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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Mar 23. 2022

구피를 위한 수조는 없다

알지만 알지 못하는, 영영 닿을 수 없는

새 가족이 생겼다. 이들의 조상은 남미의 최북단, 베네수엘라의 북동쪽에 위치한 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이다. 19세기,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영국으로 끌려갔다. 사람들은 그 먼 길을 죽지 않고 산 채로 영국에 도착한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두면서도, 그들의 이름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에게 이들을 영국으로 데려간 인간의 이름을 붙였다. 우리도 그 이름으로 막 새 가족이 된 그들의 자손을 불렀다.


“어? 엄마, 얘네 뭐야?”

“구피. 누가 좀 줄까 물어보길래 받아 왔어.”

내가 묻자 엄마가 답했다. 쭈그려 앉아 새로 맞이한 남미계-비인간 식구의 낯선 자태를 한참 쳐다봤다. 손가락 한 마디도 안되는 몸집이지만 지느러미와 꼬리의 역동성은 이들의 고향과 연결된 아마존의 물줄기를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힘차게 갈라낸 물 끝에 있는 것은 수조의 반대편일 뿐이었다.


한두 달쯤 지나자 구피들이 임신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부르는 여성 구피를 보며 한때 내 뱃속에 있던 수정란을 떠올렸다. 척박한 내 삶에 잘못 자리 잡은 수정란처럼, 콘크리트 틈새에 잘못 내려앉은 꽃씨처럼, 구피도 이곳이 태고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착각 때문에 새끼를 품은 것은 아닐지 의문하면서도 새끼들이 무사히 태어나 늙어서 죽길 바랐다. 구피 무사 출생을 기원하던 어느 날, 배가 홀쭉해진 수조 속 구피를 발견했다. 반가움도 잠시 의아함이 들었다.


‘아기들은?’


아기들이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수조 속을 찬찬히 뒤져 보다 어항 바닥 가까이에서 두 셋만 겨우 발견했다. 그때 알게 됐다. 작은 입자는 무조건 입에 넣는 구피들이 치어를 먹는 일이 흔하다는 것, 심지어 어미가 갓 낳은 치어를 먹기도 한다는 것, 그럼에도 구피들이 어떤 환경에 있는지에 따라 치어를 잡아먹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기 구피를 잃어 본 인간들은 출산 전 산모 구피를 분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취약한 산모 구피들은 스트레스로 죽거나 출산을 멈추곤 한다. 따라서 분리보다는 수조 환경 개선을 통해 치어와 성어가 교류하며 성어가 치어를 돌봐야 할 대상으로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일단 수조가 넉넉해야 한다. 수조가 작은데 개체가 많으면 모두에게 좋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구피들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치어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더 충분한 먹이도 필요하다. 먹이가 풍족해야 치어를 덜 잡아먹는다. 또, 잔가지가 많은 수초를 조성해 아기 구피들을 성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아기 구피의 생존을 위한 조건을 알기 전에는 동족을, 자기 아이를 먹는 구피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구피가 자신의 아이를 죽이지 않고 안전하게 기르는 데에는, 오롯한 한 생태계가 필요함을 알고 나니 그 생태계를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졌다. 치어의 죽음 이후 우리는 수조를 바꿨고, 수초를 더 심었다. 임신한 구피를 살피며 먹이 양과 환경을 조절했다.


성어들이 치어를 덜 잡아 먹었다. 나날이 구피가 늘어갔다. 수조가 다시 점점 좁아졌다. 구피들이 또 개체 수를 조절한다. 치어들이 죽는다. 아무리 수조의 크기를 늘려도, 한 번에 수 십의 아기를 낳는 구피의 번식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아무리 수초를 심어도 모든 치어를 구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수조 속에서는 영영 ‘이들을 위한’ 생태계를 마련할 수 없다.


처음 만난 날처럼 구피들은 역동적으로 물살을 가른다. 그리고 이내 벽을 맞닥뜨린다. 대를 이어 몸으로 전해진 트리드나드 토바고의 기억을 품고, 구피는 매일 그들을 위한 내 노력이 만든 세상의 한계를 맞는다. 나는 수조 밖에서, 등을 돌려 반대편으로 향하는 그런 그들의 꼬리를 본다. 내가 아무리 이들을 가족이라 한들, 이들이 수조너머 어디까지 얼마나 빨리 헤엄칠 수 있는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우거진 삼림 속 다른 물살이들과 긴긴 물 줄기를따라 자유로이 유영하는 이들의 진짜 이름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는 명징한 절망감이 엄습한다.



트리드나드 토바고의 구피 서식지





Photo @https://davidreznick.weebly.com/guppy-evolut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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