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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브릭 Jul 27. 2019

괴성

35mm_film_canon


'위이잉' 


벌써 30분째. 해소되지 않는 더위에 태규는 30분째 선풍기 앞에 얼굴을 얼굴과 몸통을 고정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부터 사용하던 선풍기는 대한민국 최정예 육군 부대에서 사용할 법한 신형 자주포에 버금가는 소리를 내며 건재한 체력을 과시한다.


"시리야." 

"삐빅. 말씀하세요." 


태규가 눈을 감은채 본인의 1시 방향 27센티미터 앞에 놓인 핸드폰을 깨웠다. 


"몇 시야?"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58분입니다." 

"오늘 날씨는 어때?" 

"오늘 서울의 날씨는 최고 37도 최저 24도입니다." 


태규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6시가 다돼가지만 아직도 해는 사라질 생각이 없나 보다.  


'빨리 좀 꺼져라...' 


태규는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선홍빛 태양을 보면서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땅 땅땅 땅 따라 땅땅 똥땅 똥땅 똥. 땅 땅땅 땅 따라 땅땅 똥땅 똥땅 똥" 


태규는 눈동자만 돌려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옆 동 사는 시훈의 전화다. 


"뭐하냐?" 

"나 그냥 있어." 

"밥 먹으러 가자." 

"그래." 

"테니스장 앞으로 나와." 

"10분 뒤."   

"자전거 타고 나와." 

"알았다." 


시훈은 초등학교 4, 5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친해졌다. 바로 옆 동에 살면서 같은 학원까지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되었다. 태규는 전화를 끊고 옷장을 열어 색이 바래서 베이지색에 가까운 흰색 티셔츠를 입는다. 8년은 입은 것 같다. 시훈을 만나는데 어제 새로 산 폴로셔츠를 입을 필요가 없다. 순댓국 아니면 설렁탕 둘 중에 하나를 먹을게 뻔한데 은퇴한 상류층 백인 할아버지들이 요트를 타면서 입을법한 체크 셔츠는 사치다. 


어느덧 빨갛던 하늘은 코발트블루색으로 물들었다. 해가 사라지니 연쇄살인마 같던 더위가 조금은 식은 듯했다. 오늘은 순댓국도 설렁탕도 아닌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평소에는 미국 음식을 쳐다보지도 않던 시훈녀석이 웬일로 먼저 햄버거를 먹자고 제안했다. 이왕 먹을 거면 맥도날드로 가자고 했지만 시훈은 꼭 버거킹을 먹어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태규와 시훈은 콰트로 치즈 와퍼세트를 먹었다. 치즈와 탄산음료 밀가루 등이 몸속에서 강하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먼저 햄버거를 먹자고 말했던 시훈은 소화도 시킬 겸 자전거 좀 더 타다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시훈과 태규는 강변역으로 향하는 잠실철교 자전거 도로 위에서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태규는 기분 좋게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페달을 좀 더 세게 밟는다. 조금씩 속도를 올리며 달릴 때 그들의 오른쪽 마 주편에서 지하철이 최고속도로 달려온다. 태규는 의도적으로 자전거를 지하철이 달려오는 방향 쪽으로 살짝 더 붙였다. 지하철이 지나가면서 발생하는 바람과 휘청거림이 기분 좋은 스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앞서가던 시훈은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해서 관리를 철저히 해서 그런지 시훈의 파워는 엄청나다. 분명 태규가 더 비싸고 빠른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도 시훈을 따라갈 수가 없다. 역시 최고의 장비는 '엔진(허벅지 힘)'이라는 자전거 마니아 선배의 말이 맞나 보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다리 위에는 태규와 시훈뿐이다. 


시훈은 자전거도로와 연결된 육교 끝에서 태규를 기다리고 있었다. 숨을 헉헉거리는 태규와 달리 시훈은 편안해 보였다. 


"꽤 힘들다." 

"난 뒤질 거 같아." 


시훈은 평온한 표정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태규는 정말 뒤질 것 같은 표정이다. 시훈의 페이스에 맞추려고 억지로 속력을 올렸던 탓이다.  


"커피 한잔 하자." 


시훈은 먼저 자전거를 끌고 육교를 내려갔다. 태규는 아직 가파른 숨을 잠시 고른 뒤 자전거를 어깨에 들쳐 멘다.


두 사람은 각자의 핸드폰을 보며 커피를 마신다. 두 사람 앞에 놓여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샷이 3개 이상은 들어간듯하게 진한 흑갈색이다. 태규와 시훈 사이에 불필요한 대화는 없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얼음들이 유리잔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가자." 


태규가 마지막 얼음을 입에 털어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 때는 둘이 자전거를 바꿔서 타기로 했다. 산악용 MTB 자전거에 가까운 시훈의 자전거는 태규의 자전거보다 훨씬 무거웠다. 


"야 이거 진짜 무겁다?" 

"어, 싸구려라 그래." 


시훈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태규의 자전거를 타고 달려 나간다. 이런 싸구려 자전거를 따라잡지 못한 자신의 허벅지를 쳐다보며 태규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시훈은 전속력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태규는 이왕 이렇게 천천히 달릴 생각이었다. 간간히 선캡을 쓰고  산책로를 걷는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가로등 아래서 선캡이 왜 필요 한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태규의 왼쪽 어깨 뒤로 지하철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태규는 철로 쪽으로 몸을 붙였다. 다리의 중간쯤이었을까, 지하철이 최대속력으로 펜스를 사이에 두고 태규의 옆을 지나친다. 


"아씨!!" 


지하철이 지나가며 생긴 바람에 태규가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동안 자전거를 차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태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어서 그나마 덜 민망했다. 오른쪽 무릎을 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철교의 끝에 다다르니 이미 도착한 시훈이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시훈은 태규가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오는 것을 발견했다. 


"넘어졌어?" 

"어.." 

"괜찮아? 피나는데?" 

"좀 쓰라린데, 괜찮아." 


그때였다. 역사 안에서 어떤 여인의 처절한 괴성이 들려왔다. 


"아아악!!!!" 


태규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쉿..." 


잠시 후 다시 한번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 뭐야. 그 맨날 오는 욕쟁이 할머닌가?" 

"아닌 거 같아. 올라가 볼래?" 


태규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좀 무서운데..." 

"그럼 가까이라도 가보자." 


둘은 자전거를 끌고 좀 더 지하철 역사가 잘 보일만한 곳으로 이동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역사의 창문으로 키가 굉장히 큰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움직임 없이 이따금씩 소리를 질러댔다. 태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시훈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올라가 보자." 


시훈이 말했다. 


"싫어. 그냥 집에 가자." 

"그럼 여기 있어. 나만 올라갔다 올게." 


시훈은 자전거를 벽에 세워두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삐빅' 시훈이 교통카드 찍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시훈의 머리가 그녀 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둘의 비율을 보니 그녀의 키가 2미터는 되는 듯이 보였다. 그때 시훈이 창밖으로 소리쳤다. 


"야! 올라와봐! 미쳤어!" 

"싫어." 

"아 진짜 대박이라니까. 올라와서 멀리서만 봐 그럼."  

"됐어. 빨리 내려와 그냥." 

"괜찮다니까. 안 움직여 이 사람. 올라와서 나 사진만 찍어주고 내려가!" 

"나 교통카드 없어." 


시훈이 자신의 카드를 창문 밖으로 던졌다. 태규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자신의 자전거와 태규의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웠다. 다행히 역사로 걸어 올라가는 시간 동안 여자의 괴성은 들리지 않았다. 무뚝뚝한 시훈이 웬일로 싱글벙글하며 태규를 맞이했다. 


"지리지 마라." 

"뭔데." 


태규는 시훈의 등 뒤로 거인 여자를 쳐다보았다. 태규는 순간 눈 앞의 비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정신을 잃을뻔했다. 키가 2 미터를 넘어 3미터는 될 거 같은 여인이 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입이 마치 문처럼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고, 눈동자는 흰자가 없는 검은색이었다. 


"야... 가.... 가자...." 

"아 어딜 가! 나 사진 찍어줘. 저 입 앞에 서 있을게." 


시훈은 핸드폰을 태규의 손에 쥐어주고 그녀의 입 쪽으로 달려갔다. 시훈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의 얼굴과 입속을 쳐다봤다. 


'쟤가 왜 저렇게 오바지...' 


태규는 평소에 말수가 적은 시훈답지 않게 거인 여자 앞에서 들떠있는 모습이 이상했다.


"태규야! 대박이다! 가까이 와봐!" 


시훈은 마치 유치원생이 아쿠아리움에서 처음 백상어를 본 것처럼 신기해했다. 태규는 거인 여자의 입안에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태규야 사진 찍어줘! 좀 가까이 와라. 쫄보 새끼. 여기 진짜 시원하다!"

"빨리 나와 미친놈아!" 


태규는 카메라를 든 채로 소리 질렀다. 그때였다. 거인 여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아래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 시훈은 여전히 태규가 든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야 시훈아! 빨리나 와 새꺄!!" 

'텁' 


거인 여자가 입을 닫았다. 시훈의 형체가 사라졌다. 거인 여자의 입은 늘어졌던 흔적 없이 줄어들어 있었다. 거인 여자의 몸이 조금씩 작아지더니 이내 평균 체격의 동갑내기 여자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여자는 태규를 쳐다보았다. 생긋 웃은 여자는 태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태규는 뒷걸음 질을 치기 시작했다. 


"어머, 무릎에서 피가 많이 나네요. 제가 좀 봐도 될까요?" 


여자는 순식간에 태규의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핥았다. 


"으악!!"


태규는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묶여 있는 자신의 자전거를 풀고 미친 듯이 밟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입에선 쉴 새 없이 쌍욕이 튀어나왔다. 집에 돌아온 태규는 집 안의 모든 불을 켰다. 잠시 숨을 고른 태규는 112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경찰서죠... 네 제 친구가..." 


태규가 아무리 설명해봤자. 경찰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장난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태규는 전화를 끊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소리 같은데 경찰이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태규는 창고를 열고 야구방망이와 망치를 꺼냈다. 등산용 백팩에 무기를 넣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여자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태규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본 거인 여자의 형체와 비슷한 거인 남자가 서 있었다. 태규는 야구방망이를 꺼내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 거인의 입은 아까의 여자 거인처럼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으어어어..." 


남자 거인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머 다시 왔네요?" 


여자가 태규의 등 뒤에서 인사했다. 


"으악!!" 


여자의 인사에 놀란 태규는 들고 있던 방망이를 떨어뜨렸다. 그 소리에 남자 거인이 몸을 천천히 돌려 태규를 쳐다봤다. 


"시.. 시훈아...?" 


눈동자가 검게 변해버린 시훈이 여전히 입을 벌린 채로 태규를 쳐다보았다.


"으으으어..." 

"조용!!!" 


여자가 소리지르자 시훈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공포를 느끼는 듯했다. 


"입 닫아." 


여자의 명령에 늘어졌던 시훈의 입이 줄어들었다. 


"옳지. 함부로 입 벌리는 거 아냐 알았지?" 


거인이 된 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지하철 한 대가 진입했다. 그 안에는 시훈과 같은 거인들이 구겨져서 타고 있었다. 


"우리 또 만나요."


문이 열리자 여자는 태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시훈과 함께 지하철에 올라탔다. 거인들이 여자를 보자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거인들을 태운 지하철이 떠난 뒤 잠시 후, 아무도 없던 역사에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뭐야..." 


태규는 바보가 된 것 같았다. 


"학생." 


태규가 뒤를 돌아보았다. 허름한 청바지와 검은색 뿔테를 쓴 중년 아저씨였다. 


"혹시 거인을 봤니?" 


태규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봤구나. 잠깐 따라와바." 


역사를 빠져나와 태규가 중년 아저씨를 따라간 곳은 구두 수선가게였다. 역사 아래 위치한 오래된 일회용 구두 방에 들어서니 머리가 하얗게 샌 할아버지 한 분이 구두를 손질하며 앉아계셨다. 


"선생님. 이 학생이 거인을 보고 살아남은 친구입니다." 


할아버지는 구두 손질을 멈추고 태규를 쳐다보았다. 


"살아.... 남아?" 

"예... 이상하게 여왕이 이 친구는 잡아먹지 않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태규는 호흡을 가파르게 쉬었다. 


"저도 잘... 멀리서 봤을 때 상당히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구두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허허 그것 참 별일이구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 말하지 않는 중년 아저씨와 할아버지를 보다가 태규가 먼저 침묵을 깼다. 


"저... 이만 가볼게요..." 


태규가 일어나서 구둣방 문을 열고 나오려 할 때, 할아버지가 태규를 불렀다. 


"학생." 

"예?" 


할아버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태규를 바라보았다. 


"아닐세... 그냥 잊고 살다가...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찜찜한 기분을 뒤로하고 태규는 집으로 향했다. 멍하니 자전거 페달을 돌리던 태규는 어느새 자신의 오른쪽 무릎의 상처가 깨끗하게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자신의 무릎을 쳐다보던 태규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아주머니와 부딪혔다. 아주머니가 쓰러지면서 들고 있던 시장바구니에서 야채와 과일들이 떨어졌다.  


"엄마!" 


아주머니의 옆에 서 있던 딸이 재빨리 자신의 엄마를 부축했다. 


"아저씨! 앞을 보고 타셔야죠! 네?!!" 

"아이고 나 죽네...."


태규는 자전거에서 내려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생각을 하다가 그만..." 


그때 아주머니와 딸의 표정이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아... 아니에요... 다음부턴 조심해 주세요... " 

"정말 죄송합니다."


태규는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태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주머니와 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 저 아저씨 눈동자 봤어? 흰자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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