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원 Feb 23. 2022

괜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갑 오징어 튀김     

난 오징어 튀김을 좋아한다. 어렸을 적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함께 먹었던 오징어 튀김은 튀김옷이 맛있어서 좋아했던 것 같다. 바삭하고 기름이 밴 고소함이 코와 입을 행복하게 했었다. 어른이 돼서 일식집에서 오징어 튀김을 먹었다. 얇은 튀김옷에 부드럽게 씹히는 오징어 맛은 튀김옷이 아닌 몸뚱이 맛이었다. 포장마차 사장님이 두껍게 옷을 입혀 오징어의 가느다란 다리를 보이지 않게 했던 이유는 분명 있었다.      


가을 신상품이 풍성하게 진열된 스포츠 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점잖게 생긴 남자가 쇼핑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명품 운동복을 입고 같은 브랜드 운동화를 신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젠틀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목소리 톤은 높았다.  

“내가 이 옷을 입고 테니스를 두 게임했는데 땀이 나서 못 입겠어.”

“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운동복을 입고 운동을 했는데, 그것도 테니스란 격렬한 운동을 두 게임이나 했는데 땀이 나서 못 입겠다니. 매장 안에선 삼삼오오 모인 고객들이 남자 고객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게 분명했다. 

고객이 꺼낸 티셔츠는 이미 땀 냄새가 진동했고 몇 차례 건조된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등산용 점퍼를 꺼내 들고 쇼핑 봉투를 바닥에 던진 고객은 둘 다 취소해달라고 했다. 구매 후 한 번도 착용하지 않았으며 착용감이 좋지 않다는 구차한 변명을 했다. 한 시간 이상을 그 점퍼와 다른 점퍼를 비교했던 건 기억에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경우 바로 부딪혀 상황을 해결하는 건 옳지 않았다. 그래서 고객에게 따뜻한 차를 권하며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귀는 고객에게 열려있고 눈은 재빠르게 펼친 점퍼를 살폈다. 목덜미는 기름때가 반질반질했고 주머니에선 담배 니코틴이 손끝에 묻어 나왔다. 작정하고 온 고객의 성향은 어떤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깊은 한숨이 먼저 나왔다. 정해진 답을 들고 온 고객을 설득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티셔츠는 기능성 스포츠 웨어로 통풍이 잘되고 땀을 신속하게 흡수함은 물론 자외선 차단까지 한다고 설명했다. 쾌적한 운동을 위해 최상의 소재로 빠른 건조가 가능한 옷이라고 말했지만, 고객은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같이 들고 온 점퍼도 이미 착용했던 옷이라고 했다. 최대한 고객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으나 고객은 옷을 구겨 들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한마디도 못 하게 했다. 다른 고객들도 피해를 볼까 한 발짝씩 물러서고 심지어 그냥 나가는 고객도 있었다. 그 시간은 꽤 길게 느껴졌다.

고객의 옷을 다시 받아 든 나는 목덜미에 있는 땀자국을 보여주고 주머니 안에 든 니코틴도 털어 보였다. 

“아마도 고객님이 모르는 사이에 자제분이 잠깐 입고 나갔다 온 게 아닐까요?”

우회적으로 고객의 실수가 아니라고 돌리고 싶었지만, 고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점퍼 안에 얇은 종이까지 깔고 새 상품처럼 비닐 팩으로 포장한 것이 들통나자 창피함에 발톱을 드러낸 것이다. 언성을 높이고 마구잡이로 옷가지를 흔들어대더니 데스크 위에 놓인 옷을 내 얼굴에 집어던졌다. 

‘너 같은 사람은 두 번 다시 내 매장에 오지 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러므로 교환이나 환급처리가 불가'하다고 했다


“You never win with violence. You only win when you maintain your dignity."
“폭력으로는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품위를 유지할 때만 이길 수 있는 겁니다.”
-Dr. Don shirley-     

영화 그린북에서 셜리 박사의 대사가 생각났다. 무엇을 감추고 어떤 것을 얻으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점잖은 모습으로 들어와 당당하게 갑질하다 패배자처럼 나가는 꼴이 오징어 같았다.      


관계는 상대성이다. 누가 누구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경우는 없다. 처음부터 착용했던 옷을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다면 원하는 답은 못 찾았어도 다른 협상이나 더 나은 관계는 만들 수 있었다. 

상대를 낮추려 했던 실패자에게 상대에게 맞추는 성공법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만난 선입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