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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Dec 01. 2021

빨간 날, 쉬는 날, 노는 날

조금 덜 내달려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2021년 올해는 '역대급'으로 빨간 날이 없는 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문득 고등학교 때쯤, SNS에서 종종 떠돌던 달력 이미지가 떠올랐다. 무려 <2021년에 회사 다니고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던 2021년의 공휴일이 표시된 달력 열두 장.


그때는 7년이었나 8년이었나, 워낙 한참 남아 그려보기도 어려운 미래로 느껴졌다. 그만큼 막연히 먼 일이라고 생각해서 웃어넘겼는데 어느덧 내게도 그날이 왔다. 시간이 참 빠르다.




나는 빨간 날에 그렇게까지 연연하지 않는 편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잠이 워낙 많아 일찍 눈을 떠 학교 가기까지가 싫었지, 가서는 대부분의 시간이 즐거웠던 것 같다. 물론 빨간 날을 반기기는 했지만 목마르지는 않았달까. 그리고 스물부터는, 조금 창피하지만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는다거나 영 가기 싫은 날에는 가끔 출석을 포기하고라도 학교를 한두 번 빠지곤 했다. 자체적으로 빨간 날을 만드니 더욱 연연할 일이 없을 수밖에.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좀 다르다. 회사라는 진짜배기 사회에 던져지고 나니 빨간 날이 꽤나 간절해졌고, 하나하나 소중해졌다. 눈만 마주쳐도 쏟아지게 웃던 친구들과 매일같이 어울리는 것도, 내키는 날이면 알람을 끄고 느지막이 눈을 뜨는 것도 불가능해지니 공휴일이란 존재가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전에는 인생의 보너스나 팁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그보다 묵직하고 사랑스러운 성과급 같은 느낌?


문제는 보너스나 팁은 말 그대로의 '덤'이지만 성과급이란 성과가 있을 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 회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하.) 여기서 내게 성과란, 빨간 날을 누구보다 보람차게 보내는 것으로 통용된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쥐여준 적 없는 부담감을 스스로 만들어 가슴 가득 끌어안게 되기도 한다.


쉬는 날이 하루 더 생겼는데, 삼 일이나 되는 날을 낭비 말고 보람있게 보내야 하는데. 뭘 해야 하지? 침대에 콕 박혀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핸드폰만 쥐고 있는 건 너무 한심하지 않나? 책도 좀 읽고, 공부도 좀 하고 해야 하는데. 뭐 그런 부담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냥, 그냥 좀 쉬면 안 되나? 놀면 안 되나? 출처 모를 이 죄책감 없이.




우리는 살며 무턱대고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만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라는 인식 속에서 자라났으니까.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선택지는 둘뿐이다.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묵묵히 달리거나, 아님 마음속에 돌덩이를 얹은 채로 찝찝하게 놀거나.


비단 빨간 날이나 주말에만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우리 삶 전반에 걸친 이야기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나이에 맞게 해내야 하는 해야 할 일, 삶의 필수 과제가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 같다.


표준 규격이 아주 정확하고 균등하게 짜인 어떤 틀 안에서 우리는 분초를 다퉈가며 성장하고, 나이 들어간다.


그 나이 때는 대학을 가야, 졸업을 해야, 좋은 곳에 취업을 해야, 결혼을 해야, 가정을 꾸려야, 자식을 키워야....... 어쩜 사회의 사이클은 이렇게나 촘촘하고 거대하게 굴러가는지. 아등바등 시간을 달려 하나를 해치우고 나면 또 다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자연히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내고 있어야 한다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 산다. 그것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생조차 방학이면 부모님 도움 없이는 다 해내기도 벅찬 방학 숙제를 해야 하고, 중고등학교에서 쏟아지는 공부량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금 더 자라 대학에서 휴학을 하면 다들 뭘 할 거냐고 물어본다. 그냥 쉰다는 대답을 하기에는 어쩐지 멋쩍다.


베이킹을 배운다고 하면 가게 차리게? 라고 묻고, 학원에 다니며 그림을 배운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냥 취미냐고도 묻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금씩은 우스운 질문인데 말이다.


휴학을 한 누군가에게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그냥 일 년 푹 쉬려고 한다는 대답을 듣고 잠깐이라도 그 사람을 염려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대학을 가지 않고 몇 년짜리 세계 여행을 가겠다는 동생에게, 자기소개서를 쓰지 않고 계속 아르바이트만을 하며 살아가겠다는 친구에게, 앞으로도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회의 '결혼 적령기'를 지난 이에게, 평생 아이 계획이 없다는 부부에게 한마디 얹지 않을 자신은?


사실 나조차도 없다. 문득, 그리고 순간적으로 '어라' 생각해버릴 것만 같아서.

어쩌면 우리 모두 표준이라고 여겨지는 속도에, 방향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덜 내달려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쉬고 싶을 때는 마음 놓고 잠시 쉬어가도 되는,

분명 멈춰서 있음에도 조급함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일이 없는 그런 세상.


그런 세상에서라면 나도, 우리도,

문득 뒤돌아봤을 때 여태 찍힌 발자국이 이리저리 비틀대고 조금쯤 제멋대로라도

아무 일 없이 무사히 걸어오고 있는 나를 칭찬해줄 수 있지 않을까.



* 위의 글은 현재 연재 중인 뉴스레터 <이월으로부터>에 실렸던 레터의 문체와 내용을 각색한 글입니다. (두 번째 레터) 본문이 궁금하다면 여기서 만나볼 수 있으며, 여기서 앞으로의 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앞으로도 매거진 '또 다른 이월으로부터'에는 이와 같이 각색된 레터의 일부 혹은 전문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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