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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로스코 Dec 06. 2021

세대 갈등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세대 게임이 끝이 나도, 참가자들 중에는 승리자가 없다.

  전국의 17개 시, 도 만 15~39세 남녀 3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2018년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년 사회, 경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성세대’가 다른 세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27.9%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불과 1년 전 동일한 조사에서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18.7%였다는 것이다. 반면 ‘보통이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7년 43.3%에서 2018년 42.6%로 큰 차이가 없었다. 즉, 본래 기성세대가 이기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이들 중 일부가 1년만에 등을 돌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른 통계자료에 의하면 청년 3명 중 1명이 ‘기성세대를 더 큰 혜택을 받은 수혜자’로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령화와 일자리 부족으로 각박한 사회이다 보니 청년들의 이익과 자리는 기성세대가 꿰찬 것일까? ‘세대 게임’의 저자 전상진은 이 같은 세대들의 제로섬 게임은 문제적이라고 비판한다.


 기성 세대가 청년의 몫을 빼앗아 자신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주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눠 사회문제의 본질적인 쟁점을 흐리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다. 전상진은 ‘청년은 빛나는 주체에서 가련한 대상으로 몰락했고, 노인은 부양할 대상에서 탐욕스러운 전사로 변신했다.’고 말한다. 지난 19일 지하철 경로우대 제도가 세대 갈등의 도마 위에 올려졌다. 서울교통공사의 지난해 무임승차 인원은 4억 8,000만명, 무임손실액은 약 6455억원이다. 이는 당기순손실의 67%에 달하는데, 무임 탑승객의 82%가 노인으로 적자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에 전국 6개 지하철 운영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7명이 현행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22.3%)하거나 변경이 필요하다(46.3%)고 응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혜택 대상을 만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의견이 가장 큰 지지를 얻었다.


 무임승차 제도는 1984년 65세 노인을 시작으로 장애인과 유공자로 확대되어 올해로 36년째 시행 중이다. 그런데 노인 비중이 84년 4.1%에서 올해 15.7%로 늘어나 노인의 무임승차가 손실의 상당 부문을 차지하고 있다고 거론된다. 여론은 노인들에게 손가락질했다. 틀딱충, 연금충, 노인충 등 온라인에서 노인을 벌레로 비하하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잉여 노인들이 할 일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며, 자신들의 지옥철을 심화한다는 주장이 기사 댓글 창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국가교통DB사업단의 서울시 무임승차 이용객의 지하철 이용 패턴을 살펴보니 대부분의 일반 이용객은 오전 7시~9시와 오후 6시~8시의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 탑승하는 반면, 무임승차이용객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주된 이용 구간도 강남과 강북으로 상이했다.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는 허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일부 언론은 ‘노인 무임승차 지하철 빚덩이 6500억 안고 달린다’와 같은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세대 형평성에 어긋나는 듯한 이미지를 조장한다. 더불어 지하철 무임 승차로 인한 손실액 증가를 강조하며, 비롯한 다른 복지 제도를 언급해 탐욕스러운 중, 장, 노년을 한데 묶어 기성세대와 청년의 세대 대립 구도를 가시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진실된 가해자는 ‘정부’이고, 피해자는 지자체라는 점은 가로등 불빛 밖으로 벗어나 있다. 정부는 서울 지하철 노선 가운데 국영철도인 코레일이 운영하는 일부 구간에 대해서만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근거로 무임승차 손실액을 보전하고 있다. 나머지는 전부 지자체가 부담한다. 교통약자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국가가 발안한 것인데 비용을 전가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는 셈이다.


 이와 같은 세대 전쟁론은 게임 플레이어들에 의해 비난할 대상들이 설계되고 책임은 뒤안길로 사라진다. 세대 게임의 참여자는 플레이어와 세대 당사자로 나뉘는데, 둘의 목적은 각각의 상이한 이익이다. 지난 전 박대통령 탄핵시위의 집단적인 함성에서, 세대 게임에 참여한 당사자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였다. 태극기 부대는 2016년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 등장했다. 박 전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하며 석방을 거칠게 요구하던 이들 중 다수가 노인으로 미디어에서 비춰졌다. 국가 상징 태극기를 휘두르며, 국가의 발전에 저해되는 언행을 일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향한 청년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그들은 어쩌다가 세대 당사자가 되었을까?




 2018년 한국정치학회보에 실린 태극기 집회의 감정 동학에 따르면, 그동안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던 노년층이 누적된 모멸감을 바탕으로 일련의 계기에 의해 집단적 저항으로 분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집단에 소속됐던 노인 중 일부를 인터뷰해보니, 보수단체에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모두 어르신들 덕분이다. 어르신들이 진정한 애국자다.’는 위로를 받으며, 군중심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태극기 부대에 참가하게 된 과정을 밝혔다. 당사자의 열패감과 모멸감을 자극해 정치적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보수 기득권 세력의 고령자 친화적인 카드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결과도출을 주도한 세력이 보수 세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진보 세력이 뉴미디어를 기반으로 젊은 층 포섭에 치중하면서부터 노년층이 자신이 배제되었다는 허망함과, 과거 유신 시절 이전부터 친일, 독재와 같은 역사적 부역에 동조했다는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해 모멸감을 주던 접근방식이 시발점이 되었다는 의견이다.


 이와 같이 세대를 ‘연령’으로 차별하고 구분 지어 일체화된 정체성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다. 세대는 ‘나이’로만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로일레케에 따르면 세대는 공통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집합적인 ‘자기주장’이며, 아울러 타인의 외부호명에 따라 규정된다. 세대를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에 관해서 저자는 객관주의와 구성주의적 요소를 통합해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전쟁 세대, 독재 세대와 같은 연대기적 요인과 또래 집단, 타 세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도출되는 의미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세대 갈등이 명료한 듯 보이지만, 허상일 수 있듯이, 세대 간 구분도 모호할 수 있다. 세대의 분류는 시간의 흐름과 같이 연속적이지만 임의로 구분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대 간 갈등은 어떨 때 가시화될까? 세대의 실체는 가치관에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세대 갈등에 대해 주지하게 되는 계기는 가치관과 이해관계 상충이 마련한다. 갈등 상황은 한정된 자원에 대해서 쌍방의 이해가 대립하여 한쪽의 이익이 다른 한쪽의 손해를 부르는 ‘합영상황’과 양측의 갈등이 양방 모두에게 소득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비합영상황’으로 구분될 수 있다. 합영상황의 대표적인 예시는 저자가 언급한 세대 전쟁론과 교집합이 있다. 복지 제도나, 귀족 노조, 비정규직 고용, 젠더 갈등과 같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제로섬 게임이 ‘연령’을 교량으로 ‘미디어’에서 극대화된다. 여기서 다시, 세대 간 갈등이 정말로 심각할까? 그리고 한국이 타국가에 비해 더 문제가 고착화된 상태일까? 혹은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세대 갈등이 실재보다 초과하진 않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 상이한 세대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미디어가 어떻게 상이한 세대를 묘사하고 있을지에 대해 점검해봐야 한다. 세대를 구성하고 집합의식을 인계하는 최소 단위는 개인을 넘어 가정이다. 사회통합위원회의 2012년 조사 자료 ‘세대간 소통 및 화합방안 마련을 위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가정 내에서 세대 갈등을 인식한 비율이 높을수록 사회에서도 세대 갈등을 높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드러났다. 우선 가정 내에서 거론될 수 있는 갈등 요소는 성역할과 가부장권, 남아선호 사상 등이 있는데, 남아선호 사상은 50, 60대 이상에서도 동의하는 비율이 50%를 넘지 않았다. 이는 미디어에서 고정적으로 제시하던 그 때 그 시절의 노년층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그러나 남녀 성역할에 대한 태도와 가부장 의식은 세대별로 차이가 유의미하게 커서 갈등 제공의 단초가 될 수 있겠다.



 가족 내에서 세대 갈등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평균 20%를 웃돌았으나, 사회수준에서 갈등을 인지한다고 답한 자는 응답자의 57%에 달했다. 가족 내 사회 갈등과 사회에서의 갈등 경험이 큰 폭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세대의 집단 주장에 미디어가 잘못된 방향으로 힘을 싣고 있지는 않을까? 지하철 운영 기관의 적자가 오롯이 노인 탓이라는 미디어의 재현 방식은 그 집단 내에 실재하는 국가 유공자나 장애인과 같은 세대 게임 설계에 도움이 안 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식이다. 댓글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노년층을 비 노년층의 일상 생활을 방해하는 잉여인간으로 매몰시킨다. 그러다 한순간 공격 주체가 바뀐다. 노년층이 청년들을 이기적이라며 공격한다. 비혼과 낮은 임신률 때문이다. 공격받은 청년 세대는 하릴없는 배경을 설파하며, 반대로 기성 세대의 특혜를 손가락질한다. 이 싸움의 악순환에서 사회, 문화적 자본을 그 누구보다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거머쥐고 있는, 해결 당사자인 국회와 정부는 조용히 등불을 비춘다. 싸움 현장으로. 이 게임은 끝이 나도, 참가자들 중에는 승리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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