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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Oct 21. 2022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허허 웃자

갑자기 여기가 도무지 어디쯤인지 모르는 곳에 혼자 남겨졌다.

물론 손에는 배터리 라이프가 65% 정도 남은 셀폰이 있고 백팩에는 랩탑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도시, 이런 동네에서 갑자기 혼자만 뚱! 서있게 될 줄은 몰랐다.

우선 모르는 도시 모르는 길거리에서 서성이는 것은 안전해 보이지 않으니 어딘가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인터넷 서비스가 되는 맥도널이나 스타벅스를 찾았는데 마침 맥도널이 보여서 들어갔다.

매장은 고요~ 했다. 테이블은 4-50개 정도 되는 매장이었는데 그중 5개의 테이블에 '홈리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음료수 한 잔, 혹은 빈 테이블 상태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조용히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런 상황은 그냥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길 건너 '버거킹' 이 보여서 거기로 가봤더니 거기도 마찬가지로 매장이 괴괴~ 한데

손님은 없고 재빨리 둘러보니 창가 쪽 테이블 2개에 노란색 테이프로 'police line' 이 쳐있었다.

여기서도 신속하고 조용하게 뒤돌아 나왔다. 황당한 동네로 구만. 그럼 이제 나는 어디로 가지??

길거리에 나와 오른쪽 한번 왼쪽 한 번 쳐다보는데 저 멀리서 방금 나를 여기에 떨어뜨리고 간 남편의 차가 다시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남편은 나를 길에 내려주자마자 밀려드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여긴 정말 아니다 싶고 큰 일 벌어지겠다 싶어서 불이 나게 다시 내게로 달려왔다고 했다.

차라리 직장인들이 많이 있는 다운타운으로 가자 결정하고 이 도시의 다운타운에 무작정 다시 내렸다.

다운타운인데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의문이 들 정도로 한산했다.

내 손 안의 '구글신' 이 추천해 준 가장 가까운 커피&아침밥 가게에 들어오니 깨끗하고 널찍하고 친절한 목소리의 직원 덕분에 한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침엔 역시 카페인이지

라며 라떼 한 잔을 주문하는 나에게 직원이 "암만, 그렇고 말고." 라며 응대를 해주었다.

아침메뉴도 있는데... 라 길레 어떤 메뉴가 있느냐 물었더니 몇 가지 쭉 나열하는 중에 내 귀에 솔깃한

비스켓+그레이비 가 있었다.

비스킷+그레이비+베이컨 (보기엔 괴상한 음식이지만 이게 중독성이 있다)


오!!! 나 그거 먹을래. 내 추억의 음식!!


미안하게도 다 팔렸단다. 오늘은 그래서 그 메뉴가 없다고.

커피만 받아서 내 자리로 왔다. 어쨌거나 나는 여기서 남편이 다시 나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려야만 하니까.





커피 한 잔의 '힘' 도 슬슬 희미해져 가고

주변의 사람들이 저마다 뭔가 밥 같은 밥을 먹기 시작할 무렵

앉아서 주문하고 결제하면 갖다 준다고

주문해봤다

오! 좋은데?


내 예상보다 괜찮은 밥이 나왔다. 이때 갑자기 내 옆의 옆의 자리에서 버거로 추정되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던, 이 동네 액센트를 강하게 구사하시는 어떤 아저씨가 너무너무 한탄스러운 목소리로

아! 나도 저거 시킬걸

이라고 말했다. 아저씨의 깊고도 진심 어린 후회가 그의 액센트에 진하게 배어 있었다.

나와 그 아저씨는 눈이 딱 마주쳐서 서로 미친 듯이 웃었다. 그 아저씨는 내가 시킨 메뉴가 정확히 뭐였냐고 물었고 나는 메뉴에 생선 종류는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고 말해 주었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옆 테이블에서도 뒷 테이블에서도 소곤소곤 '우리도 다음에는 저것 좀 시켜보자구' 소곤소곤 속삭임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사는 건 참 신기로운 일이라서

드넓은 지구 한가운데 왜 오늘 내가 굳이 여기, 낯선, 한 번도 와보지도 않은, 심지어 도시 이름도 처음 들어본, 다운타운, 구글신이 점지해 준 아무 음식점에 이토록 갑자기 앉아 있게 되는지. 왜 이런 일은 일어나는지.

생전 처음 만난 어떤 아저씨랑 생선 튀김 때문에 미친 듯이 웃고, 주변 사람들의 귓속말을 듣고 등등

오늘 내가 여기에 앉아 있게 되도록 내가 노력한 점이 하나도 없고 내 의도도 없고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나는 왜 지금 여기 앉아 있는가 말이다.


이런 생각을 자꾸만 하다 보면 나는 종종 깊은 불안과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어차피 내 의견 따위는 고려되지 않는 내 인생이로군 같은 생각으로)

하지만 가끔 어떤 때는, 아주 가끔 어떤 때는 혼자서 허허허 웃기도 한다. 그냥 웃겨서.

허허허 웃을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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