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가치는 명목금액이 아니다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럴듯한 스펙이 없어 나를 받아주는 자그마한 회사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월급이 들어오니 학생 때보다 여유가 생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다. 입사하고 1년이 지나니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 5백만 원이 되었다. 은행에서 이자 독촉을 받고 나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말로만 듣던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가…’ 요새는 기분이 좋다. 이후 생활습관을 바꿔 5백만 원을 모았기 때문이다. 돈 모으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직장에서도 가끔 콧노래가 나온다.
조반을 먹고 나면, 텃밭에 가서 김을 매요. 예전에는 하루 종일 일해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평생 해온 농사일도 반나절 밖에 못해요. 먹는 거야 직접 키우는 채소들하고 동네 사람들끼리 바꿔 먹는 부식 정도면 거진 다 해결이 돼요. 시골 노인네가 돈 쓸 데가 어디 있어. 손주들 용돈이나 가끔 주고, 한 달에 한두 번 장에 가서 좀 쓰는 게 다예요. 500만 원? 아이고, 큰돈이네. 그 돈이면 나 같은 사람은 4~5년 편히 쓰고도 남지.
사업을 접고 쫓기듯이 고향 근처로 내려온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빈집이던 친척 집을 손수 고쳤고 텃밭도 가꾼다. 다행히 아이들은 다 커서, 다들 제 밥벌이하며 서울에서 산다. 고향으로 온 건 잘한 선택이었다.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아서, 몸만 좀 바지런하면 지낼 수 있다. 적응도 다 했고 재기를 꿈꾼다. 이전처럼 크게 벌리다 망하고 싶지 않기에, 돈을 좀 더 모아서 동네에 가게를 내볼 생각이다. 알아보니, 2천만 원 정도면 준비가 가능하다. 벌써 5백만 원이나 모였다. 퇴직하고 백수 된 서울 친구 놈들아, 쓸데없이 버티지 말고 느그들도 내려와라. 나는 2년 안에 다시 사장이 될 거다.
5년 뒤엔 정년퇴직이다. 모아 놓은 것이 없어 큰일이다. 유학 간 둘째가 졸업하려면 아직 2년이나 남았다. 연봉 2억이면 남부럽지 않은데, 대출이 절반인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퇴직하고 둘이 숨만 쉬어도 한 달에 생활비가 5백은 나갈 텐데 걱정이다. 이 나이에 1억 모으기를 해야 하다니… 슬프다. 1억을 모아도 2년이면 없어지는 돈이다. 다들 퇴직하고 어떻게 사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2년 된 차를 팔아버리고, 1억짜리 SUV를 샀다. 전에 차보다는 당연히 낫지만, 예산이 빠듯해서 옵션이 부족하다. 마음에 둔 건 따로 있지만, 1억 8천이란다. 헐. 돈 많은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냐. 60개월 할부니까 한 달에 170 정도 나간다. 아주 맘에 들지는 않지만 한 달에 170으로 독일 SUV를 탈 수 있으니 뭐, 가성비는 나름 괜찮은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속세 내고 나니 1억이 남았다. 물려주신 건 고맙지만, 생전에 손주가 제일 이쁘다며 기대하게 하신 것치곤 솔직히 실망했다. 본인이 동네에서 제일 부자라고 명절 때마다 자랑하시더니, 뻥인지 도시랑 시골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지난번에 코인으로 손해 본 건 이걸로 퉁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돈의 많고 적음은 숫자로 표시할 수 있지만, 돈의 가치는 마땅히 표기할 방법이 없습니다. 같은 5만 원도 초등학생과 성인에게는 무게감이 확연히 다릅니다. 돈이 많아도 풍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돈이 부족해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가치는 명목금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산증식의 가장 큰 목적은 노후대비입니다. 노후자금이 얼마나 필요한 지 추정치를 내놓은 기사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노후자금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기 전에, 은퇴 후 생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정하는 게 먼저입니다. 어디서 어떤 생활을 목표로 하느냐에 따라 필요한 자금은 천차만별입니다. 내가 마련할 수 있는 돈은 사실 쉽게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현실과 괴리가 크다면, 노후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구상해 보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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