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팬톤이 사람 이름인줄 몰랐지...
2020년의 칼라가 정해졌다.
클래식 블루 Classic Blue aka Anti-Anxiety Blue .
더 큰 도약을 위해서 한 숨 들이마시며 차분해질 필요가 있는 한 해.
변화가 끊임없는 세상이지만 두려움과 걱정을 잠시마나 잊어보자는 색깔 초이스.
어김없이 매년 발표되는 팬톤의 올해의 색이다.
이 팬톤이 실존했던 사람 이름인줄 1주일 전에 알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성수동 갤러리 결의 이벤트 포스트를 보았는데,
Verner Panton.
베르나 팬톤이란 사람에 대한 도슨트 행사를 선착순으로 신청받고 있었다.
https://www.instagram.com/p/B5rx7C4Hmgx/?utm_source=ig_web_copy_link
이 포스트를 읽으면서도 '그 팬톤이 이 팬톤인가?' 싶어서 캡션을 두 세번 더 읽었다.
다행히 선착순이 마감되기 전에 참여 신청을 했다.
아쉽게도 2시 도슨트가 빨리 마감되어서 추가로 마련한 오후 12시 행사를 가야했다.
흠.. 경기도에서 성수동까지 시간 맞춰 가려면 적어도 2시간 전에는 나가야 하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전날밤까지도 고민이 되었다.
서러운 경기도민은 결국 12시 행사를 가기 위해 아침 9시부터 준비했다.
허겁지겁 나와서 열심히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다녔다.
갤러리에 12시에 딱 맞춰 도착했다.
서울숲 갈비골목을 따라 가야 했는데,
바로 옆에는 공사장과 난로 옆에서 갈비를 구워먹는 바이브였다.
그 주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매끈한 실버 건물 하나가 툭 있었다.
1시간이라는 시간동안 덴마크와 팬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북유럽 국가로는 여행을 가본 적도 없어서 크게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생각해볼 일이 없었던 북유럽의 세상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었다.
요즘 새로운 전시나 행사를 갈 의지도 딱히 안 생기고,
가더라도 큰 감흥이나 감동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대학교 수업 중 음악과 역사, 사회, 경제를
섞어서 문화를 해석하고 설명하던 나의 최애 교수님의
영향 때문일까.
멋진 아티스트의 작품을 봐도
그냥 단순히 작가의 말이나 작가의 천재성이 나를 감동시키기 보다는
그 작가가 왜 그렇게 자랐고 생각했고 변화했는지에 대한
수많은 연결고리들이 이야기로 펼쳐질 때가 가장 짜릿하다.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감동이 1/2 정도인 듯 싶다.
어쨌든,
덴마트라는 환경도,
팬톤이 빌드업한 가치관과 예술관들을 흥미롭게 잘 구경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멋진 전시이고 이야기였다.
역시 뭐든지 기대라는 건 크게 안하는 게 좋다.
내가 두시간 전에 듣고 온 팬톤 도슨트를 짤막하게 요약해본다.
- 회색 도시이다.
- 날씨가 흐리고 여름에도 크게 맑은 날이 없다.
그래서 다들 주변국이나 동남아로 여행을 가고 여름휴가가 3주 이상으로 길게 주어진다.
- 북유럽하면? 바이킹. 물론 천년만년 바이킹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먹고 살 길을 찾다가... 1800년대부터 국가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산업들 중 하나가 디자인이었다.
- 한 세기를 투자하고 나니 아르네 야콥센 AJ (건축), 폴 헤닝센 PG (비평가이자 조명 디자이너 - 루이스 폴센 회사) 같은 천재들이 나타났다.
그 두 거장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이 팬톤이다. (비록 두 거장들은 서로 전혀 안친했단다. 둘 사이를 왔다갔다 했을텐데, 그래도 팬톤한테 너 쟤랑 놀지마 라고는 안했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독특한 발상이 참 많았다고 한다.
덴마트는 침엽수가 울창해서, 나무를 많이 쓰는데,
팬톤은 플라스틱과 와이어들을 사랑했다.
색채는 형태보다 중요하다.
흐릿흐릿한 회색 덴마크에 있다보니 활기를 불어넣는 색채를 더 강조하게 된 게 아닐까.
그가 가장 애정하는 색깔은 빨강이란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 Pantone Color Institute, Pantone Color Matching System 되시겠다.
표준화, 통일화가 중요한 산업 디자인, 제작 과정에서는
모두가 같은 기준, 규격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이
효율적이고 필수적이라고 본다.
대표적인 그의 스타일을 말한다면, 색채와 원형.
아니 그래서 원래 팬톤이 뭐하는 사람이냐면,
그냥 돈 많은 색깔덕후론자는 아니구여,
1955년에 건축 스튜디오를 설립한
싸장님이자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다.
팬톤 체어는 처음 만든 의자는 아니지만,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전쟁 이후 미국에서 발명한 신소재 - 플라스틱을 보고 반했다고 한다.
나무와 달리 유형의 곡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플라스틱은
원형을 좋아하는 팬톤에게는 매력적인 소재였다.
당시 팬톤 체어 광고는 굉장히 파격적이어서 매장 당할 뻔 했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붐이었을 때니, 이런 여성 성상품화 광고가 한창 유행이었을 것이다.
이런 걸 신문에 광고로 떡하니 올린 걸 보고 보수적인 덴마크는 매우 난감하고 분개했었다고...
여기서 (제일 중요한) fun fact. 베르너 팬톤은 사진 속의 모델과 결혼하여 행복하여 잘 살았다고 한다.
많은 디자인 제품들은 사실 클라이언트 프로젝트 때문에 생겨난 디자인들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놀거리 - 놀이공원 티볼리의 레스토랑의 실내/외에 쓰일 의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팬타노바 체어는 덴마크 북부 소도시의 한 레스토랑에서 의뢰받은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탄생했다.
여러 와이어를 붙인 것이 아니라,
100m가 넘는 와이어 하나를 계속 구부려 가면서 만들었다.
지금도 만들기에 쉽지 않은 디자인이라고 한다.
와이어를 계속 이어가면서 구부려야 하는데 조금만 오차가 생겨도
수평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팬타노바 체어를 여러개 이으면 원형, s형 등 공간에 창의적인 감성을 더할 수 있다.
팬타노바 의자는 007 영화에 미래적인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이면서 일명 007 의자로도 유명해졌다고 한다.
폴 헤닝센의 혁혁한 조명 공로는
눈부심 방지를 위해 전구를 가린 것이다.
팬톤도 그 뒤를 이어,
조명에 다양한 디자인을 끼얹었다.
가장 인상적이고,
스피커님이 정말 너무 가고 싶다고 했던 곳은
Pantone Rainbow House 였다.
팬톤의 딸은 그닥 취향에 안 맞아서 잘 방문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진으로 보기엔 너무 인스타 갬성 하우스이다.
에어비앤비로 열어두면 어마어마한 수입 창출 가능해 보임.. 북유럽 에어비앤비 지사들 뭐하시나...
보다시피 팬톤은
한 공간에 하나의 색에만 집중한다.
패턴도 심플한 도형과 원형이 많이 보인다.
패턴을 보면서는 사실 구스타프 클림프가 좀 생각이 났다.
팬톤의 작업들을 보고 나니,
패턴, 도형, 심플, 색채에 집중하는 작업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사각형 안의 동그라미 패턴은 구스타프 클림프가 생각났던 것을 기반으로 해서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패턴을 응용해서 작업해보고 싶다.
앗 그리구 준비해주신
과자들, 밀크티, 커피, 빵 다 JMT ..
발표해주신 관계자분도 갤러리 운영자 분도
나이있으신 여성 분들이라서 넘 멋있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