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거지
어린 시절 생각 없이 따라 불렀던 유해한 동요를 기억한다.
내가 커서 어른되면 어떻게 될까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있을까
엄마처럼 행주치마 입고 있을까
랄랄라 다 같이 흉내 내보자
나는 엄마 나도 엄마
여보 다녀오세요 호호
나는 아빠 나도 아빠
여보 여보 다녀왔소
하도 따라 불러서인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사가 절로 떠오른다. 유해하다 유해해.
행주치마의 유래는 역사 시간에 배우는 1593년 임진왜란 시의 행주대첩 때이다. 행주산성에서 치마 앞 폭에 돌을 잔뜩 주워다 날랐던 내 또래의, 나보다 어렸을 여성들은 그들의 치마 앞 폭이 몇 백 년이 지난 후에 어떻게 오독될지는 꿈에도 몰랐을 테다. 외세의 침입에 맞서 국방의 의무를 강제되던 것보다 자발적으로 수행했던 용감한 여성들의 행주치마는 집에서 '큰 일'하시는 아빠들의 수발을 위한 집안일을 위한 작업복으로 오독되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읽지만 (심지어 멜로디는 엄청 중독적인) 저 동요를 목이 터져라 부를 때에는 될 수 있는 게 저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저 둘 중에서도 지정 성별 여성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호호' 행복한 웃음을 내보이며 남편이 와서 너무 좋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이상한 줄 몰랐다. 어린 나는 동요 속 '호호'를 힌트 삼아 기분 좋을 때 내는 웃음이고, 동요 속 엄마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저런 삶을 행복이라 꿈꾸며 자랐다. 지금 다시 보면 집에 있던 여성이 돌아오는 남성을 위해 수행하는 '호호'의 반김에는 그 어디에도 '호호' '하하' '낄낄' '껄껄' 등 그 어떤 회답도 없는데. 거참, 자네 참 무뚝뚝한 아빠로구만?
아니, 근데 그나저나 자네 '아빠'라고 했나? 자네 어디를 가려면 넥타이를 꼭 메야하는 거야? 여의도에서 일하나? 금융 쪽이나 컨설팅에서 일하는 게야? 최소 장사하거나 현장에서 일하는 건 아니겠구먼? 화이트 칼라야? 외벌이가 고되진 않고? 돈 벌러 가는 게 아니야? 아니 그럼 어디가? 아빠 어디 가?
저런 의문은 하나도 품지 않고 언젠간 엄마가 되는 거라고 그것이 '호호'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초 어린 시절을 지나며, 어느 순간 엄마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능을 잘 보고 대학에 가야 '남편의 얼굴이 바뀌고' '남편의 직업이 바뀌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는 것이라 들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 직업인으로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기가 있는 것은 동요가 일부러 숨긴 것일 수도, 혹은 동요가 IMF 이전 만들어진 탓일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일단 무언가 되어야 했다. 엄마가 되기 위한, 화목한 정상 가정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오히려 이때부터 저 동요는 내게 더욱 집요하게 굴기 시작했다.
네가 커서 어른되면 어떻게 될까?
무엇이 못될까 봐 열심히 공부했다. 수능을 치고, 대학을 가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세상사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전공을 정하면 앞으로 내가 커서 어른되면 어떻게 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었어? 그냥 주어진 것을 하면 되는 게 아니었냐고! 응... 아니더라고. ^^ 혼란의 대학 저학년을 지나 주변에는 각종 자격시험을 보며 내가 무엇이 되기를 정한 친구들이, 어떤 기업의 어떤 직무로 일하길 희망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지금 와서는 그들도 '어른되면 어떻게 될지'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지독히도 뭐가 될지 답이 안 서는 친구였다. 계속 시간이 지나도 나는 꼭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뾰족이 들지 않았다. 유독 잘하는 것도 없지만, 유독 못하는 것도 없었다. 스킬 셋의 밸런스가 지나치게 좋은 나머지(?)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무엇을 할지 고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른이 된 지 1년, 2년, 3년,... ,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어야 할 것 같길래 어른이기를 계속해서 유예했다. 다만,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NPO(비영리단체)를 만들어 동아프리카의 한 국가에 현지 언어로 된 아동 도서를 제작해서 전달했다. 그러다가 현지의 영어 잘하는 선생님들을 나처럼 영어(특히 말하기)로 고통스러워하는 학생과 연결하는 교육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창업을 했다. 생각보다 재미도 없고, 그때 꾸려진 팀이 내 팀 같지 않아 이번엔 동아프리카 현지에서 만들어진 옷감이나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원단을 활용해 현지에서 만든 옷을 팔면 어떨까 싶어 졌고 이번엔 그걸 했다. 잘해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아 모든 것을 정리했다. 아무것도 고민하고 싶지 않아 오라는 작은 회사에 갔다가 잘하는지와는 별개로 나는 사람의 성장을 지원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창업 교육하는 회사에 갔다. 창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거나, 창업했던 경험을 살려 예비/초기 창업가, 스타트업 종사 주니어, 기업/기관의 임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창업,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등의 강의나 코칭/창업 컨설팅/창업 멘토링 등으로 불리는 일들을 했다. 특히 해외 창업가를 육성하기 위한 글로벌 창업 프로그램을 프로덕트 오너처럼 내 사업같이 총괄하는 경험도 했다. 그리고 갑자기 여러 이유로 일하기 싫어져 백수 생활을 했다.
지금은? 다시 어떤 회사에 들어가 직원으로서 전략적 투자나 서비스 기획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졔졔라는 개인으로서 기고를 하고, 홈페이지 개편 기획을 하고, 의뢰받은 강의와 코칭/컨설팅/멘토링을 지속하고 있다.
나는 뭘까? 내가 커서 어른되면, 이미 많이 큰 거 같은데 어떻게 될까? 나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른되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어른이 되기를 유예하는 중일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쌓여서인지, 적어도 몇 가지는 알게 되었다.
하나, 이젠 눈치 없이 언제까지 '어른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시달릴지를 푸념하거나, 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도 않아도 될 때가 언제일지를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죽을 때까지 고민하게 되겠지.
둘, '어른되면 어떻게 될까'의 질문에서 '될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를 생각해본다. 글 잘 쓰시는 분들이 좋지 않은 글의 조건으로 꼽은 부사와 형용사의 남용을 사실은 좋아하는 나는 즐거운 부사와 형용사를 잔뜩 떠올린다.
능동적으로, 자율적으로, 자유롭게, 눈치 보지 않고, 여유롭게, 농담하며, 용감하게, 타인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며, 타인의 기쁨에 함께 기뻐하며, 호기심을 가지고, 감사하며, 즐기며, 운 좋게, 아름답게, 기쁘게, 건강하게, 역동적으로, 춤추듯이, 노래하듯이 그렇게 그렇게
셋, 나는 결국 아직까지도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 정의하지 못해서, 그냥 아무것도 안 된 사람이기로 했다. 나는 아직도 어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는 정말이지 오히려 좋아! 아직 뭐가 안되었으니 행주치마 두르고 '호호'하기엔 이르다는 증거도 생겼다. 내가 동요 속 엄마가 되지 않는 이유이다. 게다가 어른이 아니니 나는 계속 질문할 수 있다. 내가 커서 어른되면 어떻게 될까? 여전히 세상은 탐색할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두 눈에서 호기심을 잃지 않을 이유가 내게는 있다. 나는 아직 '내가 커서 어른되면 어떻게 될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니까.
아주 오랜 시간을 가지고 어른이 되야겠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커서 어른되면 어떻게 될지를 물으며, 즐거운 부사와 형용사로 가득 채운 태도로 이 세상을 탐험해야지. 춤추듯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람들과 세계와 외계를 바라봐야지. 오랜 시간 어른이 되려다가 결국 어른이 못되고 죽게 된다면,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거니까.
내가 커서 어른되면 능동적으로, 자율적으로, 자유롭게, 눈치 보지 않고, 여유롭게, 농담하며, 용감하게, 타인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며, 타인의 기쁨에 함께 기뻐하며, 호기심을 가지고, 감사하며, 즐기며, 운 좋게, 아름답게, 기쁘게, 건강하게, 역동적으로, 춤추듯이, 노래하듯이 -
아무것도 안 된 사람이 되겠다.
아, 브런치란 나름 공공장소이니 혹여 틀린 가사를 전달할까 싶어 저 유해송의 가사를 찾아봤습니다. 제 기억이 맞나 싶어서요. 두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지독한 유아 교육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가사를 기억하게 한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맙소사! 아직도 저 유해송이 불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2021년에 아직도 저 동요를 부르고 부르게 하는 거죠! 이 세상 모부님들, 선생님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나 제발 저 유해송을 우리 아이들에게서 치워주세요! (참, 동요 작사가이자 작곡가인 선생님에게 악감정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