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티끌만한 진실이 한 사람의 삶을 버팅기게 해 준다.
박완서/세계사
유려한 문체와 글의 짜임새에서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작품도 물론 좋다. 하지만 일상 속 한 부분에서 소재를 끄집어내어 자신의 경험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적절히 배합한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읽다보면 냉장고에 있던 밑반찬으로 상을 차렸음에도 부족함이 없는 밥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그렇지만, 이 수필집은 정말 박완서라는 사람의 일기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나로서는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보여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자신이 늙어가면서 드는 회한과 그 속에서 걱정, 고민. 그러나 그 속에 항상 빛나고 있는 희망까지. 나이를 먹는다는, 누구나에게 공평한 시간의 거대한 흐름에 속절없이 휩쓸려가는, 그러나 그 안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에 웃음짓고, 그 속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욕심은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 그런 한 노인, 어른.
없는 재능 중 그나마 글쓰기가 조금 나은, 그런데 글쓰기를 가장 무서워하는 나는 그런 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글쓰기에 대한 무거움을 조금 덜어내어 이렇게 오랜만에 글로 남긴다.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을 보며 빠르게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원망, 동시에 남편과 아들을 자신보다 먼저 여읜 슬픔과 분노를 치료해준 시간에 대한 감사함. 제 발로 고향을 떠나왔으면서도 누구보다 고향을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고향에 대한 모순된 감정, 상경한 소녀로서 겪어야 했던 유년시절의 열등감과 그 덕분에 갖게된 관계와 사람에 대해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시선.
어떤 사람이든 필연적으로 갈등하는 모순. 그 모순을 솔직하게 글로 남겨주어 한 독자로서,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한 사람으로서 감사함을 느낀다.
2022.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