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로 향한다.
가장 먼저 그날의 날씨를 살핀다. 동해시에 와서 생긴 습관이다. 나는 베란다에 있는 걸 좋아한다. 베란다에는 커다란 창과 바 테이블이 있다. 창에 바다가 담긴다. 날이 맑을수록 하늘과 수평선의 경계가 뚜렷하다. 간혹 아래쪽 공터에서 비닐봉지를 든 채 무언가 채집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베란다에는 차양막이 없어서 빛이 그대로 들어온다. 머리를 감고 앉아 있으면 금세 마른다. 돌이켜 보니 드라이기를 꺼내 쓴 적이 없다.
베란다 바 테이블에 앉아 책을 펼친다.
노트북을 펼치면 화면이 빛으로 깜깜해진다. 덕분에 키보드보다 손글씨를 더 많이 쓴다. 일기장을 펼쳐서 그날의 날씨와 기분을 적는다. 기분에도 온도계가 있는 것처럼, 날씨와 함께 기분이 고조됐다가 가라앉는다. 지난 일기는 '무엇을 하겠다'와 '결국 하지 못했다'가 반복되곤 했다. 크고 작은 고민도 날씨 앞에선 사소해지는 게 좋다. 시를 필사하기도 한다. 한 줄 한 줄 빛이 와 닿는다. 두 편 정도를 옮기고 나면 오른 손등이 따뜻해진다. 책을 덮고 베란다를 나온다.
공간에 내가 길들여지듯, 나도 공간을 길들인다.
베란다는 침실과 연결돼 있다. 그리고 베란다 문 앞에는 화장대가 놓여 있다. 나는 화장대에 놓인 마른 꽃잎과 상자들을 베란다에 모두 옮겼다. 언제든 내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빛이 따가운 날엔 한 걸음 물러나, 침실 화장대에서 책을 펼친다. 노트북을 켜기도 한다. 살며시 빛이 드는 화장대 자리를 좋아한다. 의자에 두 다리를 올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편안하다. 베란다 바 테이블 위의 조형물도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자리를 넓힌 덕분에 노트북을 두기 딱 좋은 크기가 됐다. 저녁에는 이곳에서 노트북을 펼친다.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선선한 이곳을 좋아한다.
나는 늘 침실 문을 열어둔다. 주방과 침실, 베란다가 일직선으로 연결돼 있어 주방에서도 베란다 창을 볼 수 있다. 주방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아한다. 몇 걸음 멀어졌다는 이유로 다르게 보인다. 공터와 낮은 건물은 가려지고 바다와 하늘이 가득하다. 찌개를 끓이다가 오른편을 바라보면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자리한다. 이곳에 서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 한 자리를 좋아하게 되면 다른 자리에도 마음이 간다. 베란다와 화장대, 주방까지. 구석구석 좋아하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자리에서 하는 일들을 좋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