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글
생각보다 매거진의 조회수가 나오면서 글을 써야겠다- 라고 다짐하면서도 컴퓨터 앞에조차 앉지 못 했던 것은 글을 쓰며 떠오를 감정들에 매몰되어 가라앉을 자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10년. 자그마치 10년이다.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6가지 정도의 에피소드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던 이 매거진은 이제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직 딱쟁이도 앉지 않은 일들이다.
무뎌질만도 한데, 생각만해도 가슴이 떨리며 호흡이 가빠지는 걸 보면 그간 도대체 어떤 걸 참아왔던 걸까.
잘못된 상황을 인지하지 못 하는 남편의 채근과 부부싸움들의 기억도 떠오른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진정한 평화는 현실을 직시하고 서로 적당한 배려와 협의가 있어야 이뤄질 수 있다.
사실 남편도 피해자이기에 그가 상황을 바로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나 또한 인간인지라 그렇게 인내심이 좋지 못했다. 잘못된 감정싸움으로 치달아 본질과 멀어질 때도 많았다. 흔히 부부싸움이 그렇지 않은가.
다행히 남편은 우리나라에 상위 10%의 남자다.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잘못인 것을 깨닫게 되면 나에게 꼭 사과해주었다. 자존심이 센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의 사과가 와닿았다.
시어머니는 몇 번 언급한 것처럼 나쁜 분은 아니다. 나에게 함부로 하는 행실이 쌓였고 내가 방치하였기에 여기까지 왔을 뿐. 스스로 상황을 바로 보지 못 하고 눈을 가리웠던 어리석은 내가 만들어낸 관계일테다.
계속해서 참고 참았다면 아주 좋게 이어져 왔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때때로 좋았고 서로 노력하는 관계였다.
남편에게는 아주 미안하게도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 같다. 예상대로 어머님께선 절대 나에게 사과하지 않으실테니 말이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 둘 사이에서 예전처럼 남편 대신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었다면 남편이 완전히 독립할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독립을 가로막았던 것은 오히려 딸처럼, 좋은 며느리처럼 굴려고 모든 방면에 촉각을 기울이는 나였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거리두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과는 별개로 시어머니와 나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주 깊은 부분까지 얽히고 설켜 자기방어와 모순으로 똘똘 뭉친 관계를 보게된다. 어찌보면 그만큼 우리가 특별하고 애틋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남들은 할 수 없는 힘든 일을 겪으면서 왔으니 말이다.
남편과 어머니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듯, 나와 시어머니의 관계도 보통의 고부관계완 달리 비정상적인 면이있다고도 말 할 수 있겠다.
보통의, 평범한, 이라는 호칭을 붙이자니 괜히 고민하게 된다. 과연 보통의 평범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무엇일까? 내가 너무 이상적인 고부관계를 원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일까? 하는 여러 가지 자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착한며느리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그래서 그녀가 나에게 준 상처들, 이제는 켜켜이 먼지가 쌓인 일들을 꺼낼 때 마다 발작하듯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기롭게 분노로 시작한 매거진 이지만 나의 아픔은 진행형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어머니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혼자 되실 때를 대비해 걱정되서 집근처로 모셔놓고 이렇게 연락도 못 하는 내가 어리석게 느껴지지만 아들 노릇을 잘 해주고 있는 남편 덕에 이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나는 끊임없는 연락에 시달렸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혼자 견뎌야했겠지. 죄송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렇게 최선을 다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예전의 상처를 정리할 만큼의 힘도 남아있지 않다. 이 매거진에 에피소드는 아직도 많이 쌓여있지만, 조금은 쉬엄쉬엄 가보려고 한다.
지쳐 있는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