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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Nov 18. 2022

만약 나에게 불행이 닥치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여러분?

글쎄....  여러분이 갑자기 나를 어떻게 위로해주나?

하물며, 여기서 잠깐. 여러분은 과연 누구인가?


수십 년 전, 내가 어릴 때 방송사 연말 시상식 이런 거 할 때 보면 가수 윤복희 씨가 나와 열정적으로

'여러분'이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노래 마지막 부분에서 뮤지컬 배우가 독백을 하듯 멘트를 하고

눈물까지 글썽글썽하면서 '내가 외로울 땐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라며 갑자기 질문을 했다.

그리고 장중을 쓰으윽 천천히 둘러보며 진심 누군가를 막 찾고 갈구하는 연기를 하다가

가슴에서 복받쳐 오르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한 손을 펴서 천천히 관객 쪽으로 뻗으며

여 러 분

그러면 관객들은 마구마구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여가수처럼 덩달아 울컥해서 눈물을 찍어내고 그걸 카메라가 클로우즈 업해서 자세히 잡고 그랬다.

그 노래는 원래 그런 연출이 뒤따라야 하는 노래인 듯 거의 매번 그렇게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가 우뢰와 같은 박수로 끝이 나곤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갑자기 이 노래에서 '여러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너무 생뚱맞다고. 지금도 이해가 깔끔하게 된 건 아니다.





몇 년 전 나는 다리뼈가 골절되는 경험을 했다.

엄밀히 말해 다리뼈는 아니고 다리에 속해 있는 뼈- 슬개골- 이 골절된 적이 있다.

'골절'이라는 불행은 나에게 큰 '불행'이었다. 출산을 제외하고 병원에 입원을 해 본 적도, 수술을 해 본 적도 없었던 내가 응급실이라는 곳을 가보고 입원을 하고 보호자도 없이 수술을 하고 또 입원을 하는 등의 일을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의료보험의 천국, 의료 시스템의 천국, 내 나라 한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영어로 '슬개골'을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는데 벌어진 '슬개골' 골절이라니. 아휴.

아무튼 '골절'사건은 그 당시 나에게 불행이었다.

'골절'이라는 불행은 벼락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골절'이라는 불행이 나에게 이렇게 갑자기 일어날 수 있으리라곤 상상해본 적도 없고 불행의 징조- 아... 골절이 되려나- 같은 조짐 같은 건 느껴본 적도 없었다.

으슬으슬 추운 걸 보니 감기가 오려나 같은 느낌적인 느낌 같은 것이 없었다. 그냥 그 '골절 불행'은 나에게 파파박!! 하고 콰과광! 하고 닥쳤다.

'골절 불행'은 몇 초만에 닥쳤다.



우주의 모든 불행 중 단 하나라도 나에게 닥칠 일은 절대 없으리라고 굳게 믿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뉴스에, 방송에, 그냥 일상에.

과연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가. 그들에게 어떤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렇게 살아갈까.


1. 불행은 불행을 당할만한 자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다. 나에겐 불행이 찾아올  수 없다.


2. 불행이라는 것이 만약 닥친다고 해도 나에겐 돈, 명예, 권력, 네트워크 등이 충만하니 그것으로 해결 가능,


3. 불행을 주관하는 '신'에게 노여움이 쌓이기 전에 회개하고 헌금해서 신의 노여움을 풀고 신이 하나하나 적어놓을지도 모르는 장부책에서 '불행'의 흔적을 지우면 됨.


4. 불행을 만들어내는 '신' 은 하나가 아닐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두루두루 여러 종류의 '신' 에게 약을 치고 앞에서 절하고 빌고 돈 내고해놔야 더블, 트리플로 안전함.


어떤 사람은 1번과 3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1,2,3,4 모든 항목을 마음속에 탑재하고 살아갈 수도 있겠다.

나는 1,2,3,4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1,2,3,4를 가져봤자 그것이 나에게 믿는 구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1,2,3,4는 허상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누가 나를 위로해주나. 나는 어디서 안식을 얻어야 하는가 말이다.

오래전 그 노래의 마지막 부분처럼 갑자기 '여러분'이라는 자들이 나와서 나를 위로하고

나에게 안식을 줄리가 없잖나.

생판 모르는 누군가의 불행에 뛰어들어 '위로'가 되고 '안식' 이 되어준 적이 이제껏 살면서 몇 번쯤 있었을까. 나는 남의 불행에 강 건너 불구경인데 그 어느 '여러분' 이 내 인생의 불행에 끼어들어 나를 위로해 주겠는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위로'와 '안식'이 되어주기는 커녕 그들의 불행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여기거나 그들의 불행이 나에게 오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불행은 언제든 나에게 닥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불행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당신도 이것을 알아야만 한다.

요즘 한국 뉴스와 방송에서 가장 많이 얼굴이 나오고 기사가 쏟아지는 top 5의 인물들에게 나는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이건 정말이기 때문이다.



photo by David.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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