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아하는 게 많다. 좋아하는 음식도 많고, 좋아하는 그릇도 많고, 좋아하는 색깔도 많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계절도 많다. "어! 이거 저 좋아하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면 엄마는 "너가 싫어하는 게 어딨니?"라고 답하실 정도다. 음 호주에 있을 때 하도 "It's my favoirte!"이라고 말해서 친구가 favorite은 그런게 아니라고 그렇게 많을 수 없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면서 살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내 세계에서는 이들이 가진 영역이 좋아하는 것들 다음으로 넓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들의 모임을 열어보려고 한다.
구황작물(감자, 고구마, 옥수수). 안녕하세요. 저희는 구.황.작.물. 박자두님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들의 대표들입니다. 저희를 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사실 다들 저희 좋아하거든요.
감자. (기가 차하며 자신을 가리킨다) 저 아시죠? 저 프뤤치 프라이즈. 전 세계적으로 인기 많거든요. 근데 저 좋아하는 것들이 그으렇게나 많은 양반이 저를 좋아하는 것에 넣지 않고 있다니 당최 모르겟어요. 살면서 이런 수모를 겪다니요.
옥수수. 분명 어릴 때는 잘만 먹었어요. 근데 크고 나니까 저래요. 성장기때 저를 먹고 자랐다구요. 저 양반 키의 5cm는 제가 키웠어요.
고구마. (눈물을 훔치며) 흑흑 흑흑 제가 그렇게,, 맛이,, 흑흑,,, 없나요? 이유를 알고 싶어요,,,
박자두. (지긋이 감았던 눈을 뜨며) 여러분. 진정하세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죠. 좋은 거 아닌가요?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이말입니다. 여러분이 앞에 있다고 미간을 찌푸리지 않아요. 그저 환하게 웃지 않을 뿐입니다. 입에 들어와도 괜찮아요. 다만 제가 직접적으로 여러분을 찾지 않는다 이말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다른 이들에게는 페.이.보.릿.들 아닙니까? 굳이 저에게까지 바쁘게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잘 해주세요!
구황작물(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네. 우리 바쁘잖아. 굳이 박자두 입에 들어갈 필요가 있나? 뭐 우리도 바쁜 사람들이야. 인기 많다구. 어머 벌써 시간이! 우리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가야겠다. 그럼 종종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해~~~~
자주 누군가에게 많은 사랑을 받길 원하며 살아왔다. 내가 주는 사랑만큼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주길 바랐다. 사랑은 그런 셈으로 작동하지 않는 건데. 누군가에게 나는 감자일 수 있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영역에 있는 사람. 최애만 이 세상에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최애가 아니라고 그 말이 내가 최악이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구황작물에게 했던 말들을 잊고 사랑을 쫓아다닌다면 다시 읽어보자. 너는 감자다. 너는 감자다. 너는 대다수 감자이지만 몇몇의 페이보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