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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브랜드의 대세감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16화 - 확장 VS 메뉴얼화

압구정점과 강남역점을 오픈한 이후 거의 매일 매장을 들러 살펴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직원들의 피드백이 중요했고 고객들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주위의 대리점 매장과 백화점도 찾아 확인하면서 나름 ABC-MART 사업의 운영전략을 세웠다. 결국 현장 중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 가장 중심 상권에 대형 매장을 확보하여 대세감을 통해 인지도를 조기 확보하고 다양한 상품의 대량 구매를 통해 집객을 최대화하여 대량 매출로 연결한다.

- 또한 브랜드별로 시즌당 30~100개 정도의 상품이 입점되니 연간 2,000~3,000여 개의 신상품이 제대로 Display가 될 수 있게 부진하거나 시즌이 지난 상품은 과감하게 할인하여 조기에 처분한다.

- 시즌 상품, 특히 여름 상품은 다양한 브랜드와 구색을 갖추고 볼륨감 있는 Display를 통해 차별화한다.


- 매월 특정한 이벤트나 프로모션을 통해 이슈를 선점한다.


이 때 위와 같은 현재도 ABC-MART 운영의 근간이 되는 전략들이 만들어졌다.


특히 당시는 현장을 중심으로 모든 업무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매장에서 영업을 하던 직원들을 본사로 발령을 냈다. 상품, 영업파트에 매장 영업 직원들이 대거 포진되었다. 대리점을 중심으로 유통망을 구축하던 기존 업체들과는 확실한 차별이었다. 본사와 매장 간의 인적 순환에 있을 수 있는 장애를 모두 없앴다. 또한 본사 직원들도 주 1회는 매장근무를 하기로 하였다. 현장의 직원, 고객과 상품을 이해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어야 가장 적절한 대응이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강남역점을 오픈하고 2~3개월쯤 지날 때였다. 매일 오후 5~6시쯤마다 매장에 가서 상황을 확인하고 직원들과 저녁을 같이 하던 중에 ‘VANS’의 신규 아이템인 V-67 신발이 판매가 좋고 특히 Steel 컬러의 여성 사이즈가 베스트셀러인 것을 확인했다. 곧 재고가 바닥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상품팀장이던 K에게 전화를 걸어 V-67, Steel 컬러의 발주를 긴급으로 요청하였다. 다음날 퇴근시간이 지난 무렵, K가 발주서를 작성하는 걸 뒤에서 보게 됐는데 남자 사이즈만 오더를 하는 게 아닌가..!


여자 사이즈는 얼마나 했는지 묻자 K의 대답은 “Steel은 남자용 컬러라 여자 사이즈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국제상사에서 수년간 MD를 담당했다던 K의 대답에 할 말이 없었다. 한바탕 소동이 나고 현장의 재고 상황을 확인한 후에 다행히 여성 사이즈로 정정해서 발주를 했지만 현장과 유리된, 단순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해프닝이었다. V-67 Steel 컬러 여성 사이즈는 그 뒤에도 몇 차례나 추가 발주를 하여 첫해 최고 히트상품이 되었다.


압구정과 강남역 매장을 필두로 신규 매장을 확대해갔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대세감을 주기에는 규모 면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거래하던 에스콰이어의 이범 회장과 만났다. 단순한 인사를 위한 자리였는데 거기서 명동성당 쪽의 매장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당시에는 단일 규모로 명동에서 제일 큰 것이었는데 1,2층 각 130여 평, 3층 100여 평 정도의 거의 400평 가까운 단독 매장이었다. 다짜고짜 나에게 임대해달라고 했다. 마침 기존 임차 기간이 다 돼가는 상황이라 3월 말이면 명도가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결정이었다. 명동 상권이 계속 확장되어 요즘은 활성화된 자리지만 당시는 중앙통에서 200여 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고 유동도 그리 높지 않았다. 가끔 그때 상황을 설명할 때면 매장 건너편에 커피숍이 아닌 다방이 있었고 쌍화차를 팔았다고 하면 쉽게 이해하였다. 규모가 크다 보니 상품을 채우는 것도 엄청난 문제였다. 하지만 영업면적이 300평 정도 되는 단독 매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고 운영만 잘한다면 고객들의 발길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고 전략적으로 대세감 있는 매장이 필요했다.


도박 같은 선택을 했다. 인테리어를 구상하면서 제일 먼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아마 단독매장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첫 사례일 듯싶다. 명동점을 계기로 브랜드들과 추가협상을 하였다. 상품 공급을 망설이던 몇몇 브랜드들도 마음을 바꾸게 하였다. 그래도 모자라는 상품들은 할 수없이 3중, 4중으로 디스플레이를 해서 많아 보이게 하였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외벽의 간판부터 먼저 설치하게 했다. 홍보의 목적이었지만 내심 뿌듯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때 지나던 한 무리의 사람들 중 누군가가 “편의점이 엄청 크게 들어오네, 패밀리마트가 긴장하겠네”라고 우스개 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격세지감이다. 2003년 6월 14일 오픈하였다.


노심초사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하루 평균 4,000명이 넘는 고객으로 넘쳐났고 그해 12월 31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간에 점장을 하던 L의 전화가 왔다. “사장님, 오늘까지 해서 이번 달에 5억 원을 넘겼습니다”라며 흥분해 들뜬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강남역점을 오픈하고 정신없이 뛰어다닐 무렵 알고 있던 중개업소에서 건물 매수 건을 소개하였다. 현재 ABC-MART 강남점이 있는 자리였다. 당시는 2층짜리 상가건물이었는데 일식당을 하고 있었다. 재일 교포인 B 방직의 회장이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하려고 한국의 자산을 처분한다는 것이었다. 대지 156평, 평당 8,000만원이라 매수하려면 120억원 정도가 소요되고 건물을 신축하고 세금 등을 생각하면 180억원 정도가 필요한 것이었다. 말을 듣는 순간부터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명동은 없는 유동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강남은 넘쳐나는 발걸음을 잡는 것이니 대형 매장을 확보하는 상상으로 밤잠을 설쳤다.


일본에 연락해서 매수를 요청했다. 그런데 반응이 엇갈리는 것이었다. 좋긴 한데 너무 비싸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 당시 긴자의 1/4이었는데도 성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일본 ABC-MART의 사장이었던 K씨를 오게 했다. 도쿄 증시 상장 후 미키 사장은 공식 직책이 없이 회장으로 불렸다.


K씨는 원래 부동산 전문가였고 당시 직영매장 확대 전략 방향이었던 일본 ABC-MART를 지휘하고 있었다. 꼼꼼히 살펴보던 K 씨가 매수를 결정을 했다. 일본 ABC-MART가 매수하고 한국 ABC-MART가 전체를 임차하여 매장으로 쓰는 것이었다. 일사천리로 계약을 하고 신축 절차에 들어갔다. 설계사무소를 정하고는 기존의 2층 건물을 철거하고 외벽 펜스를 쳤다. 거기에다가 ABC-MART를 알리는 광고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다급한 전화를 받고 강남역으로 달려갔다. 철거를 해서 깨끗이 비워 놓은 땅에 펜스를 걷어내고 150평의 거대한 포장마차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통돼지 바비큐까지 하고 있었다.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장애인 단체에서 고엽제 전우회까지 들어봄직한 단체들끼리 권리를 넘겨서 결국 어처구니없지만 한 달여 만에 보상을 해주고서야 철수를 했다. 누구나 탐낼만한 자리였다.


건축을 하는 중에도 수많은 민원이 발생하였고 일일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특히 바로 옆 점프밀라노는 약 600여개 구좌의 개인들로 구성된 집합 건물이라 민원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2억원 남짓의 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고비를 넘기면서 1년 가까이 공사를 해서 2004년 5월 ABC-MART 강남점으로 오픈을 하였다.


명동점과 강남점에 대해 장황하게 성명하게 된 것은 이 두 매장이 가지는 의미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강남과 명동이라는 상징적인 대표 상권에 대규모의 매장을 확보함으로써 애초 세웠던 선순환 전략의 가설이 완성되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두 매장에 투입된 자금이면 중소 규모의 매장을 20~30개를 쉽게 오픈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지금도 그 당시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평당 8,000만원이던 강남점의 땅값이 5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불과 6개월 남짓 동안 명동점까지 포함해서 5~6개의 매장을 오픈했다. 처음부터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 ABC-MART로부터는 업무적으로 특별히 지원을 받은 것은 없었다. 


실상 당시 일본 ABC-MART는 정해진 매뉴얼이나 프로토콜이 없었다. 우에노 본점에서 보듯 시장형 디스플레이를 기본으로 매장 형태나 상황에 맞추어 인테리어를 하고 상품을 내다 파는 방식이라 규격화되거나 정해놓은 매뉴얼이 없었다. 직원들의 서비스 가이드도 별도로 있지 않았다. 일본 사람 특유의 고객 응대 방식 그대로였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며 하나하나 결정해야겠다. 1호점인 압구정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수차례 수정을 하여야 했다. 50평쯤 되는 면적인데 두 달 반 동안 공사를 했다. 


현대백화점 목동점 지하에 10평도 안되는 ‘VANS’ 매장을 내면서 상품 디스플레이에 밤샘을 해야 했다. 바로 옆 의류매장도 같이 오픈을 했는데 오픈 당일 아침에 본사 VMD 직원과 매장 직원이 두 시간 일찍 출근해서 뚝딱 해치우는 걸 보고 밤샘한 우리끼리 충혈되고 꺼칠한 눈을 맞추며 머쓱해했다. 


“담부턴 조금 더 빨리, 잘할 수 있을 거야” 늦은 아침 해장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직원들에게 미안함으로 뱉은 말이었다.


원문은 http://m.fashow.co.kr/home/fshow/html/mg/bbs/board.php?bo_table=open_write&wr_id=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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