 일상에서 영국의 '신사적 질서'는 만연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느긋한 마음은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나 요구하는 사람 모두가 동등하게 암묵적 동의를 이룬 듯하다. 반면 우리는 늘 요구하는 쪽의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일처리가 빨라지는 묘한 구석이 있다. 외국 생활을 하는 동안 익숙해져서 그런 지 사실 해외여행을 다닐 때면 세상에 흘러가는 이치에 대해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불현듯 펼쳐지거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화풀이를 하며 컴플레인을 거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 현명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계획대로 척척이었던 여행이 있었던가. 거의 모든 여행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뜻밖의 풍경을 만나거나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했을 때고, 만약 갈등의 클라이맥스까지 펼쳐졌다면 잊을 수 없는 여행으로 남는 법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대부분의 일들은 스스로 어떤 상황을 자꾸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세상의 모습이 내 생각과 맞지 않아 울컥한 것.'이라고, 요즘 읽고 있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 속의 숲 속 승려는 이야기한다. 덧붙여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외롭게 만든다'라고 덧붙인다. 애석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연륜이 쌓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을 나만의 시선 안에 가두려 하는 습성이 생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최근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 중 하나가 '저 사람은 왜 저럴까''이런 상황에선 이래야만 하는 거 아닌가.'라는 옳고 그름의 자가검열 같은 것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순간 버럭하는 분노나 의미 없는 부아는 사실 스스로를 더 괴롭힐 뿐이라는 건,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다.
오랜만에 런던에서 온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여행자의 마음이 떠올랐다. 다시 그때의 마음처럼 일상을 살아가려면 손바닥을 덜 세게 쥐고 활짝 편 상태를 유지해야겠다. 조금 덜 통제하고 조금 더 신뢰하는 삶.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덜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으로. 언젠가 또다시 컴플레인을 하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더라도 사사로운 분노와 자책을 거두고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