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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새로움에 도전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9회 - 크로스오버 스니커즈

크로스 오버(Cross-Over)는 각각의 독립된 두 개 이상의 장르가 서로 뒤섞이는 것을 말한다. 흔히 음악에서 클래식과 팝, 국악들이 결합되는 용어로 많이 쓰이는 것이었는데 미술이나 연극, 무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제는 일반화된 현상인 것 같다.


성격인지 성향인지 신발 수출 업무를 하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많았다. 소질이 영 없는 것은 아니라 심심파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는데 이것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간이 조금 날 때면 생각나는 대로 신발 그림을 그려보곤 했는데 그런 것들을 모아서 샘플을 만들어보고 그중에 제대로 적중해서 실제 오더로 연결된 것들이 꽤 있었다.


사실 바이어가 원하는 상품을 그대로 만들어 수출하는 것은 시행착오도 줄일 뿐더러 과정도 단순해서 다들 선호하는 일이다. 다만 성취감이 떨어지는 단순 작업 같은 일이라 나름 기획해서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을 열심히 했었는데 거래처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이토추상사를 통해 진행한 ‘REGAL’ BRAND는 정통에 집중해 조그마한 변화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유니클로’는 1,900엔, 2,900엔의 저가 캐주얼 신발만을 원했기에 제안할 수 있는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았다. 일본 ‘FILA’는 글로벌 ‘FILA’의 상품라인 외에 일본에 맞는 심플한 ‘White color sneakers’만을 원했다. 그렇다고 ‘고베(Kobe)’의 소규모 수입상에게 제안하는 것은 썩 달갑지는 않았다. ‘NICE’, ‘FREEBOK’, ‘ADADIS’에 내가 나름 심혈을 기울인 기획을 입히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있었다.


ABC-MART의 미키 사장과는 소위 케미가 잘 맞았다. 새로운 제안을 해주기를 바랐고 미국이나 유럽의 거래처 동향이나 정보를 많이 듣고자 했다. 구주 브랜드팀은 프랑스의 ‘팔라디움’이라는 브랜드와 거래하고 있었다. 군화로부터 출발했는데 소위 ‘Desert Boots’라는 군화를 이웃도어 부츠로 발전시켜 크게 성공한 브랜드였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만들던 ‘팔라디움’ Desert Boots는 튼튼한 캔버스면 Upper에 고무 Injection의 Outsole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기 위해 Injection 공법을 시멘트공법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ABC-MART는 당시 ‘HAWKINS’ BRAND를 주로 ‘Goodyear welt’ 공법으로 정통 워크부츠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높은 가격으로 인해 시장에서의 수요도 제한적이었고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많지 않아서 힘들어했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가죽 워크 부츠는 정통 신사화나 여성화와 같이 수입량이 자율 규제(Quota)에 묶여있어 연간 수입할 수 있는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디어 대로 샘플을 만들어보았다. K씨는 원래 캐주얼 구두가 전공이었고 그 뒤 운동화 제조를 익혔으니 내가 생각한 대로 맛깔나게 샘플을 만들 수 있었다. 정통 부츠와 운동화가 결합된 크로스오버 캐주얼 스니커즈!


요즘에는 일반화되다시피 한 형태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샘플이 나오자마자 도쿄로 향했다. 가방을 펼쳐 샘플을 꺼내 보여주자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아무리 젊은 ABC-MART의 직원들이지만 선뜻 받아들이기엔 너무 파격적인 것이었는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눈치만 보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샘플을 만들었지만 실제 생산에서 그대로 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었다. 대단히 난이도가 높은 공정이 필요했고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핵심적인 기계설비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Outsole이 제대로 만들어질지가 고민이었다. 다만 ‘팔라디움’의 사례를 보았기에 상품성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보수적인 일본 소비자를 생각하면 무조건 확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기억에 첫 오더는 10,000족쯤이었던 것 같다. 라스트와 몰드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량이었다. Test 오더로는 작지 않았지만 투자 없이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실제 생산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얇은 운동화용 가죽에 익숙한 공장에서 두 배가 넘는 두께의 가죽, 그것도 오일로 방수처리된 것을 재단, 재봉하는 것도 생경한 작업이었다. 아웃솔을 만들기 위한 금형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금형을 만들어 아웃솔을 생산하는데 엄청나게 불량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두껍다 보니 아웃솔 바닥의 노란색 포인트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서 프레스 공장 창고바닥에서 유성 페인트로 채색 작업까지 하며 납품을 시켰다.


마지막 접착 제조 공정은 더욱 어려웠다. 신발 앞면의 모양을 잡아주는 Toe Lasting. 보통 운동화에 맞춘 압력으로는 두꺼운 가죽의 모양을 내기 어려웠다. 압력을 두 배로 조정하니 기계가 과부하가 걸려 고장 나기도 하고 조금만 지나쳐도 가죽이 터지거나 균열이 생겼다. 


K씨의 진두지휘 아래 모든 공정을 조심조심 진행했다.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본 생산을 진행하며 거의 모든 작업을 수작업 하듯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첫 제작을 마쳤다. 대박이었다. 특히 각 세관마다 문의하여 운동화로 분류를 받아내어 수입 Quota도 필요가 없게 되어 날개를 달게 되었다.  


“GT – 4301”


첫해 추가 오더로 20~30만족은 넘었던 기억이다. 또한 이후 이 신발은 약 10년 이상을 해마다 수십 만족씩 생산해 수출했으니 족히 4~5백만족은 넘은 듯하다.


GT – 4301 상품은 첫 서막에 불과하였다. 이후 Moc Toe 스타일, 6” 미드 컷 스타일 등 다양하게 개발이 되었다. Quota가 필요 없으니 시장이 필요한 대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기존 워크 부츠류들보다 5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였다. 또한 대량 생산, 판매가 가능함에 따라 마케팅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C.W. 니콜이라는 영국인 모델을 내세워 TV 광고까지 하게 되었다. ABC-MART가 본격적으로 대형 수입 판매 회사가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미키 사장은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만나게 되면 첫마디가. 


“안상, 뭐 없습니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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