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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Feb 11. 2023

멋찌다아 연지나아

사실일까 진짜일까

주말에 남편과 둘이서 저녁을 먹은 후

벽난로에 장작 서너 개를 넣고 불을 붙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넷플릭스 구렁텅이에 빠졌다.

요망진  AI는 우리에게 한국 드라마를 권해 주었다. 우리가 영어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는 걸 요망한 넷플릭스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그렇잖아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이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계속 더 볼지 아닐지는 아마도 첫 10분만 집중해서 보면 결정할 수 있을 거야.

그래그래 그러자.




벽난로 땔감이 떨어져서 중간에 가지러 나갔던 15분을 제외하고

3부인가 4부를 끝내고 '출출한데 라면?' 이래서 한... 20분 지체하고

인트로 스킵 버튼, 넥스트 에피소드 버튼을 번개처럼 빨리 눌러가며

그 한 밤에 시리즈 1을 끝냈다.

드라마를 보면서 같은 말을 100번쯤 한 것 같다.


정말 애들이 저럴 수 있나?


제1차 베이비붐 세대인 남편, 그리고 제2차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나.

한 반에 정원이 70명 정도였고(남편은 70명도 넘었었단다) 한 학년에 15-16반까지 있었으니 얼마나 애들이

학교에 바글바글 했었겠나.

지금이건 그때이건 모범생도 있고 날라리도 있고 깡패도 있고 깡패 부하도 있고 여왕벌도 있고 여왕벌 시녀들도 있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애들도 있고 여자이면서 남자 행색을 하는 애도 있고 남자이면서 여자애들과만 노는 애도 있고 1년 내내 잠만 자는 애도 있고 별별 아이들이 다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

뜨거운 고데기를 들고 남의 살에 문대는 종자들은 본 적이 없다. 들은 적도 없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100번을 똑같이 말하게 된 것이다.


정말 애들이 저럴 수 있다고?




그러나

그런데 말이다. 우리 부부가 '저런 일이 과연 실제일까?' 의문을 갖지 않았던 내용이 있다.

의문은커녕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독한 에피소드를 말해 주겠다며 경쟁했다.

선생이 애를 때리려고 시계를 푸는 장면. 그리고 애를 막 때리는 장면

남자 애들이나 저렇게 때리지 무슨 여고생을 저렇게?

라고 남편이 말했다.

아휴, 말도 마셔. 미술 선생이 이젤 다리를 뽑아서 우리 반 애를 때렸다고.

남편의 에피소드에 밀릴세라, 질세라 내가 미술선생을 소환했다.


옛날에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 기억나? 그거 방송을 찍느라고 우리 학교에 왔었는데 방송 준비를 하는 동안 전교생이 강당에 모였을 때 어떤 까불이가 나와서 앞에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어.
이상한 노래도 아니었어. 그냥 그때 유행하던 노래.
그런데 갑자기 강당 저 끝에서 선생 하나가 맹수처럼 달려와서 냅다 걔한테 가서는
왜 그거 알지? 선생들이 신는 쓰레빠. 갑자기 쓰레빠 한 짝을 벗어서 그 녀석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는 거야. 장학퀴즈 찍으러 온 방송국 사람들도 멍하니 쳐다보고 전교생도 멍하니 쳐다보고....
야만의 시대.
왜 모두들 멍... 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을까.
40년도 훌쩍 지난 일인데 아직도 어제일처럼 너무 생생해. 기억에 상처와 흉터가 남은 거지.
내가 맞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하물며 쓰레빠로 두들겨 맞은 당사자는 얼마나 생생하겠어.
같은 반도 아니었고 친구도 아니었고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나지만 부디 그 쓰레빠로 맞았던 녀석이
어디선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네.
(남편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




더 씁쓸하고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남편이 졸업한 학교도 내가 졸업한 학교도 소위 말하는 8 학군 안에 있는 유명 사립 고등학교라는 것.

야만의 시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시대.

그런 시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해서 요즘 나라꼴이 이런가.

만약 그렇다면 고데기로 사람의 살갗을 지지는 세대가 살아남아 이후에 세상을 통치하는 미래엔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휴.


picture from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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