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날 때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다. 얼굴에 양념을 묻혀가며 게장을 먹고, 족발을 뜯었다. 또 매번 약속 시간이 10분씩 늦춰졌는데, 나중에는 출발하기 전에 서로 전화를 해 다시 시간을 정했다. 금요일 저녁 11시에는 무슨 프로그램을 보는지 알았다. 그래서 12시 반에 전화해 그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로 장난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주는지, 어떤 말과 행동을 싫어하는지도 알았다.
남자친구에게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나에 대해 알게 됐다. 약속 시간을 늦추는 건 매번 나의 몫이었다. 또 관심 없다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접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제철 전어는 맛있었고, 독립 영화도 재미있었다.
두 사람은 익숙해지기 위해 만난다.
그래서 첫 만남에 “취미가 뭐예요?” 하고 물어본다. 서로의 취미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유년기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나도 남자친구와 익숙해지는 시간이 좋았다. 몇 시간씩 전화 통화를 했다. 당장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부터 어떤 순간에 눈물이 나는지까지.
몇 년이 지나 나는 직장인이 됐다. 남자친구는 학생이었다. 서로 일어나는 시간과 하루 동안 마주보는 사람들이 달랐다. 우리가 학생 때 만났다고 해서 처음부터 똑 닮은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너와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왠지 모르게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남자친구와 나는 이미 “취미가 뭐예요?” 하는 이야기들을 나눈 후였다. 집안의 분위기는 어떤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생각에 ‘굳이’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됐다.
남자친구와 나는 장난과 웃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 어떤 장난을 재미있어 하는지, 또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계속 웃었다. 그때마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휴지가 놓여 있었다. 남자친구가 이야기하는 동안 휴지를 돌돌 말아 올려놓은 것이다. 집에 돌아왔는데 남자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로에게 더 이상 물어볼 말이 없다는 것. 남자친구와 숱하게 나눈 이야기들 중 대부분이 ‘옛날’ 기억 속에 자리한다는 것.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남자친구가 어떤 순간에 눈물이 났고 웃음이 났는지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뒤로 남자친구와 나는 서로를 짐작했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할 테니 한적한 곳에서 만났고, 이 가게를 좋아하니까 같은 가게를 갔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남자친구와 당장 눈앞에 있는 남자친구는 같은 사람이었다. 같은 사람이었을까.
익숙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연애는 안락하다. 한참 뒤에 돌아보면 내가 머물러 있던 자리에는 돌돌 만 휴지가 여러 개 떨어져 있고, 남자친구가 앉아 있던 자리는 비어 있다.
어쩌면 익숙해진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눈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지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