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껍데기'라는 단어 말고 뭔가 고상한 단어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분명히.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어디든 묻고 찾을 수 있겠지만. 귀찮)
책의 '껍데기'는 엄밀히 말해 책의 표지가 아닐까. 그러니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이 '껍데기'는
책의 표지가 아닌데 껍데기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내가 말하려는 책 '껍데기'는 이런 것.
무자비하게 벗겨내 버린 저런 것. 내가 말하고 있는 껍데기는 저런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책들은 저마다 저런 띠를 책 하단에 두르고 서점에 나오는 듯하다.
미쓰코리아 선발대회, 무슨무슨 아가씨 선발대회에 나오는 참가자들의 어깨에 비스듬히 둘러있는 넓적한 리본처럼 책들도 뭔가 두르고 나와서 팔아야 더 잘 팔리는 건지.
나는 저런 띠가 둘러진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모두 제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지만
책에 둘린 저런 띠를 절대로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고야 마는 성격의 사람들도 많으리라.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책꽂이를 서성이다가 저런 띠를 책마다 배에 두르고 있는 걸 보면 황급히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다.
갑자기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져 오기 때문이다.
어제 배송받은 한국책들. 올 연말을 나와 함께 해 줄 책들. 대여섯 권.
책 모서리가 구부러지거나 찌그러지지 않고 깨끗하게 배송이 되어 기분이 좋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포장지를 벗겨내는데 어김없이 다들 저런 미쓰서울진 같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띠에 씌여진 내용들은 비슷비슷했다. 저명한 인사 누구누구가 추천했다. 어느 신문사에서 추천했다. 지성인이라면 읽어야 할 책이다, 감동과 전율이 어쩌구 저쩌구. 등등.
인쇄는 조악하고 문구도 조잡했다. 폰트라든가 색감도 책 고유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았다.
나는 다소 좀 과격하고 화가 난 손짓으로 저 껍데기들을 팍팍 벗겨내고 꽈꽉 구겨서 버렸다.
책의 표지는 책의 전체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책을 만드는 직업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책 표지를 만들려고 애를 쓸 것 같다.
수십 년째 코스모스라는 책의 표지는 저 사진이었고
윤동주가 그토록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시집은 그의 사후에 저 모습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다.
책의 격조 있는 얼굴을 싸구려 마스크로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그래도 굳이 해야 한다면 격조 있는 얼굴에 걸맞은 실크 스카프 같은 걸 드리워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