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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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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Apr 18. 2021

시간을 담는 자리

#기둥

거울 속의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미간에 내 천자로 주름이 잡혀 있다. 그제야 미간에 잔뜻 힘이 들어간 게 느껴진다. 검지와 중지로 미간을 꾹 눌러준다. 쇄골 근처 가로로 주름이 잡혔다. 주름에는 생활 습관이 그대로 담긴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많고 높은 베개를 사용하는 까닭이다.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삼십 대가 되었다. 하루하루 살아간 흔적이 몸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


어릴 적에는 시간의 흐름을 몸 바깥에서 찾았다.

거실 기둥에는 나와 언니들의 키가 빼곡히 적혔다. 기둥에 기대어 서면 마음이 간지러웠다. 까치발을 들었다가 내리기를 여러 번. 엄마가 내 머리를 한 손으로 꾹 누르면, 나는 한 걸음 물러나 엄마 손이 어느 높이에 있는지를 살폈다. 엄마는 슬쩍 손을 치우고는 새로 가로줄을 긋고 이름과 날짜를 적었다. 키를 재는 건 연례행사보다 일상에 가까웠다. 시간 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기둥에 기댔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대로 기록했다. 컴퓨터 사인펜과 지구 색연필, 삼색 볼펜과 연필까지. 기둥은 우리 집에서 가장 알록달록한 자리였다.


우리는 서로의 이정표였다.

기둥만 봐서는 몇 센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기둥에 새겨진 언니들 키를 보며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짐작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키가 큰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키가 엄마 어깨를 넘었는데, 한 번은 "조금 있으면 엄마가 나한테 기댈 수 있겠다" 하고 말했다. 이후로도 나는 쑥쑥 자라 엄마에게 어깨를 내주는 딸이 됐다. 내가 시간의 흐름을 기둥에서 몸으로 옮겨오는 동안, 엄마도 몸으로 시간을 담아내고 있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네 명의 아이 더 있다.

나의 조카이자 엄마에게는 손주들이다. 엄마는 손주들을 기둥 앞에 세우는 대신 꼭 끌어안는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기둥 삼아 손주들의 키를 잰다. 첫째 조카는 반년만에 엄마 배꼽에서 명치까지 훌쩍 자랐다. 엄마가 오른팔을 내밀고는, 왼쪽 엄지로 오른 팔목 아랫부분을 짚는다. "처음에는 이만했던 애가 벌써 이렇게 컸네." 엄마는 몸 여기저기에 기둥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엄마는 지나가는 말로 본인이 "키가 줄었다"고 한다.

엄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내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일이기도 하다. 나는 몇 년째 키가 자라지 않았는데, 엄마는 내가 자세를 낮췄을 때 기대는 걸 더 편해한다. 나이 듦은 세월의 무게가 아니라 자리의 이동이다. 키가 다 자란 어른에게 굳이 '어른이 돼야지' 하고 말하는 건, 몸 밖에서 몸 안으로 옮겨간 이정표를 잘 가꾸라는 말인 것 같다. 엄마의 이정표는 나와 손주들, 이것 말고도 비밀스런 이정표 하나 갖고 있으면 좋겠다.


낯선 순간은 있겠지만 자연스러워질 일이다. 누구나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고 또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믿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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