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결말
몇 년 간을 바라고 바라던, 2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어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착한 며느리병 운운하며 시어머니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던 이전의 글들은 다시 봐도 마음이 아플만큼 힘든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지금 나와 어머님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꽤 좋다.
취업을 하고 한 동안 아이를 혼자두는 날 들이 길어졌다.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서 방도를 찾아봤지만 내가 버는 돈 만큼의 투자를 해 보모를 두거나 일을 그만두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선뜻 아이를 돌봐주시겠다고 손을 내밀어 주셨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마지막까지 제쳐두고 싶었던 옵션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생각하면 도저히 나만 생각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어머님께선 지극히도 손주를 사랑하시니 오히려 나보다도 잘 챙겨주실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을 하며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야 할 때 빈 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꽉 차게 사랑을 주실 분이었다. 친정 엄마보다도 말이다.
4편의 글을 읽으셨던 분들에겐 갑작스런 엔딩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사실 그 글 이후 나는 패혈증으로 쓰러져 약 한달간을 입원했었다. 생계를 위해 남편은 출근해야 했고 혼자 있어야할 아이를 어머님이 돌봐주셨다. 아무리 섭섭해도 감사인사를 안 하고 넘어갈 정도의 뻔뻔한 사람은 못 되었기에 우리는 간간이 통화를 했다. 예전의 일이 서먹해 오히려 전화가 사무적이고 짧아져서 간편한 관계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것이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신 어머님과 잘 먹는 내 궁합은 생각보다 좋은 편이었다. 혼자 되신 살림에 나와 남편을 초대해주시고 아이도 간간히 맡아주셨다.
어머님의 경쾌한 인사와 다정한 수다가 나는 좋았다. 어찌보면 첫 글의 절망감은 단지 섭섭함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그 간의 기도들 때문이었는지, 나이가 한 살 더 들었기 때문인지 예전의 일들이 흐릿했다. 약 10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정말 가족이 되었구나. 그것만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덮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후벼파고 드러내야만 속이 시원한 드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유순한 남편을 만난 것은 복이었다. 남편은 어떤 일에 대해선 덮어버리고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묵직한 사람이다. 가끔 그것이 답답했던 어린 나. 나는 그것을 꺼내고 또 꺼내어 어떻게 정의해야할 지 찾을 때까지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래서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관심이 많다. 가스라이팅, 가정폭력, 나르시스트 세상엔 가해자를 지칭하는 여러가지 말이 있다. 트라우마, 외상 후 장애 등등 상처를 지칭하는 말도 많다. 하지만 용서를 지칭하는 말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을 용서라 할 수 있을까? 그보다 더 끈끈하게 사랑하는 감정이 생겼다는 말이 옳을 것 같다.
손절과 핵개인화의 시대. 간편함이 각광받는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아날로그 템포다. 된장을 손수 만들어본 적 있는가? 막걸리를 손수 담궈본 적이 있는가? 맛있는 장과 발효음식들은 여러번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상한 부분을 덜어가며 꾸준하게 관리해야 한다. 가족도, 관계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단 덮어주고 사랑해야 한다.
평일엔 같이 살게된지 한 달 차. 어머님이 아이를 돌봐주시면 휴일에도 친구와 약속을 가고 태닝을 받으러 간다. 어머님께선 아침을 차려주시고 그 옆에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놓아주신다. 그러면서 늘 걱정하지 말라고 잘 다녀오라고 마중해주신다. 어쩌면 어머님은 원래 이런 분이고 그동안도 나에게 이렇게 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우리는 여러 상황과 환경에 처한다. 내가 가진 역활 때문에 나이스하지 못 한 모습을 보이는 일도 많을 것이다. 나 또한도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겪으며 살아왔고 항상 좋은 사람으로 살지는 못 했다. 타인의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이 말은 참 쉬운데 체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가 나의 허물을 덮어준 다는 것이 고맙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록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깊게 깨닫게 된다.
단편적으로 가진 것과 환경에 대해 논하고, 사람의 말과 태도에 대해 얼마든지 논 할 수 있겠지만 실타래 처럼 엮여 사실이 되어버린 역사에 대해선 세세하게 따져묻기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 내 역사에 대해 말해준다고 해서 그들이 내 심정과 롤에 대해 알겠는가? 어떤 일들은 혼자서 삭히고 해결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의 옳고 그름은 전혀 상관이 없는 내 인생에서의 중요한 일들이 있다.
부끄럽지만 작년 한 해간의 일을 통해 작고 어린 내가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다. 남들과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결말을 낸 것이 자랑스럽다. 잘 참아낸 삶의 단편으로 남아 인생의 멋진 주름으로 새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