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 May 16. 2022

취미가 생겼으면 좋겠다

어쨌든 취미를 찾는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소개서 같은 걸 쓸 때면 '장래희망'란만큼이나 나를 곤란하게 했던 건 '취미'란 그리고 '특기'란이었다. 취미랄 것도, 특기랄 것도 없이 살아있으니까 살아지는 대로 사는 한 인간에게 그런 걸 정의 내려 자신 있게 내보이길 요구하는 종이 속 빈칸이 어려웠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무렵까지 학교 방과후를 다니며 배웠던 '플루트 연주'로 무려 대학교 시절까지도 어영부영 취미며 특기를 때워왔지만, 이제는 운지법도 잊은 지 오래라 허울뿐인 취미를 더는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취미랄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음, 유튜브 3시간씩, 그것도 '오분순삭' 같은 걸로 100개 보기? 같은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쉽고, 편하고, 어쩌면 다들 취미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취미는 아무래도 무언가를 '보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유튜브가 됐든, 넷플릭스나 왓챠 속 영화나 드라마가 됐든, 웹툰이 됐든.


물론 그걸 보는 행위는 꽤나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취미라고 부를 수 있나? 하는 딜레마를 겪게 된다. 그래도 영화 보기까지는 어찌어찌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드라마 보기나 웹툰 보기, 유튜브 보기를 취미라고 부르기엔 뭔가 좀 머쓱하니까.




조금 생산적인 취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차고 넘치는 잘 차려진 것들 중 원하는 걸 골라 입맛에 맞게 소비하기만 하면 되는 작금의 시대에 굳이 굳이 반기를 들어보겠다는 거다.


글을 쓰는 건 이제 약간의 의무감을 동반한 일종의 두 번째 일이 되었으니 예외로 치고, 그럼 또 뭐가 있을까? 그래서 처음 시도했던 게 비즈 반지 만들기와 그림 그리기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손재주가 별로 없다는 것을. 어릴 때는 뭘 시켜도 곧잘 해냈던 것 같은데, 크고 나니 영 아니었다. 비즈반지는 삐뚤빼뚤 못난이 반지가 됐고, 그림도 혼자 간직하기 딱 좋은 수준으로 그려졌다. 결과물이 그 모양이니 흥미가 뚝 떨어져 금세 맘을 접었다.


그럼 지금은 뭘 탐색 중이냐 하면,

그러니까, 탐색하기 위한 과정을 탐색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생산적인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있으면, 종종 내 안의 다른 내가 딴지를 걸어온다.


야, 평일 내내 생산적으로 살잖아. 원하든 원치 않든, 즐겁든 지루하든 온종일 회사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데, 취미 그것 좀 소비 위주면 어때? 좀 쉬엄쉬엄 살면 안 돼? 맛있는 거 배부르게 먹고, 부른 배 쓰담으면서 텔레비전 좀 보고, 늘어지게 낮잠 좀 자고.


그게 그렇게 나빠?


[게으른 이월]에게 혼이 난 [부지런한 이월]이 머릿속 본부에 전달한다. 그렇대. 그냥 그럼 그렇게 해. 본부에서는 이전의 긴 고민이 무색하게 현실과 쉽게 타협하고 만다. 더 정확히는, 변화를 주지 않으려 한다.


왜냐고? 물론, 변화는 귀찮기 때문이다. 관성처럼 살던 대로 살면 너무 편하거든.


[게으른 이월]이 이기는 날에는 평소처럼 뒹굴며 하루를 보내고, 어쩌다 가끔 [부지런한 이월]이 이기는 날에는 무언가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보려고 몰두하며 산다. 매일, 또 매주 엎치락뒤치락한다.


맞다. 꼭 취미만의 이야기도 아닌 거다. 취미를 찾는 과정은 꼭 삶과 같다. 고독하지만 시끄럽고 잔잔한 주제에 치열하다. '취미'라는 단어 안에 욱여넣었을 뿐, 결국 무언가를 통해서라도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애쓰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 내게 취미를 찾는 일은 곧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여정까지도 가지를 뻗어나갈지 모른다.


앞으로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취미를 찾아 이것저것 잡히는대로 몰두해볼 예정이다.

보기에도 그럴싸하고 내 맘에도 꼭 맞는 취미가 절로 생기면 참 좋을 텐데.


어쨌든 취미를 찾는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 위의 글은 현재 연재 중인 뉴스레터 <이월으로부터> 실렸던 레터의 문체와 내용을 일부 각색한 글입니다. ( 번째 레터) 본문이 궁금하다면 여기 만나볼  있으며, 여기 앞으로의 레터를 받아보실  있습니다.

* 앞으로도 매거진 '또 다른 이월으로부터'에는 이와 같이 각색된 레터의 일부 혹은 전문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