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 1997/마이 시스터즈 키퍼, 2009/구글 베이비, 2009
매주 다가 오는 주말, 스산한 새벽은 잔잔한 영화와 함께 친구를 할 수 있는 낭만의 시간이다. 그러나 잔잔한 영화는 이내 보는 이로 하여금 고민의 늪에 빠지게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충격적인 면과 현실 고발적 차원에서는 다큐의 형식을 띤 구글 베이비가 돋보이며, 가타카는 잔잔히 사실과 멜로를 보여주고, 마이시스터즈 키퍼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 주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60억분의 1의 확률로 인간의 생명이 창조되는 것을 들으며, 잉태란 것은 성스럽고도 신비스러운 일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남자 아기를 낳기 위해 숯을 마신다던지, 남자의 고환을 묶는 다던지 같은 미신적인 방법이 쓰여 지기도 했고, 금줄을 걸어 놓아 해로운 외부의 기운을 막기도 하였다.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실험이 발표 되었을 때 이제 인간의 장애와 희귀병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한줄기의 빛이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논문 조작의 일로 밝혀져 수포로 돌아갔지만 세계 전역에서 생명공학 기술은 급진전을 이루고 있으며 인간의 DNA 염기서열은 복잡하게 얽힌 퍼즐 중 마지막 조각을 끼어 넣고 있다. 이런 생명 과학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타 학문과의 영향력 또한 커지고 있다. 그 이유는 과학 또는 기술이란 학문은 가치를 동반하지 않는 객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복잡한 사회의 제도와 운영에 객관적인 기술을 동원하는 것은 과학 외에 타 학문들과 연계를 통해 가치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여러 문제들 중에 유전자 조작을 통한 맞춤 아기에 대해 자세히 보고자 한다. ‘맞춤아기’라는 단어부터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닌 인위적인 방식을 취한, 유전자 조작에 대해 언짢은 혹은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알다시피 유전자 조작의 근본적인 목적은 유전자로 인해 대물림되는 치명적인 병을 고치는 것이다. 이런 병들은 현재 의료기술로 해결될 수도 없으며 가정 전체의 부담을 주는 문제도 있기에 앞으로 태어날 자녀와 가정 전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다만 유전자 조작은 해당 목적을 벗어나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에 어디까지 기술 허용의 경계를 지어야 할지 논란이 되고 있다.
유전자 조작 기술이 기업의 기술로 이전되고 치료 외에 다른 목적으로도 허용된다면 문제가 된다. 첫째, 사회의 성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노력의 의미가 상실되고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가 붕괴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지능적 우생아가 태어나게 된다면 남보다 우월한 능력을 노력 없이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노력이 성공의 기초가 되어 온 암묵적 사회의 성공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또한 기존의 사회가 재산을 통한 부익부 빈익빈 사회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몸을 통하여 부익부 빈익빈이 이루어져 국가 재정 및 금융 정책으로 사회의 불평등 정책 해소를 이룰 수 없다. 또한 이런 상태가 고착화 된다면 공평한 사회는 무너지고 영화 ‘가타카’에서 보여 지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고착화된 계급사회와 빈곤의 대물림이 일어 날 수 있다.
둘째, 노력이 실종되고 유전자로 유리함을 차지한 사람은 사람이라고 불릴 수 없다. Maslow’ 욕구 5단계 설을 보면 제일 상위에 있는 욕구가 ‘자아실현’의 요소이다. 인간은 자신의 최고 단계인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삶의 희망을 갖고 노력을 통해 목표를 이루는 것인데, 유전자로 자신의 인생이 이미 결정된다면 노력이 사라지게 되고 희망은 없어지며 이것은 사람이 아닌 단순한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단순히 바코드에 찍어 나온 상품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초 생명체가 단순히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보고, 그것이 흡사 부품들로 이루어진 기계와 같다고 생각한 사고가 그대로 미래까지 답습되는 것이다.
셋째,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전유물 그리고 대리만족을 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물론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위해 교육비, 식비, 유흥비 등 여러 모든 것들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조작을 통한 맞춤 아기는 아기가 생후 부모와의 노력과 상호 작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과 가치를 태어나기도 전에 단순히 과학의 힘을 빌려 해결 하려고 한다. 과연 자신과 공통점을 갖지 않는 자식을 키우면서 무슨 뿌듯함이 있겠으며 가족 사이의 끈끈한 정이 생기겠는가? 부모가 자식을 낳기 전에, 존재하기도 전에 과학 기술로 자식의 장래를 결정할 수 있다. 이는 가정 속에서 초기사회화를 이루고 미래를 준비하는 부모-자식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올 수 있다. 가정의 역할이 약해해지고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넷째, 유전자 조작을 실시할 때 과연 어디까지가 질병이고를 구분할 수 있는 척도의 의문이다. 만약 A라는 병을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다면 A라는 병을 가진 사람은 암묵적으로 자손을 번식 시키는 것을 막는 입장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는 다른 것이지 범죄와 같은 것이 아니다. 가령 청각 장애자 들은 수화를 세계 최고의 완벽한 언어라고 여기며 수화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서로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 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자식들도 청각장애가 있는 걸 원하며 그것을 굳이 지우려 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에서 개개인들 간의 장애의 정도가 다르고 장애인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므로 명확한 장애의 경계를 짓기란 쉽지 않다.
다섯째, ‘맞춤아기’를 시행하게 된다면 대리모의 문제가 나타난다. 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대리모도 하나의 직업인데 이 대리모에게도 임금이 주어진다. 그런데 임금이라는 것은 각국의 물가 수준과 발전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동남아, 인도 등 개발도상국은 낮은 임금을 강력하게 삼고 있다. 이때 대리모를 시행하게 될시 십중팔구 인도, 동남아 쪽 국가들이 아기의 공급지가 될 수 있다. ‘구글 베이비’에서 보면 미국은 돈을 주기만 하면 인도와 같은 낮은 임금의 나라에서 아기를 대리모를 통해 잉태 한다. 이 때 윤리적 문제로는 대리모를 통해 아기를 잉태한 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아기를 잉태하는 것은 10개월간 자신의 아이와 함께 상호교감을 나누고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위해 지내는 시간이 라고 여기게 된다면 이것은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고 임신이라는 과정이 ‘임신노동’이라는 과정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대리모를 통한 임신은 높은 과학 기술을 사용하고 실패율도 상당하기에 시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금액을 요구 받는다. 이런 이유로 대리모의 주요 고객은 선진국의 부유층들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고 이 일의 노동자들은 저개발국의 사람들이 맡을 가능성이 있다. 지구는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남쪽은 아기의 공장’ 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 구글 베이비에서는 이 문제를 확연히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대리모들은 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화학 요법으로 부작용이 나타나 소위 직업병에 걸리기도 하며 자신이 낳은 자식을 떠나보내면서 여성이 느끼게 될 허무감을 그대로 짓밟아 버렸다.
상기 5가지 이유로 유전자 조작을 통한 아기를 낳는 것은 철저히 치료의 이유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기업, 개인 등 유전자 조작 기술 관리자, 소유자, 사용자 삼박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인간이 사는 사회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사는 모든 사회는 다양성을 추구하며 한가지의 특성을 가진 것만이 사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이거나 후천적인 영향으로 인해 장애를 가지거나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되어 불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사회의 한 부분으로써 다양한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나기 전에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고 단점의 여지를 없애는 것은 사회의 다양성을 없애는 것이며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지원하는 정부의 역할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다윈은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가장 우수한 개체들이 더 많이 증식하여 퍼져 나가고 장기적으로 종의 변화를 산출한다고 했듯이 규제와 제어가 없는 원시 사회는 우수한 개체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이성적인 동물은 이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의 다양성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위해 중재자인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 불편한 자를 위해 정부는 복지 정책 지원과 노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을 통해 사회의 계층을 비슷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퇴색시킬 수 있다. 정부는 기존의 복지 정책을 유지하고 지원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유전자 조작이 아닌 자연 분만을 하여 설령 문제가 나더라도 걱정을 덜어 줄 수 있는 충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장애나 핸디캡의 원인이 사회적, 환경적 요인들에 비해 유전적 요인이 더 클 것으로 부과된다면, 이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비유전적 방법은 관심을 잃고 거기에 투자되는 자원도 줄어 들 것이다. 정부의 지원과 노력뿐만 아니라 한번 뚫린 기술과 제도는 또 다른 기술과 제도를 허용한다는 ‘미끄럼틀’이론의 방지를 위하여 정부와 철저한 감시아래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을 확실히 막을 필요가 있다. 특히 생명 공학 산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과학자 집단, 병원과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브로커 집단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브로커 집단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이며 통신기술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그리 쉽게 잡기 힘들기 때문에 체계적인 수사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 기업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정부, 기업, 개인 중에서도 기업이 이 문제에 대해 제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이라는 조직이 근본적으로는 이익을 목표로 움직이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윤 외에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 분야에는 큰돈이 개입되어 있고, 종종 현명하고 적절하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유전자 연구 및 기술은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감과 죄책감을 자극하여 금전적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유전자 조작이 급물 쌀을 타면 자신이 이를 사용할 경제적 수준만 된다면 이도저도 할 가능성이 높다. 군중의식과 신기술에 대한 효용에 대한 기대 그리고 호기심은 기술 수용 단계에서 Chasm(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걸리는 간극)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 기술을 요구하고 이용하는 상태로 나아가기 쉽다. 또한 증가하는 소비는 이 기술의 가격을 올리고 일부의 경제적 상류층만 이용하는 기술로 진행되고 정부가 제재하는 극한의 기술을 요구하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만남으로 암시장이 생길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 윤리를 바탕으로 경영자의 올바른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해마다 경영계에서 기업의 윤리 지수를 공개하고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기업은 투명한 사업 계획서와 회계공시를 통해 정부의 제재를 벗어난 사업을 막아야 하며, 올바른 가격 책정을 경제 그 자체에 맡기기보다는 다양한 이익 단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장기간의 토의와 조정이 필요하다.
셋째, 개인들은 다가오는 유전자 조작 선택을 다루기 위해 올바른 가치관과 생명 공학 쪽 지식이 필요하다. 먼저 병원에서 의사들은 철저한 책임감 아래 이러한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많은 대화를 통하여 유전자 조작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환자는 항상 의사에 대해 정보를 적게 가지고 있고 비전문적이므로 비대칭적 입장에 서 있다. 이런 입장에서 의사의 의사 표현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므로 그들의 바른 지시가 필요하다. 물론 환자 일반 국민들도 생명 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학교 차원에서도 생명 쪽 수업이 윤리수업과 연결하여 필요한 상황이고, 결혼하여 자식 계획을 이루는 부부의 경우에는 이러한 생명 과학 그리고 윤리 지식이 두세 배 더욱더 중요한 일이다. 또한 과학 기술을 시행하는 관리들도 전문 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하며 과학자들은 자신의 과학 진행 사업에 대해 투명한 공개와 진행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생명 과학 기술에 대한 입장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살펴 보았다. ‘가타카’ ‘마이시스터즈 키퍼’에서 보듯이 개인의 삶과 운명은 과학과 남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 운명이 좋든 나쁘든 그것은 단순한 가치 판단에 불과하며 운명 자체가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며 자신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바뀌어 나갈 수 있다. 유전자는 삶의 청사진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 이상의 존재이다. 머지않아 찾아올 유전자 조작 시대에 대비하여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