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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굴비 Sep 10. 2015

치킨탈출

치킨은 인류를 위협하는 혁명이다

'혹성탈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다.

유인원이 인간을 정복한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은 영화가 첫 선을 보인 1968년부터 현재까지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다행히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하는 일은 없었기에, 나는 '혹성탈출' 시리즈를 TV를 통해 볼 수 있다. 치맥을 먹으며 탐닉하는 고전은 더욱 재미있다. 동물에게 지배받는 인류라니. 하하 우습기만 하다. 더욱 우스운 것은 살아있는 동물이 아닌, 튀겨진 치킨에 의해 현대인의 삶이 정복당했다는 것이다. 1인 1닭, 1일 1닭은 현대인의 슬로건이 되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냉장고 위에 가득한 치킨 쿠폰은 치킨공화국, 대한민국의 국기다.


프라이드 치킨은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에게 영혼의 음식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치킨의 역사는 서민의 애환과 함께했다. 1970년대 경제발전을 주도하던 산업역군들의 월급 날, 손에 담긴 전기구이 통닭은 서민들의 단백질을 보충하는 보양식이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밀가루 옷을 입고 프라이드와 양념치킨으로, 1990년대에는 교촌치킨과 BBQ치킨 같은 브랜드 치킨이 나타났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저가 치킨이, 2000년을 넘어서는 찜닭과 불닭, 닭강정이 유행하다가 2010년도에 이르러 간장, 오븐 등 조리법부터 카페형 서비스까지 각양각색의 '치킨다양화'를 이루어 냈다.


한국인이 하루에 먹는 치킨의 양이 약 52만 마리,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에 이제는 치욕(치킨에 대한 욕망)이 추가된지 오래다. 단순한 별미를 넘어 치느님(치킨과 하느님의 합성어로 치킨은 종교가 되었다)의 존재는 드라마를 타고, 멀리 중국에도 전파되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폭 넓고, 안정적인 수요층을 지니고 있는 치킨은 창업자들의 1순위 아이템이 되었다. 특별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지 않고, 창업비용이 5,000만 원 안팎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창업자들도 같은 생각에 치킨집을 차린다는 것이다.



치킨집 창업이 늘어나다 보니 인터넷에 '치킨트리'라는 유머도 생겼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한국 청년들의 현실은 문과든 이과든, 또는 취업자 거나 실업자 거나 모두 '치킨집' 아니면 '아사'라는 단순 명쾌한 도식을 그렸다. 이미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1·2·3 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5·6 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8·9 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 정도다. 치킨은 단순히 별미를 떠나서 인간의 최종 목적지이며, 경쟁에 맞추어 치킨을 먹을 것인지, 튀길 것인지, 배달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기승전치킨의 삶이다.


치킨의 인간정복은 기름 같은 경쟁에서 튀겨지는 현대인이 멀리, 또는 다양하게 미래를 볼 수 없음에 기인한다. 너무 뜨거운 현재에만 집착하다 보니 치킨이 닭이고, 병아리임을 인지할 시간도 없는 우리가 닭대가리를 놀릴 자격은 없다. 다행히도 치킨집 창업을 향해 달려가던 나의 인생에 제동이 걸렸다. 최근 취업경쟁 속 과도한 스트레스에 추가로 김치보다 자주 먹었던 치킨폭식이 더해져 건강에 적신호가 걸렸다. 의사선생님은 병원에서 푹 쉬고, 음식을 다양하게 먹으라고 말씀해주셨다. 병원에 입원해야만 푹 쉬고, 다양함을 추구할 수 있는 취업준비생의 운명이 애석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방금 통화한 어머니·아버지 생각보다 한 조각의 치킨이 먹고 싶다. 인간은 치킨을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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