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옷소매 붉은 끝동> 관전 포인트!
여러 매체에서 MBC를 ‘사극 명가’라고 지칭함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그도 그럴 것이 <허준>, <대장금>, <이산>, <선덕여왕>, <해를 품은 달> 등 사극 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이 MBC 방영작인 경우가 잦다. 올해 그 뒤를 채울 작품은, <옷소매 붉은 끝동>이다. 드라마는, 후에 ‘정조’가 될 ‘이산(이준호 분)’과 ‘의빈 성씨, 성덕임(이세영 분)’의 사랑을 절절하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현재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반향을 얻고 있는 <옷소매 붉은 끝동>. 과연 사극의 명성을 이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의 단서들을 살펴보았다.
캐릭터 공식 소개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주인공 산은 “오만하다”. 왕세자인 그는 꿀릴 것 하나 없이 갖가지 능력이 출중하지만, 궁녀 덕임 앞에서 “생각시(어린 궁녀) 따위”라고 할 정도로 서슴없고 건방진 면모도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까칠하고 투덜대기 바쁘던 산이 덕임에게 감정적으로 녹아드는 과정을 주로 그린다. 정조와 의빈 성씨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지만, 어찌 보면 이러한 설정은 이전의 사극 로맨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무뚝뚝하나 여주인공 한정 미소를 짓고 장난꾸러기가 되는 남주인공, 쾌활하고 솔직 담백하며 남주인공의 ‘예외’가 되는 여주인공, 그렇게 신분을 초월한 남녀 간의 정. 이렇듯 <옷소매 붉은 끝동>은 사극의 문법에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약간의 변주를 이용한다.
이런 장면이 있다. 여주인공은 서고에서 ‘유난히’ 높은 곳에 꽂힌 서적을 위험천만하게 꺼낸다. 그가 휘청거리는 순간 ‘하필’ 뒤에 있던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받아주고, 그들은 서로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산은 넘어지는 덕임을 받아주지만, 덕임이 서가에 부딪히든 말든 상관치 않고 밀치듯이 한다. 덕임 또한 그에 “이걸 고맙다고 해야 돼?”라는 혼잣말로 변주를 이어 유쾌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극 중 덕임의 인물 성격 자체가 신선함을 더한다. 덕임은 뛰어난 재주로 궁녀 중에서 자주 주목을 받곤 하지만, 개인적인 야망이나 큰 뜻을 품진 않는다. 특히 필사와 소설 낭독을 잘하여 그것으로 돈을 버는데, 역적의 자식으로 몰린 오빠를 만나 신분을 바꿔줄 수 있도록 백 냥을 모을 계획을 세울 뿐이다. 궁녀인 자신의 운명과 직업에 보람을 느껴 열성을 다하는 것도, 그렇다고 권력욕에 신분 상승을 꿈꾸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차근히 영위해가며 순간순간을 센스 있게 대처한다. 자칫 덕임은 삶의 목적성이 없는 수동적 인물로 비칠 수 있으나, 그는 그저 자기 범주에 있는 일들에 책임지는 ‘소박한’ 인물인 셈이다. 이 점에서 덕임은 조선 시대의 인물임에도 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매력을 충분히 지니게 된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와 의빈 성씨의 관계성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역사’와 동명의 ‘원작’ 소설을 따른다. 이에 역사와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특색 있게 작품을 각색·연출하면서 사극의 매력을 톡톡히 보여준다.
조선 후기 전반을 이루는 정치적 갈등, 당쟁은 위 같은 사극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이다. 로맨스 기류 바깥, 정계에서의 야망을 비추는 인물들이 회차마다 하나둘 등장하고 그들이 신경전을 벌이며 긴장감을 선사한다.
또 정조, 하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의 할아버지인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일 것이다. 부모의 출신에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진 영조와 기구한 삶을 살았던 그의 아들 사도세자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극 사이에 풀어내면서, 그들이 주인공인 산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역사적 고증을 통해 감정선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이어서 국내 미디어에서 주로 비추는 사도세자의 행동은, 그가 어떤 심리적 고초를 겪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에 반해 <옷소매 붉은 끝동>은 가령 사도세자가 궁녀들을 학살한 사건에 대해, 궁녀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제조상궁 조씨(박지영 분)’를 비추며 역사의 주변부를 조명한다. 이러한 소재들은,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패관 소설’을 읽어주는 덕임과 그 이야기가 자신의 가정사와 유사하다는 것에 감정 소모를 느끼는 산을 초반부에 매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역사극이라는 소재의 주 배경이 되는 궁중의 배경을 종종 비추는 장면들은 작품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풍경을 넓게 보여주는 컷이나 고전적인 색감을 살린 연출은, 한국 고유의 문화를 영상미 있게 고증하며 장르적 특성을 살리고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란 궁녀들의 붉은 옷소매를 가리킨다. 이는 궁녀 그 자체 혹은 왕의 여인이라는 상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옷소매에 물든 붉은 색감은, 여러 확실한 상징으로 기능한다. 어쩌면 이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가지는 다양한 매력을 또한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에 힘입어, 서두에 물었던 질문에 흔쾌히 좋은 답을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