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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Dec 31. 2020

이제는 너무나도 흔해진 위로들

너무도 같은 말을 많이 들으면 아무리 좋은 말에도 염증이 난다.

요즘 책들은 앞다투어 독자를 위로한다. 요즘은 이런 책이 잘 팔린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실제로도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장악하는 것들이 모두 비슷한 결이다.


너는 참 예뻐.

사랑스러워.

소중한 사람이야.


래, 이런 거. 당신은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소중하다고 몇 번이고 읽는 이를 보듬고 쓰다듬어준다.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에세이 코너는 이런 부류의 책들이 점령한 지 꽤 되었던 것 같다. 수요가 있으니 이런 공급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일 텐데. 그만큼 거듭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이 위로에 목이 마르고, 오로지 그걸 채워주기 위한 말들로 가득한 책들이 자연히 사람들의 손길을 탄다.




어디 책뿐일까. SNS에서 기록적인 '좋아요'를 받으며 쓰이는 글 내지는 글귀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데 가만히 읽고 있으면 가끔은 전부 같은 말들을 다른 순서로 배열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도, 저것도 어디선가  읽었던  같은 거다.

그런 글들에 모두가 공감하며 스스로를 보듬는 걸 보면서, 이렇게 모두가 각자 자신만 상처받았다고 느낀다면 도대체 상처를 준 이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다들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는 까맣게 잊고 자신이 받은 상처만을 끌어안으며 토닥이고 있는 것일까. 자기 연민이 넘실거리는 세계. 어쩌면 모두가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는 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어쩐지 기시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그런 책들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내게는 가장 마음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책들은 끊임없이 독자를 위로하기만 할 뿐, 독자에게 예쁜 말을 건넬 뿐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만 얘기하기에는 또 너무도 많은 책이 그걸 담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설처럼 스토리가 있다거나 비문학처럼 정보 혹은 이야깃거리가 담기지도 않은 책들. 그냥 너는 예쁘고, 소중하며 그러니 상처받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작가와 무언가를 나누고 소통하기보다 일방적인 위로를 받아들게 된다. 그런 책을 읽는 것은 내게 작가의 목소리는 없고 발신자 없는 위로만 하염없이 흩뿌려진 활자들 속을 헤엄치는 일이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더는 위안을 얻지 못한다. 굳이 삐딱선을 탄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솔직한 내 심정은 그렇다. 이제는 그런 말들이 너무도 뻔하고 흔하게 차고 넘쳐, 결국 다 똑같은 말이 되어 버린 것만 같다. 적어도 내게만큼은 너무도 의도가 뚜렷해 그 의미를 잃은, 온통 의미 없는 것들.


비슷한 느낌으로 음식점에 걸린 '넌 오늘도 예쁘구나' 같은 뜬금없는 네온사인을 떠올린다. 거기가 고깃집이든, 덮밥집이든, 닭발집이든 감성 인테리어를 자처하며 붙어 있는 그것들. 나름대로 다정함과 따뜻함을 전제로 한 그 말들이, 그렇지만 결국 그저 그런 인스타그램 포토존으로 전락하고 마는 그 멘트가 어쩐지 껍데기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의도를 명확하게 관통한다는 점마저도.


우리는 삶에 치여 너무도 지쳤고, 갈수록 일찍부터 힘이 빠지고, 그래서 점점 더 위로를 원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너무 가엾게 여기지 않았으면, 그래서 감정의 하한선이 낮아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로가 너무 쉽잖아. 따스한 말들이, 사랑한단 말이 너무 간편하잖아.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씻는 것도……. 세상 모든 것이 간편해지는 시대에 나는 말만큼은, 또 글만큼은 간편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간편한 글도 물론 있을 것이다.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글은 간편한 대로 쓰임이 있다. 간편해서 가치가 있다. 제품 사용 설명서가 그렇고, 보고서나 서류들이 그렇다. 그것들의 목표와 용도는 간편하게 이해되는 것.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감정을 나누는 글은, 이런 글들은 간편해지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아니, 그래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에 눈이 안 갔다. 너무 비슷비슷해서 어느 하나에 눈이 갔다고 볼 수 없는 것도 눈이 안 간 것이겠지. 어느 책을 들춰도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예쁘고 소중하단 말은 이제 예삿말이다. 힘들면 쉬어가도 괜찮아, 너는 지금 잘하고 있어, 너는 참 소중한 사람이야……. 좋은 말인데, 분명 좋은 말이 맞는데. 어쩌면 내게도 항상 필요한 말이기는 한데 말이다. 너무도 같은 말을 많이 들으면 아무리 좋은 말에도 염증이 난다.

그럴 때면 서둘러 베스트셀러 코너를 빠져나왔다. 한참을 그런 책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금 낯선 표현이, 우울하고 낮은 온도의 분위기가, 냉정한 활자들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그곳에 더 있었다가는 허울뿐인 예쁘다는 말에 파묻혀 나를 또 잃을 것만 같았다.


그 후로는 유아 코너를 자주 이용했다. 아이들의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동시를 읽는 것도 즐거웠다. 그럴듯한 말이 쏟아지지 않아도 충분했다. 따스하고 올망졸망한 그림이, 말들이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직설적이어도 둥글고 어여쁜 것들. 돌려 말하지도 에둘러 포장하지도 않는 것들.

한 권 한 권을 금방 읽을 수 있으니 작은 성취감에 기분도 좋아졌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마냥 그 속에 파묻혀도 좋을 것 같았다. 그 말이 그 말 같은 상투적인 위로와 사랑 그리고 이별 나부랭이에서 벗어나는 게 이런 거구나. 묘한 해방감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요즘 유행한다는 온갖 것을 다 때려 넣은, 마라 흑당 중국당면 레시피 같은 책 보기를 그만 두었다. 보기 좋게 별의별 겉치장은 다 해 놓고 벌거벗은 척, 솔직한 척 포장을 숨기고 티 내지 않으려는 책보다 차라리 '나는 지금 어린이를 위해 예쁘게 포장되어 있어요'라고 티를 내는 책이 좋았다. 그 마음이 좋았다. 비록 어른들의 글이지만, 진정으로 어린이를 생각하고 어린이를 위해서 쓴 것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위로 대신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타겟을 향한 달콤한 미소와 다정한 시선.


가끔은 정제된 마음이 더욱 사랑스럽다. 더욱 값지다. 날것의 그것이 너무도 황홀하여 어떻게든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의 것보다도.


좋은 이가 생긴다면 그림책을 선물하고 싶다.

흔해진 위로 대신,

있는 그대로도 뽀얗고 사랑스런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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